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훈展 / KIMYOUNGHOON / 金榮勳 / printing   2012_1115 ▶ 2012_1128 / 월요일 휴관

김영훈_M12-2_메조틴트_20×15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심여화랑 Simyo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37-1번지 Tel. +82.2.739.7517 www.simyogallery.com

그동안 나의 작업 모티브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담긴 인물들이었고 심연 속 소우주를 지닌, 그것이 실존이든 환영이든 현재 존재하고 있는 한 개체에 대한 의문과 질문이었다. 내 이 작음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광대한 그 무엇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업을 통해 속세를 벗어난 영혼의 자유를 갈망했고 안식을 원했고 무한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했다. 그렇게 미지 그 이상의 미지를 탐미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평면 작업에서는 이미지와 여백의 조화로, 설치 작업에서는 군집의 나열이나 배치를 통해 무한에 대한 동경과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부질없는 욕구였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모한 질문이었고 범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하고 일방적인 동경임을 안다.

김영훈_M12-3_메조틴트_20×15cm_2012
김영훈_M12-5_메조틴트_19×18cm_2012

이번 작품들의 성향이 전과 그리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변한 것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한계의 범주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계가 있기에 더욱 신비롭고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가늠하고 상상 할 수 있는 한계의 막다른 벽, 그 안에 내가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그 중간 정도의 지점이 주는 균형 같은, 예를 들자면 물 속 깊은 곳 어디쯤에 중력과 부력의 경계선상의 지점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곳, 빛도 암흑도 아니며 막막함과 울림이 동시에 존재하는 심연의 공간, 지독히 외롭고 두려운 곳이지만 반면 가장 안락한 공간,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 양수로 가득 찬 어머니의 뱃속 안에서 느꼈던 안식과도 같은 곳이지 않을까? 우리들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 작은 공간은 자신만의 무한한 세계였고 전부였으리라. 그 때 그 작은 공간의 외부 세계는 한없는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가정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또한 다른 의미의 양수로 가득 찬 자궁 안이며 우리가 알고 있고 가늠 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주의 것들 너머의 그 어떤 것들은 이 자궁 밖의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그 세상 너머의 세상과 그 너머의 세상 그리고 그 너머... 그래! 결국 끝이란 없다! 아니 어쩌면 아예 시작이라는 것과 끝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미지 속의 또 다른 미지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나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저 살아있는 한 영혼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알 수 있는 범주의 넓이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순리 안에서 편안해지고자 했다.

김영훈_M12-7_메조틴트_37.3×13.3cm_2012
김영훈_M12-9_메조틴트_6×47cm_2012

이번 작업의 조형적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것은 내 안의 깊이와 내 밖의 넓이, 그리고 그 경계선 상의 '나'로 나뉘게 된다. 얼굴 위주의 이미지가 첫 번째 의미이며, 작은 인체 이미지가 두 번째에 해당되고, 직선과 곡선의 외각 이미지가 마지막 경우이다. 나는 인물의 표정과 손의 위치와 동세를 통해 고요와 안식과 영혼의 세계를 이야기하려 했으며 몇 몇 작품들에서 보이는 원의 이미지는 외부의 넓이와 깊이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꽉 차있는 공간이기도 아니면, 또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의 공간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안과 밖이 어떠한 경계로 분명하게 나뉜다는 것이다. 또한 인체의 외각 부분을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조형적 요소로 긴장과 완화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곡선은 주로 모호하며 신비로운 존재를, 직선의 경계는 그 경계로 인하여 분리 되는 이곳과 저곳을 나타내고자 했다. 직선으로 잘린 경계가 그렇다. 보이거나 그렇지 안거나의 차이일 뿐, 그 실체의 형상이 변형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부유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무언가에 가려져 있는 것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경계로 구분된다는, 그래서 보이거나 그렇지 안거나의 차이로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계일 뿐이다.

김영훈_M12-10_메조틴트_44.8×31cm_2012

동판화의 메조틴트 기법이 다른 기법들과 구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음영의 표현이 역순으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즉 어둠에서 밝음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암흑의 공간을 먼저 만들고 그것에서 점차적으로 밝은 빛의 영향들을 표현해 나간다. 그것은 밝음의 상태에서 명암을 혹은, 형상을 나타내는 기법과 확연히 구분되는데,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닌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내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점이다. 어둠에서 서서히 빛을 받아 나타나는 그런 느낌이다. 마치 우리가 어두운 자궁에서 나와 빛을 만나는 것과도 같이...

김영훈_M12-13_메조틴트_45×15.5cm_2012

한계란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그 한계의 범주 안에 살고 있으며 그 한계 너머의 또 다른 그 미지의 세계,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는 이토록 작디작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신비스러우며 알 수 없는 초유와 영원의 그 무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한없이 그립다. ■ 김영훈

Vol.20121115c | 김영훈展 / KIMYOUNGHOON / 金榮勳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