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1114_수요일_05:00pm
기획 / 타이미지 그림나눔(cafe.naver.com/grimnanoo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 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관훈동 30-1번지) 5관 Tel. +82.2.733.4448 www.kyunginart.co.kr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몇 년 전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노래가 있다.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누가 어떻게 다 위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페라가수가 낭랑하게 부른 이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았으리라. 아직 죽어서 천 개의 바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그 노래가 자꾸 생각났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서, 저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타고 우주를 느낄 수 있다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 속 나무들의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빛과 장난치며 흔들흔들하는 잎들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비에 젖은 큰 나무가 뿌리로 꿀꺽꿀꺽 물을 들이키는 힘을 느낄 수 있다면…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날아다니며 그 아름다움과 향에 취할 수 있다면… 눈앞의 아가의 솜털처럼 부드러운 잎사귀를 비단 이불 삼아 누워 낮잠 잘 수 있다면… 나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자연을 그릴 수 있다면… 그런 "나"를 그릴 수 있다면…
통학로 ●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집에서 참 멀었다. 전철 타고 두 정거장, 역에서 또 걸어서 20분... 어린 나에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아침마다 학교 갈 때마다 벚꽃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저 다리만 건너면 된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하교 시에는 다리를 건너 벚꽃을 바라보면서 "언제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래도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는 날은 달랐다. 한 학기에 한 두 번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참관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간담회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먼저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나는 못들은 척, 벚꽃 아래 다리 난간에 기대어 어머니가 나오시기만을 마냥 기다렸다. 교문 쪽 한번 보고, 벚꽃나무를 올려다보고, 다시 교문 쪽 한번 보고, 벚꽃나무 올려다보고... 여러 번 반복해서 올려다보니, 정작 어머니가 교문에서 나오실 때는 눈에 벚꽃의 잔상이 남아 마치 어머니가 벚꽃에서 나오시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날의 하교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머니는 꼭 역 근처의 커다란 빵집에 들러 따뜻한 우유와 초코빵을 사 주시면서, 나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칭찬을 해 주셨다. 그때 먹었던 그 초코빵의 달콤한 맛은 아직도 내 혀끝에 남아있다. 몇 년 전, 나는 그 초등학교에 다시 가 보았다. 마침 하교시간이었다. 책가방을 맨 어린 학생들이 뻥튀기가 튀겨져 나오듯이 우르르 교문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무리 안에서 나는 책가방을 매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했다. 울컥했다. 한 순간에 몇 십 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 같았다. 벚꽃에서 나오시던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이 내 눈물에 흔들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리움을 그리는 것이라 하던가. 나는 한 획 한 획 벚꽃을 그리면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나 보다.
虛와 實 ● 피렌체가 좋아서,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의 전기를 읽었다. 마키아벨리가 청천벽력처럼 조국 피렌체의 서기관 자리에서 쫓겨나 추방까지 당한 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나에게 짜릿하게 와 닿았던 부분은 이것이다.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간다. 서재에 들어가기 전에 낮에 입었던 더러운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 입는다. 예의를 갖춘 옷으로 단장하고 옛 사람들이 계신 옛 궁전으로 만나 뵈러 간다. 그들은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고, 나는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그곳에서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진심으로 답해 준다. 4시간 내내 지루할 새가 없고,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버린다. 그들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그들과의 공상 속의 대화로 "군주론"을 엮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虛의 세계지만, 생각하고 정리해서 군주론이라는 實을 이끌어냈다. 거창하게 마키아벨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虛와 實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虛는 無라서, 사람들은 감추고 드려내지 않는다. 그래도 虛의 세계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나는 虛를 實의 세계에서 확인하고 싶어서 서투른 붓질로나마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 ■ 오유미
Vol.20121114e | 오유미展 / OHYOOMI / 吳由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