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27h | 김미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1116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0)2.739.1405 www.gallerydoll.com
상실을 기억하다 ● "그 시절엔 주위의 모든 사물이 흔들흔들 크게 요동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요동은 매우 오랫동안 강력하게 계속되어, 그것이 잠잠해진 후에도, 우리에겐 아직도 땅이 줄곧 요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기에선 당장이라도 무엇인가가 벌렁 굴러 떨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 그로부터 어언 20여 년이 지나, 저는 마흔이 되었습니다. (...) 지금 이 시대에 서서 그 당시를 생각하면, 저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그 격렬한 시대를 탄생시킨 변화의 에너지는,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가져온 것인가 하고... 그 당시에 아주 대단한 큰 일로 생각했던 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서문에서)
인간의 기억은 애초에 과거를 간직하기 보다는 과거를 비워내는 것에 충실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토록 찬란했던 젊은 날의 삶도, 가슴 벅찼던 사랑도, 격렬했던 신념도 기억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낡아빠진 폐허 속에 매장되고 만다. 종종 매장된 그 기억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억의 공간에 익숙한 형태로 스스로를 변형시킨 이미지에 불과하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초콜릿의 치명적인 매력처럼, 기억은 이렇게 이중적이고 애매하다. 그 때문인가, 예술은 빈번하게 그 아득한 기억의 공간을 배회한다. ● 여기, 작가 김미라는 캔버스 위에 기억의 공간을 구축한다. 데 키리코(Georgio de Chirico)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김미라의 회화는 구성적인 효과와 색채 때문에 아름다운 첫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고전적인 건축물들과 기하학적인 공간들의 중첩, 경계를 알 수 없는 구조물들의 뒤섞임이 캔버스 깊은 곳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모호한 자국들과 오버랩 되면서, 아름다웠던 첫인상은 곧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작가는 그 공간에 "어딘지 모를 어느 먼 곳(là-bas)", "먼 곳의 안쪽(Re-Garder)", "그 안의 폐허(The calli-ruin)"처럼 환영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초현실적인 공간을 탄생시킨다.
데 키리코가 초기 회화에서 원근법을 교란시키고, 건축물의 가파른 경사로 불안한 구도를 제시했던 대목은 그가 간직한 억압된 기억의 표상과 연결된다. 굳이 프로이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억압된 기억이 되살아나면 단순한 노스탤지어와는 달리 아주 마주하기 힘든 불안과 공포를 겪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을 '어딘지 모를 먼 곳'이나, 그보다 더 '먼 곳의 안쪽', 무너져 내리는 '그 안의 폐허' 속에 깊숙이 묻어두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작가 김미라는 바로 그 불안한 기억의 공간을 주목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이 기억을 "나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어느새 나에게서 낯설어져 버린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를 향해 달리던 폭발적인 현재는 기억의 공간 속에 매장되어 찰나의 시간으로 굳어버린다. ● 과거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 역시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구식 건축물에 심취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벤야민은 기억의 잔재, 즉 꿈의 세계에서 파생된 이미지의 파편이 지닌 아우라를 설명하면서, "오래된 물건이 우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오래된 물건과 건축에서 비롯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란 심리적으로 '상실한 대상'을 상기시켜주는 모티프가 된다. ● 작가 김미라는 그 기억을 더듬으면서 오래된 공간을 걷는다. 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공간이 과거 어느 순간 상실해 버린 시간과 기억을 여태 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그 기억의 시간 앞에 서면 우리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가의「그 안의 폐허」연작에서, 무너져 내린 폐허 사이로 느닷없이 흘러나오는 푸른색 물줄기의 흔적이 눈에 띈다. 흐르다 멈춘 것인지, 멈췄다가 흐르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모호함이 그 기억의 공간을 더 낯설게 만든다.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안의 폐허' 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긴장감이 막 뚫고 나오려는 듯하다. ■ 안소연
Vol.20121113d | 김미라展 / KIMMIRA / 金美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