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서유라_이매리_이지숙_이지현 임수식_정운학_황선태_황용진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am~08:3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630 department.shinsegae.com
책 ● '문자나 그림의 수단으로 표현된 정신적 소산(所産)을 체계적으로 엮은 물리적 형태'를 책(冊)이라 칭한다. 사전적 의미처럼 책은 거의 모든 것을 담은 소우주이다. 방대한 것들이 기록된 그 속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세상을 간접경험하고, 감정 이입하여 내 세계를 확장시키며 끊임없이 사고한다. 실로 인쇄술이 발달하고 책이 보급화되면서 인류는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책의 의미를 언급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게 보일런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지금은 대중매체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 고전적인 의미로서 책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디지털의 범람은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라는 장점으로 '어렵고, 느리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느리게 책 읽기의 설 자리를 좁게 했으며, 우리의 사고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 '느리게 책 읽기'는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책을 읽는 방법』에서 "방대한 수량의 서적들을 나오는 족족 읽어내며, 그 정보를 효율적으로 자기화 하며 다양한 사고의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다면, 그 양만큼 '지적인 윤기'가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라고 말하며, 느리게 책 읽기를 제안하는 부분과 의미를 같이 한다. 이는 속도의 빠름과 느림을 의미하기 보다는 사유하는 시간을 머금은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책 ●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이 시대는 느리게 책 읽기가 절실히 요구된다. 책을 통해 사유하고 상상하며 얻을 수 있는 자유가 결핍되면, 정서는 메말라가고 우리의 사고는 미디어에 잠식될 것이다. 책에서 들려준 지식들은 연결고리가 되어 사고의 과정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기도 한다. 책 읽기를 중요시 하는 지식인의 서재는 그의 관심사, 기호, 취향, 그리고 세계관 같은 것 등을 짐작케 한다. 때론 은밀하게 속살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만큼 독서 취향을 통해 삶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한 책을 읽어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입장과 상황, 지식의 정도, 개인적 감성을 토대로 제 각기 다르게 읽어내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술가의 책 ● 그렇다면 미술가가 시각 영역으로 담아낸 책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책을 집필하는 것과 미술품을 제작하는 것은 모두 창의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가가 그리는 책은 이중의 의미를 띤다. 이미 창조된 책 자체가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조각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미술가의 서재로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다 보며 취향을 엿보듯이, 차곡차곡 쌓인 책의 모습을 통해 미술가의 생각과 욕망을 읽어 낼 수 있다. ● 미술가들은 각자의 조형언어로 책을 해석하고 담아낸다. 서유라는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 집중한다. 책의 내밀한 소리를 듣도록 유도하는 제목이 담긴 표지 부분만을 자신이 의도하는 주제에 따라 선별하여 재구성한 화면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작가의 의도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이매리는 임의로 만들어 낸 공간에 책의 부분을 차용하듯 틀 안에 비춰 보여주고, 현대 여성 욕망 아이콘인 구두를 함께 장치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지숙의 흙으로 빚은 담백한 화면은 읽어 내려간 책의 이미지와 작가의 일상 속 사물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현대판 책가도이다. 이지현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책들을 선택하여 뜯고 찢어 해체한 후 다시 조합하여 조각적인 책을 만들어 낸다. 해체의 과정을 통해 책 본래의 기능은 상실되고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었는데, 그렇게 오브제가 된 책의 형상은 궁금증을 유발하며 더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한다. 사진작가 임수식은 누군가의 취향이고 누군가의 초상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서재를 사진으로 담은 후 한 권 한 권의 책이 모여 만들어진 서재의 역사를 보여주듯, 부분 부분 이미지를 실로 엮어 새로운 책가도를 만들어 낸다. 정운학은 디지털 시대의 약자가 되어가는 종이책 형상을 크게 확대하여 디지털 제품들에 사용되는 LED 조명을 넣어 빛을 발하는 책을 보여준다. 현 세태를 보여주는 신문이 책의 표지가 되어 새어 나오는 빛으로 내용이 어렴풋이 읽히는데, 책이 마음을 풍요롭게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황선태의 책은 유리로 만들어진 책이다. 끊임없이 의미를 창출하고 소통을 시도하는 책의 기능이 얼어버린 듯, 실제 책의 활자와 그림이 새겨져 있으나 해독은 힘들다. 황용진이 담아낸 책들은 현대미술과 관련된 것들로 작가의 이야기이자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관의 반영으로 보인다. 하늘을 배경으로 부유하는 책들은 창조적인 예술을 절대적인 진리로 가둬둘 수 없음을 이야기 하듯 자유롭다.
미술가들에 의해 해체와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 미적인 대상으로서 새로운 기능을 부여 받은 창조적인 미술가의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책 읽는 방법으로는 읽혀지질 않는다. 책 고유의 기능이 상실된 책들이지만, 문자로 해독하는 것 못지 않은 아니 그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 층이 담긴 미술가의 책을 통해 깊어가는 가을 특별한 책 읽기 시간을 가져보길 제안한다. ■ 광주신세계갤러리
Vol.20121111j | 미술가의 책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