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1110_토요일_05:00pm
기획 / HRD Fine Art(www.hrdfineart.co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성북동 51-2번지 Tel. 070.4401.6741 www.onewwall.com
스페이스 오뉴월(대표:서준호)은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토시유키 난조의 개인전을 2012년 11월 10일(토)부터 12월 9일까지 개최한다. 토시유키 난조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한국과 해외의 그룹전으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지만, 이번 전시는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오뉴월에게 또한 의미 있는 전시다. ● 토시유키 난조의 사진은 절제적이지만 동시에 심미주의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는 정교하고 숙련된 기법을 통해 찰나적 요소를 세심히 컨트롤한다. 동시에 근본적인 자연과 인간의 시지각 그리고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어떻게 교차하고 반응하는지에 대해 집중하여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태양 Suns」시리즈의 신작들을 보여준다. 작업 제목이 알려 주듯 전시되는 작업들은 모두 물 표면에 반사되는 태양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제시하는 것들이다. 노출시간을 세심하게 조절함으로써 반사된 햇빛은 선과 원 혹은 은하수나 성운처럼 보이기도 하고 격정적인 운동감을 느낄 수도 있는 그림(회화)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그의 작업이 물에 반사된 태양의 이미지인 것을 알게 됨으로서 우리는 태양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는 태양을 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태양은 사진 프레임 바깥, 관객의 뒤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햇빛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존재한다. 결국 우리가 그의 작업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태양과 물의 빛이 인화된 사진의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우리의 시각과 지각, 지식 그리고 상상력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만드는 미적인 플랫폼으로서 제시된다. ■ 스페이스 오뉴월
물, 빛 ● 거기엔, 있는 듯 없는 듯 가냘픈 세계가 지배하고 있다. 수면으로 짐작되는 어둠의 세계, 그 위로 흔들리며 달리는 빛의 세계가 중주(重奏)를 만들어내고 때로 조성을 바꿔가며 변주를 선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작품에서는 수면이 전경으로 쑥 나온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내 수면에 비친 광적(光跡)이 지배력을 더해가더니 돌연 칠흑의 어둠으로 변하고, 빛의 세계가 전경으로 부상한다. 작품이 보이는 다양한 빛의 표정은 태양의 둥근 모습을 따라하다 다시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고, 또 몇 겹의 원이 되어 론도풍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변하는가 하면 폭발한 듯한 빛의 비산(飛散)이 되어 시야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따금 수면에서는 식물이나 돌, 흙의 형태가 나타나 이 현상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깨닫게 만든다. ● 작품 전체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분명히 거기엔 무언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의 존재가 아니다. 만들어진 이미지는 카메라로 현실을 충실히 긍정하는 척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세계와의 일상적 관계를 끊어내며 이차원적 시점으로 유혹하는 마력을 발한다.
난조의 작품 중 빛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작품을 보는 순간, 헝가리 출신의 혁명적 예술가 모호이 너지(Moholly-Nagy)의 포토그램이 떠올랐다. '사진은 빛의 조형이다'라고 선언한 모호이 너지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빛으로 직접 사물의 그림자를 인화지에 찍어내는 포토그램을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의 원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곧 '아니다!'란 말이 스쳤다. 왜냐하면 난조의 작품에서는 물이라는 액체의 존재가 화면 속에서 '통주저음'처럼 울리고 있어, 중력 법칙에서 해방된 빛의 공간 속에 이미지를 자유로이 구성하는 것을 조형의 근간으로 삼은 이 모더니스트의 자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면의 파문을 포토그램으로 작품화한 현대 영국 작가 아담 허스(Adam Fuss)와 비교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허스 작품에서는 물의 존재감이 확실히 보지되어 있으되, 빛의 질이 다르다. 허스의 빛은 에테르처럼 존재감이 희박하지만 난조의 작품에 보이는 빛은 그때 그 장소의 현실적 빛의 흔적임을 주장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 광원(태양)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물도 빛도 추상화라는 관념과 거리가 멀다. ● 거기엔 물의 상과 빛의 상, 이들 두 상이 뒤얽히면서 결코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이미지의 아말감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구약성서 창세기의 모두(冒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물'과 '빛'은 세계 창조에 관련된 본질적 표상이다. 그리고 그 둘로 이루어진 난조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 생각에서 세계의 양상에 대한 사색의 미로로 슬립시킬지도 모른다. ●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라 여겨지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생각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물로부터 생성되어 마지막으론 물로 소멸해간다는 생생유전(生生流傳)의 세계관을 주창했다. 견고한 물체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유구한 시간 속에서는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물질은 쇠퇴와 소멸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만물은 상대적 존재이며, 생성 가운데에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만물은 유전(流傳)한다'는 입장을 취한 철학자에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이 입장을 철저히 비판하고 부정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수제자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은 종종 태양 빛의 힘을 비유하여 변해가는 존재물의 세계를 초월한, 세계를 근원적으로 떠받치는 보편적 존재가 있기 때문에 세계가 성립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양은 그 강렬한 빛으로 만물을 비춰 보이는 것으로 만든다. 그것 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 영역에 갇힌 채 암흑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존재 덕에 인간은 스스로가 사는 세계에 대해 알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는 보편적 존재로 성립되고 있다고 하였다.
난조의 작품으로 돌아가자. 작품 속에서 '물'의 세계와 '빛'의 세계가 강하게 또는 약하게 맞부딪친다. 이를 대립되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세계관과 플라톤적 세계관이 한 장의 사진 속에 갇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진은 그 어느 한 쪽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판단 없이 그 둘을 나란히 놓아 제시한다. 하물며 둘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두 세계의 긴장관계는 결코 친화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치방식에 따라서는 일촉즉발로 맞부딪쳐 서로 부서져버릴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파편들은 불꽃놀이 불꽃이 폭발한 직후 천공으로부터 내리쏟는 불티처럼 뿔뿔이 흩어져, 정처 없이 밤의 어둠 속에서 내려앉는다. 파악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참으로 형언키 어려운 심상이 그려진다. ● 이 체험은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사용한 '아우라Aura'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난조의 작품이 유발하는 충돌과 붕괴의 이미지는 절묘하게 프린트된 그의 작품 세계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체험할 수 있는 '한 번뿐인' 유니크한 현상이며,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체험을 벤야민이 쓴 것과 같은 뜻으로 '아우라'의 체험이라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 벤야민은 사진을 발단으로 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의 발달과 그것이 예술이나 개인 체험에 미친 영향을 고찰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한 번뿐인 현상이나 체험이 자아내는, 종잡을 수 없는 '아우라' 체험을 소멸시키는 동인이 됐다고 말했다. 즉 프랑스 사진작가 외젠 아제(Eugene Atget)는 파리 거리를 '마침 범행 현장처럼 촬영'하고 거리에서 '아우라'를 뺏어 '소독'하여 '아우라로부터 대상을 해방'시켰다고 한다. 틀림없이 벤야민이 말하는 의미로서의 '아우라'는 아제 등의 사진작가들로 인해 소멸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진 자신이 새로운 종류의 '아우라'(굳이 한 번 더 이 말을 사용해도 된다면)적 체험을 보는 자에게 야기시킨다면? 예컨대 벤야민이 다룬 아제의 사진 자체가 그 결정적 증거다. 아제의 정묘한 프린트에서 만들어지는 작품 세계에는 복제기술 때문에 소멸되는 대상으로서의 '아우라'와는 질적으로 다른, 종잡을 수 없는 세계와의 '한 번뿐인' 해후의 기쁨과 놀라움을 상기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는 않은가? 초현실주의자들을 놀라게 하고 매료시킨 것 역시 바로 그 힘 아니었던가? 세계를, 보는 자에게, 단순히 정교한 복사로서가 아니라 순간의 희미한 모습 그대로 끄집어내 제시함으로써 바로 그것으로 마음을 울리는 것. 그러한 사진은 복제기술이 창조해낸 것이었다 해도, 보는 자가 세계와의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만남을 마음 깊은 차원에서 체험하는 것을 가능케 해, 내적 이미지를 비약시키는 이른바 캐터펄트(Catapult, 사출기射出機)(스프링보드 Spring Board)가 될 것이 분명하다. ● 난조의 작품은 이러한 사진 예술의 본질적 가능성에 깊이 관련하고 있는 것이다. ■ 후카가와 마사후미 深川雅文(번역_타카미 카마타 鎌田孝美)
We are pleased to announce a solo exhibition of Toshiyuki Nanjo. This show will be the Tokyo-based photographic artist's first solo exhibition to be held outside his home country, though he has already shown his work extensively in Korea at group shows up to this time. ● Nanjo's approach to photography is abstinent and stoic but at the same time quite beautiful aesthetically. Using his exquisite skills and techniques, he controls the element of chance, while paying a great deal of attention to the very fundamental nature and functions of human vis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photography. ● In this exhibition, Nanjo will present his recent works from the series titled "suns." As the title suggests, in this group of works he captures and present the image of the sun, but always as reflection on water surface. With meticulously controlled exposure time, the sunlight reflection creates a picture-like image; sometimes linear and circling; sometimes explosive; sometimes like a galaxy or a nebulae. ● Knowing it is the sun reflected on water surface, we are tempted to say that there we see the sun. But is it true? The sun actually is outside the picture frame; the sun is behind you. But the sunlight is all around, as though the plural form of the word alludes to its omnipresence. And after all, what we see in his work is just a sheet of photographic paper with an "image" of the sun and water printed over it. Nanjo's work provides us with a platform – a very beautiful platform, that is – from which we can start again asking questions about our vision, perception, understanding, and imagination. ■ Space O'NewWall
Vol.20121110b | 토시유키 난조展 / Toshiyuki Nanjo / 南條敏之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