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가을에 쓴 나의 일기(2007년) ● 조금이라도 매일 그리는 습관을 갖자. 한 번 손을 놓으면 계속 놓게 되고 그리기 시작하면 계속 그리게 된다. 놀다가 다시 손을 잡을 때는 매우 힘들고 어색하다. 그래서 매일 하는 일처럼 되어야 한다. 그림이 안 될 때는 왜 안 되는지, 왜 안풀리는 것인지,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찾아야 한다. 이런 일은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림을 계속 그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집중해서 쳐다 보기라도 해야 한다. 외부의 자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자. 그냥 의연해야 한다. 내 작업 이외에는 바깥 일에 휘말리지 말라. 화단의 일일랑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자. 그들이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민하니까, 난 내 작업이 고민이다. 그래서 내 작업과 그들이 만나면 관계를 갖는 것이다. 질투와 시기, 삐짐, 섭섭함은 작업하지 않을 때 더 깊어진다. (2007. 10. 9)
정치는 메시아가 아니다. / 정치는 상식이다. / 이번 선거에서 가장 상식이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 정쟁이 비열한 삼각관계는 아니다. / 10.21 // 나비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다. / 물질계와 정신계 사이에 있다. / 그는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한다. / 여기서 저리로 비틀거리며 갈팡거리며 / 팔랑거리며 날아다닌다. / 그의 행위는 무엇으로도 규정하기 어렵다. / 적자생존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애쓰며 / 규명되지 않는 신비로움을 가진채 우리 앞에 / 모습을 보인다. / 나비를 보는 우리도 가련하다. / 11.2
역할놀이 ● 예림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언젠가 학교에서 울면서 왔다. 이유는 엄마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이 자기는 애기만 시킨다는 것이었다. 나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도 어릴 때 그랬다. 아빠도 하고 싶고 의사나 선생님도 하고 싶은데 꼭 애기만 하라고 했다. 자기들은 선망의 역할만 하려하고 규칙을 세워 바꿔서 하기로 해도 꼭 이유를 달아 그렇게 시킨다. 나는 싫었다. 어느 땐가 이런 놀이는 안한다고 파장을 놓았다. 그 때 쯤엔 다른 아이들도 엄마놀이가 시큰둥해져 있었다. 그 후로 여자 남자 애들이 따로 놀았고 남자는 자치기나 공놀이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 경험이 있는 나는 예림이의 푸념에 동의하면서 화가 났다. 나는 커서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나는 일종의 대장이나 주역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냥 껴있는 사람 역할을 많이 했다. 동료들은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꼬드겼다. 그리고 꼭 같이 해야만 한다고 했다. 나도 같은 부류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참자고 했다.
사실 내가 나서면 판이 깨질 공산이 있다. 나는 내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삐거덕거릴 때 조직의 단합을 위한 발언을 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 되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때가 내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이었다. 올 여름에 어느 작가가 '역할놀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다. 나의 인생에서 느낀 것이기도 한 그 역할이라는 것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매우 궁금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미술계에서 당분간 발을 빼고 싶다는 생각에서 가보지 않았다. 예술가란 사회에서 조직 안에서의 역할이라는 것에서 도외시된 존재다. 예술가가 거부해버린다. 사회적 존재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나는 그나마 교사로서 조직의 맛을 안다. 조직 안에서의 일이란 모두 단순한 일이다. 단순한 사건이나 일들이 얽혀서 거대한 사회를 이룬다. 그 안에 몸을 담는 일이란 지겹고 스트레스 쌓이고 허무한 것이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때가되면 딱딱 대가를 준다는 것이다. 그건 조직에 기여한 대가다. 그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리고 이 모델이 가장 모범적인 것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이 모범답안 같은 것에 위기를 느낀다. 그래서 예술가는 그들을 삶의 모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술가란 역할놀이에서 아기역할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없으면 놀이가 않돼서 있어야 하는 것 같은 것이다. 아니 사람들이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안하기 때문에 예술가를 찾게 한다. 그들은 사회적 역할을 주도하지만 예술가를 보며 자기 인생을 반추한다. 그래서 예술을 견지하며 인생을 소유하고 소비한다. (어느 잠이 안 오는 날 씀)
새벽잠에서 깨어나 세상이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차를 달여 마신다. 녹차는 하루 중 이때가 제일 맛이다. 맑은 정신이 더욱 총총해진다. 은은한 차향이 퍼져 코끝에 와 닿는다. 세상이 조용하다. (11.17) ■ 이기정
Vol.20121031g | 이기정展 / LEEGIJEONG / 李基廷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