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Bridge

박영택 기획展 3부   2012_1031 ▶ 2012_1120 / 월요일 휴관

김도균_w.bh-1.1 (1/3)_나무틀, 플렉시글라스에 C 프린트_90×70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도균_김병훈_안준_이경민_장문걸_홍미선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릿지갤러리 Bridge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82.2.722.5127 www.bridge149.com

회화는 종이와 캔버스의 표면, 피부위에서 서식한다. 사진 역시 인화지라는 물질, 피부위에 도포된 이미지다. 그곳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지시하는 한편 관념적인 공간이 떠오르고 소멸되기도 한다. 따라서 회화의 표면은 기이한 장소다. 서구전통회화가 그 내부로 하염없이 들어갔다면 모더니즘은 평면성이라는 물리적 조건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다. 반면 오늘날 회화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표면'에 주목하는 것 같다. 그 표면성은 모더니즘과는 조금 달리 안과 밖의 경계에서 간절하게 생을 영위한다고나 할까. 그 두 개의 층위를 동시에 사고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표피성, 껍질에 천착하고 있는 것 같다. 새삼 그 표면을 거점 삼아 새로운 회화, 회화에 대한 회화, 아니 회화를 넘어서는 회화(메타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회임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도 보게 된다.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인 표면에 대한 독자한 인식과 상상력 및 해석, 그리고 그것을 외화 하는 붓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표면에 부려놓는 '감각의 구현'에 의해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미술이란 결국 감각이 구현에 다름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는 부단히 환생하고 새로이 호명된다. 개별 작가들의 몸과 감각에 의해 표면과 물질이 순간순간 갱신되고 또 다른 생을 부여받으면서 마구 거듭나는 것이다. 새삼 오늘날 회화는 이제 저마다 그 표면에 저마다의 방법론, 매너로써 기술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론이라는 게 단지 기발하고 낯선 재료의 사용이나 전통적인 회화적 재료를 넘어서는 이질적 재료들의 접목으로 전개되는 이전의 방법론(70, 80년대 미술계에서는 흔히 '새로운 방법론'이란 제목의 전시들이 곧잘 이루어졌었다)과는 다른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많은 작가들이 그림의 내용, 주제보다는 방법론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다소 막연한 언어와 현학적인 개념을 빼고,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붓질을 할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단지 망막 중심적인 미술, 이미지 작업이 아니라 몸 전체가 관여하고 감각이 편승하며 촉각적이고 통감각적인 것, 그러니까 작가의 몸이 느끼는 사물의 피부질감, 그 감각을 붓질을 통해, 이미지를 통해 온전히 전달하려는 데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작업은 결국 작가들의 감각이 세계를 보는 프레임, 표현하는 방법론, 미술을 이해하고 구현하는 매너의 차이에 따라 구별된다.

김병훈_KLCP008_플렉시글라스에 피그먼트 프린트_70×53cm_2011
안준_Splash#1 (1/5)_HDR 울트라 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1×91.5cm_2012
홍미선_Atacama, Chile_피그먼트 프린트_70×105cm_2007

생각해보면 미술은 무엇보다도 어떤 물질을 가공해서 또 다른 존재로 환생하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거의 마술과도 같다. 자신이 다루는 물질의 바닥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자, 그 물질에 마음과 혼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물질은 한 작가의 육체와 정신에 의해 변형되고 변질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만남과 접촉은 불가사의하고 기이하다. 그것은 더 이상 이전의 일상적인 사물이나 물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무엇이라고 호명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상식적이고 규범적인 모든 명명命名의 체계를 흔들고 교란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새롭고 낯선 존재를 보여주는 이들이다. 그 낯설음은 기존의 사물과 세계를 보는 관습화된 안목에 회의를 갖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쨌든 그것은 그들이 오랜 시간 다루고 애무한 연장과 물질, 감각의 차이를 통해 발화된다. 더불어 작가에게 있어 손은 온 몸과 감각의 총화이자 그것이 전적으로 외화 되어 나오는 마지막 통로에 해당한다. 따라서 손은 단순한 기관이나 특정한 육체의 한 부위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에게 있어 손이란 한 작가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핵심이다. 손이야말로 작가의 얼굴이고 몸이다. 작가들은 그 손으로 특정 물질을 애무하고 그것을 현란하게 변환시키고 성형하며 또 다른 존재로 환생시키는가 하면 이 지구상의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손/지문으로 물질을 소진시키는 일을 반복한다. 미술이 여전히 가능하다면 그것은 한 작가의 손으로 인해서이다. 감각으로 길들여지고 결국 그 감각이 빠져나와야 하는 마지막 출구 같은 손이다. 영상과 테크놀로지의 발달, 다양한 매체와 현란한 기술적 수단들이 압도되어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손의 노동과 감각이 존재하는 한 미술은 죽을 수 없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한 작품을 본다는 것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육체, 몸의 놀림, 손의 흔적, 감각의 총화를 만나는 일이다. 한 개인의 몸과 감각이 물질과 연장의 힘을 빌어 응고된 결정이 결국 미술작품인 것이다. 미술이란 그 손맛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그것으로 마감되는 장르라고 말해볼 수 있다. 따라서 작가들의 손은 몽상하는 손, 꿈꾸는 손, 노동하는 손이자 물질과 뒤섞여 일체가 되는, 무척이나 감각적인 손이다.

이경민_바람, 어디에서 부는지(1/6)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66×100cm_2011
장문걸_505호 연구실, 17-12_사진_100×75.9cm_2012

그러니 그림이란 무엇보다도 외부 세계/대상과 작가 자신의 육체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림은 주어진 매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 매체를 작가들이 어떻게 대하고 점유해나가며 해석하느냐라는 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그간 다소 폄하되거나 논의에서 배제되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저마다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방법론들이 없는 게 아니다. 정작 아쉬운 것은 미술에 대한 개별적인 사유가 부족하다는 점이고 그 사유에 따른 방법론의 모색이나 창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생김새가 다르듯 다른 몸과 감각의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최근 한국 미술은 일종의 공예이고 인테리어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작가들마다 회화를 대하는 자신만의 사유, 그리고 그에 기반 해 자기 식으로 그림을 뜯어 먹는 방법론, 매너에 대한 독자성이 요구된다. 그만의 품성, 사유, 몸놀림과 재료 해석과 고도의 연마가 물씬 거리는 그림말이다. ● 인사동에 자리한 브릿지 갤러리가 개관1주년을 맞이했다. 그 1년 동안 이 갤러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작가 18명을 한 자리에 모았다. 회화와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평면, 표면에 천착하면서 기존 미술계의 관습적인 언어, 획일적 감각과 방법론에 저장잡히지 않으려는 작가들을 선별해본 전시다. 특정 주제로 강제하거나 동일한 매너로 수렴하는 대신 동시대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상투적 이미지와 클리세에서 벗어나는 통로를 찾는, 그 '다리'를 건너가려는 시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을 생각해본 전시다. ● 홍미선과 안준, 김병훈의 자연풍경을 몸으로 반응해서 이미지로 결정화하는 감각이 간직된 사진작업, 그리고 이경민, 장문걸의 오랜 시간의 흐름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세계의 파장을 담고 있는 정적인 정물 사진, 김도균의 사진만의 오랜 응시 속에 절취한 프레임의 감각적 구도를 극화하고 있는 공간 사진 등이 선보인다. ■ 박영택

Vol.20121031c | Beyond Bridg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