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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1019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파편의 심연 ● 1. 초 스피드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현대인의 삶은 복잡하고 다양한 것 같지만, 사실 개개인에게 있어서 삶은 반복적며 자동화되어 있다. 이러한 자동화된 삶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익숙함. 그래서 편리한, 즉 불필요한 망설임이 제거되어 현 세계관과는 더 없이 부합되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익숙하고, 무감각한 삶은 오히려 권태로움을 안겨주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일반인들과 다른 비딱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리지카이가 성장해 온, 현 시대 즉 중국이라는 사회는 무한 증식의 초 고속 발전일색으로 달려왔다. 이러한 발전 속에서 중국인들의 삶은 윤택해졌고, 생활의 여러 면에서 편리해졌으며, 일명 느긋하기로 세계 제 1의 국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중국은 이제 경제적 원칙의 잣대로 효율적이며, 군더더기가 없고 매끄러운 과속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속성장은 리지카이가 언급한대로 개개인에게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인 틈을 내어 주지 않고 있다. 즉 물질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는 거리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하게 되었다. 즉 사회와 개인간의 괴리감으로 인하여 상실감을 느끼며, 자신은 누구인가와 같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존재론적인 문제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70년대 생 작가군을 잔혹세대 혹은 만화세대라고 일컫고 있다. 수식어 없는 명사가 얼마나 추상적인지 아마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만화? 잔혹? 그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란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부분에 대한 조합으로 해석이 가능하리라 본다. 사실 잔혹이건, 만화건, 자아건 간에 중국에서 70년대 중반기에 태어난 작가들은 중국현대사의 격동을 미미하게 겪은 첫 세대이다. 이들 세대는 감히 정치적 격동을 피한 세대라고 칭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자본주의적인 삶이 많이 능숙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세대에선 이전세대와 확연히 다른 점이 포착이 된다. 즉 작품에 있어 정치적 성향(이념적 갈등)은 배제되어 있지만, 급변하는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개인의 내면 세계와 인간의 본성 즉 생과 사에 대한 것에 대한 고민을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성향이 짙은 작품활동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지카이 역시 70년대 생의 작가로 그 어떤 작가보다 더 현 사회에서 오는 상실감과 괴리감, 그리고 끊임없이 존재확인을 주제로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2. 리지카이의 작품을 보면서 혹자는 비현실적인 초현실적인 만화의 형식을 빌려온 작품이라 칭한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화면에 드러나는 소년과 인형, 그리고 파괴된 숲과 정령과 같은 소재와 비현실적으로 인물이 작거나 큰 이미지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작품이 지극히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리지카이에게 있어 중국사회의 변화상 특히 도시화로 인한 파괴와 재건의 현장은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데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이다. 사실 경제적인 발전은 서두에서 밝혔듯이 인간에게 엄청난 편리함과 윤택함을 안겨주었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을 선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가 리지카이에게 있어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아래 이루어진 도시 발전의 진행은 인간 삶의 윤택함과 화려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마치 자신이 숲의 주인인 듯 생명의 터전을 잃어버린 숲 속의 정령들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버릴 수 없는 과거의 흔적, 생명성, 그리고 조금 더 확장해서는 역사성 등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상실감이 표현되어 있다. 작가가 말하기를 숲과 버섯은 생명과 생장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인형이나, 정령은 소년의 분신과 같은 수호천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사항, 즉 생명을 뜻하는 숲, 버섯, 달팽이등과 같은 소재, 소년, 그리고 소년의 수호천사 혹은 분신인 정령이나 인형을 한 화면에 혼합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작가 리지카이가 체험한 현 사회의 맥락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어법상 강하게는 조금 과장일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서 생명 본연, 그리고 삶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논리를 끊임없이 구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3. 이번 인터알리아 전시에서는 특히 그의 도자기 파편작품이 두드러지게 선보일 것이다. 혹자는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지카이의 그간의 작품을 꾸준히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파편조각은 사실 근현대 과정을 겪고 있는 중국의 유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즉 현시대, 즉 가벼움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 이 부서지기 쉬운 시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기억 그리고 사라져가고 있는 과거의 가치에 대한 상실감에 대한 현 세계를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파편의 심연 속에서 말이다. ■ 김미령
Vol.20121016h | 리지카이展 / LIJIKAI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