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문자 상징, 인간 마음에 관한 신성(神聖)한 표정들... 1. 문자, 그 복(福)으로의 해석 ● 봉은영의 작품세계는 한국인의 근원적 조형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과 독특한 해석을 담고 있다. 작가는 문자와 이미지를 결합하고 해체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조선시대의 민화와 문자도의 일정한 계승의 영향아래 존재하고 있다. ● 미술사학자 홍선표가 말한 민화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민화는 형태의 반복과 과장, 파격적인 구성 등은 주술적 벽사성과 길상성 및 장엄화 욕구의 과정과 노골화에 따른 것이다. 특히 단순화와 도식화 등은 선사시대 이래의 주력(呪力)과 신명을 지닌 영매적(靈媒的) 도상의 오랜 전승성의 반영이며 오방색의 영롱한 농채는 악령을 퇴치하고 신령을 즐겁게 했던 고대 단청 전통의 계승으로 생각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민화는 벽사와 길상과 같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와 삶의 염원을 담아내는 일상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림이다. 그리고 액을 막아내고 복을 주는 인간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 봉은영의 작품에는 이러한 민화의 상징들을 문자도의 형식을 계승하고 변형함으로써 드러내고 있다. 특히 작가는 복(福), 전(錢)과 같은 부(富)에 관한 글자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문자들은 문자를 보완하는 상징의 도상들과 결합되고 있다. 이들 도상들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다. 화면은 대리석, 옥돌과 같은 천연재료로 채색됨으로써, 고대 전통벽화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견고한 색의 고착과 힘 있는 오방색의 생명력과 장엄함을 선사하고 있다. ●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원(願)+망(望) 시리즈들은 정통 문자도의 비유와 의인화를 따르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극적인 움직임의 변모가 돋보인다. 그림의 보이지 않는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의 상징들이 실재의 삶으로 현현(顯現)될 듯하다. 실제로 이들은 현실에 강렬한 힘을 관계하는 듯 신비스럽고 놀라운 기쁨도 주고 있다. ● 이렇듯 작가의 작품들에는 장식용으로서의 민화의 기능보다 그 상징성으로 인한 뚜렷한 상서로움. 신성함을 담고 있다. 집이 되고 사람이 되는 문자들 사이로 복숭아, 연꽃, 모란, 별자리 같은 도상들이 구성되고 있다. 이들은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단순한 형태들이다. 이러한 단순성은 기호화된 언어와 같이 다양한 삶의 긍정적 이야기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 곳곳에 스며든 조형들의 형태와 구성, 색의 배치에서 역사, 종교, 철학, 문학과 같은 인문학적 고민과 상상력의 사유들이 섬세하게 깃들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속에는 이미지에서 상징으로, 상징에서 신성으로 이행하는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초월의 의미와 기운들이 번져 나오고 있다.
2. 이는 곧 존재의 표정, 삶의 표정입니다. ● 이러한 작품에서 번지는 상징과 영성들은 작가가 우주에 대한 신성한 힘과 자연에 대한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에 대한 인지와 탐색에 관한 태도와 물음에 관한 결과로 보인다. 198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읽기인『테마 현대미술 노트』에 의하면 "우리가 정식 종교를 믿든 믿지 않는 간에 인간이라는 조건 자체가 영적인 것을 탐색하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듯 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과 주변 세상의 연관에 대해 숙고하며,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 경험에 대해 검토 한다" 고 쓰고 있다. 이렇듯 이는 작가가 우리 고전으로 거꾸로 올라가며 조형의 기원, 상징의 기원, 색의 기원과 원형으로의 탐색에서 만난, 삶과 죽음을 직면한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의 본질적 성찰의 모습인 것이다. 그 사유들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작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존재론적인 깨달음과 같다. ●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존재론적 욕망과 소유론적 욕망으로 나눈다. 존재론적 욕망은 참된 자신으로의 모습을 갖기 위한 마음이며, 소유론적 욕망은 탐욕으로서의 마음을 말한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으로부터 끊임없는 소유에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인 인간의 유한성으로부터 오는 존재 자체의 성찰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 작가는 이러한 탐욕으로서의 소유론 적인 욕망을 존재론적인 욕망으로 변환하기 위하여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이론을 삶의 가치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리이타를 통한 작가 스스로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마음을 대중과의 소통으로서의 지향점이라 말한다. 대승불교는 모든 이들이 불도(佛道)를 이루는 것에 원(願)을 두고 있는데, 이것을 위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자리이타의 행(行)을 실천하는데 그 존재의 목표를 둔다. 자리이타의 행동모델이 관음보살(觀音菩薩)과 같은, 대승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진 보살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보살들은 위로는 불법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는데(上求菩提 下化衆生) 그 본질적, 실천적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작가는 곧, 보살의 행(行)과 같은 자리이타의 마음을 자신의 욕망을 존재로 돌리고, 작품의 내용을 동물적, 인간적 욕망을 넘어서는, 안과 밖이 소통하는 존재론적 의미로 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삶의 이야기들을 단순하고 간략한 도상과 상징들로 변환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긍정적이고 위안이 되는 상징들로 풀어나가고 있다. ● 그것은 강렬한 언어적 상징을 통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행(菩薩行)과 같은 견지(堅持)에서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삶을 반성하는 듯하다. 어쩌면 작가의 행위에서부터 그 모든 결과에 이르기까지 대승(大乘)이 말하고 있는 인간고유의 탐욕적인 마음에서 모두에게 이로운 존재 자체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의 화면은 복(福)과 부(富)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살아 숨 쉰다. 또한 작가의 인간에 관한 성찰과 사유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믿음이 실려 있다. 유한한 인간 조건은 끝나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작품에서 그 마음 자체의 본질적 표정을 성찰하고 초월하는, 존재론적인 삶에 관한 마음들을 전해주고 있다. 앞으로 작가의 작품에서 고전을 입은 현대인의 구체적 욕망과 존재의 본질적 모습들이 깊고 다양하게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 (2012.10) ■ 박옥생
"무욕無欲은 소유론적 욕망을 존재론적 욕망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지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욕계欲界에 있는 한 그런 일은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무욕은 소유론적 무의식적 욕망을 존재론적 무의식적 욕망으로 방향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김형효의 "원효의 대승철학" 중에서) ● 인간은 자연생활에서 떨어져 나와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존재론적인 욕망의 삶보다는 소유론적 욕망의 삶을 추구하게 된다. 특히 현시대의 사회는 인간들의 복잡한 상관관계의 얽힘이므로 인해 욕망이 그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들의 사회적 욕망은 소유론적 욕망으로 점철돼 있다. 여기서 모든 인간사의 드라마가 생긴다. ● 그런데 인간의 소유론적 욕망이란 잡는 순간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환상이다. 결코 소유할 수 없다. 잡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더 찾으려, 잡으려 애를 쓴다. 사라짐은 죽음이다. 무(無)이고 텅 빈 공간이다. 그러나 이 텅 빈 공간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근원이 되고 욕망의 근원이 된다. 삶과 죽음이 반복적으로 순환한다. 결코 끝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소유론적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절망과 희망을 함께 갖게 한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을 모르고 희망이 없으면 절망을 모르듯이 말이다. 여기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관계를 지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물리학적으로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서로 잡아당기고 있고 생물학적으로는 모든 것들이 상생, 상극한다. 상생과 상극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한 사실의 이중성이며 이중적으로 작용한다. 물과 불은 상극인데, 그 둘이 서로 상호 보완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에너지원이 되는 것처럼 자연의 일체는 모두 상생과 상극의 작용을 동시적으로 수행한다. 자연의 존재 방식은 상생과 상극의 상관관계의 얽힘이며 이런 얽힘을 우리는 자연의 존재론적 욕망이라 부른다. 이러한 욕망은 상생의 아름다움과 상극의 처절함을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소박한 낭만주의적 심정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상하지만 자연은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 처절한 죽음의 장송곡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죽음은 자연의 새 삶을 가능케 하는 자기 정화작용을 포함한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자연은 스스로 정화한다. 이것이 곧 자연의 교환방식이다. 노자(老子)는 이런 자연의 교환적 존재방식을 혼이위일(混而爲一, 뒤섞여 하나로 존재함), 승승(繩繩, 새끼 꼬이듯이 이어짐), 만물병작(萬物竝作, 만물은 자타가 함께 지음) 등으로 표현하였다. ● 자연의 존재론적 욕망과 인간의 소유론적 욕망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좋고 나쁨을 따질 수가 없고, 또한 그것들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욕망 안에 소유론적 욕망이, 소유론적 욕망 안에 존재론적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소유론적 욕망은 결코 속된 것으로 여겨 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노자의 말처럼 양자(兩者)는 혼이위일 (混而爲一)인 것이다. 단 우리가 그 이치를 깨닫는 현명함을 가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본인은 작업을 통해 그 깨달음 얻어 보고자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 욕망을 통해 존재의 가치와 깨달음을 얻고,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보고자 한다. ● 인간이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의 가치와 깨달음을 얻고 자기뿐 아니라 모두가 이로울 수 있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 그 또한 욕심일지라도... ■ 봉은영
Vol.20121015e | 봉은영展 / BONGEUNYEONG / 奉銀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