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92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위슈엔(魏軒) 작품론: 영원한 생명을 향한 깊은 흔적 - 1. 신비한 언어의 시각화 ● 나무는 대자연의 생명성을 대표한다. 딱딱한 껍질과 견고한 뿌리는 현재와 실재에 맞닿아 있고, 드높은 줄기와 잎은 공기와 호흡하며 저 먼 세계의 우주로 뻗어있다. 지상의 물질계에서 천상의 정신계를 향하여 나무는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계절이 변하는 순환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며, 따스함으로부터 차가움에 이르는 시간이 만들어낸 표정들의 결과에 순응하며 오롯이 존재한다. 이렇듯 나무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정신세계로서 신(神)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무의 본성은 많은 작가들에게 작품의 영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신화로 자라나고, 어떤 이에게는 기원적인 안락과 휴식으로 다가온다. 우주목과 같은 성스러운 종교적 상징으로서 작용하기도 하며, 도달하고자 하는 정신의 구체적인 현현으로서 드러나기도 한다. 위슈엔(魏軒)이 그려내는 나무와 숲의 세계는 순수정신의 구체화이다. 위슈엔은 자작나무, 매화나무와 같은 나무의 숲을 그리고, 그 숲에서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이나 불상과 같은 문화와 종교적인 이미지들을 가득 형상화한다. 기억의 심층 속에 존재하는 강렬한 자기정체성으로서의 형상들은 나무의 견고한 기둥 속에 숨겨지기도 하며, 나무가 또 하나의 공간이 되어 그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인간보다도 오래도록 살아가는 나무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는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시간의 우주론적 비밀을 함의하고, 기억의 저장고와 같이 무한 확장하고 무한 축소되는 자유공간으로서의 존재로서 인식한 결과이다. 즉, 순환적인 시간과 무한공간으로서의 나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나무는 작가의 사유의 세계이며 정신이며, 우주적이고 신적인 본성을 함의하고 있는 신비한 대상물인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기억의 심층, 의식의 심층으로부터 끌어 올리고, 문화적 기원성과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기억들의 궤적들을 힘 있는 붓질과 독특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완성시키고 있다. 그의 문명의 시작과 오랜 시간 찬란한 동아시아의 문명을 일구어낸 서사적인 문화의 정체성은 깊은 사유와 색의 깊이로서 작품의 심연에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신비한 자연과 우주의 언어가 시각으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2. 고요의 세계, 사유의 색(色) ● 그는 정형적인 색채나 형태를 탈피하며 자아와 문화의 비밀 조각들과 같은 흔적들을 찾거나 숨기 듯 두껍게 물감을 칠하고 있다. 붓이 찍고 지나간 겹치고 이어지는 흔적들에 빛이 섬세하게 침투하고 반짝이는 자연의 고요한 세계가 스며 나온다. 이들의 풍경화에는 나무로부터 순수한 정신세계로 나아가려는 작가의 깊고도 오래된 정신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있다. 그 세계는 신비롭고 고요해서, 완전히 작가의 정신세계, 내면의 세계에 다다른 영혼과도 같은 순도 높은 절대 정신이 구체화된다. 따라서 위슈엔이 구현하는 깊고 중첩된 색들은 내면의 자아를 성찰하는 사유의 색이며 음미된 색으로서 영혼의 상태에 근접하는 색이다. 그의 이러한 색들은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와 같은 인상주의 계보를 이었던 20세기 초 중엽 작가들의 작품들과 친연성을 보인다. 인물과 풍경의 실존적인 표현, 내면의 심상을 끌어내고 사유하는 색, 부드럽고 강한 붓 터치의 힘과 특유의 분위기들은 작가의 작품들에서도 동일하게 간취되고 있다. 사실, 작가가 이러한 나무와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 영혼과도 같은 정신으로의 시선(視線)은 어릴 적 나무에서 작은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비로 변신 할 때의 자연의 생명력과 힘에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함을 경험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 고백하고 있다. 그 나비의 변신을 가능케 한 마당의 향료 나무가 가진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향기와 거친 껍질, 붉고 작은 열매들이 주는 촉감을 마비시키는 감각적인 유년기의 향수가 그의 풍경화를 완성시키는 신비한 언어의 힘으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 시절의 나무는 오랜 시간을 두고도 유년기의 추억으로 되돌리는 아득한 심연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3. 범아일여(梵我一如) 그리고 니르바나(Nirvana): 유한에서 영원으로 ● 최근에 보여주는「고요한 날들」,「고독한 날들」,「꽃피는 날들」,「생로병사 있는 날들」과 같은 일상의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표정들을 깊고 부드러운 감각의 색으로 완성시킨 대작들은 인간 삶의 의미들을 관조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의 곳곳에는 불상, 불화와 같은 불교 도상을 운용하고 있는데, 불교의 생활실천으로서의 면모가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작가는 나무에서 우주의 본성을 보았고, 자연의 생명을 깨닫고 자신의 자아와 추억이 함축된 신비한 세계로서 동일시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 사물이면서 무형의 정신이며 시간과 공간이 유기적이고 순환적인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본질, 곧 자아는 만물의 본질과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도해(圖解)인 것이다. 두 개가 하나인 것, 비로소 유한의 개체가 무한으로 나아가는 비밀의 빗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의 세계로 돌아가고, 우주의 본질적인 세계로 돌아가는 유한에서 영원으로의, 절대 자유의 니르바나(Nirvana), 해탈을 경험하게 된다. 위슈엔은 일상과 삶, 자연을 관조하고 음미하며, 고요한 적정(寂靜)의 상태로서의 마음의 빛깔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조형 안에 숨겨지거나 드러나고 있는 기억, 문화의 이합 집산된 흔적들은 나무와 숲으로 스며들거나 하나가 되고, 단일한 정신의 색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는 모든 것들이 두 개 이면서 하나인 범아일여로서 드러나게 되는 원융(圓融)과 무애(無碍)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은 장애 없이 모두가 하나로 귀결되고 융합되는 불교 중심사상의 구체화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는 작가가 동양사상의 핵심에 존재하는 주체와 객체, 타자와의 교류와 합일에 관한 이해와 정신적 성숙, 고민에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한에서 무한으로, 영원으로 도달된 니르바나는 생명의 들숨이라는 뜻인데, 고요한 정신의 세계로서 유한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의 사유를 끊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절대 자유의 정신과 영혼과 생명 그리고 내면의 세계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민족적 색깔이 뚜렷한 자기정체성을 바탕으로 표현성이 강조된 화면의 구사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이 구현하는 현대미술의 내용과 의미들을 환기시키고 있다. 민족적 정체성을 녹여내면서 미니멀한 화면의 동시대적인 면모는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어느 미술사학자는 "오늘날 미술은 영감이 무의식의 세계, 감추어진 내면의 세계 또는 집합적인 상징의 영역 과 같은 개인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침잠함으로써 표현되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위슈엔의 작품들은 작가의 영감 속에서만 창작이 가능하였다는 고전적인 창작 행위를 넘어서며, 유년기의 나무의 감각적이고 신비한 경험들과 내면 깊숙이 흐르는 중국문화의 강렬한 상징들이 작가의 내면으로 퇴적되어 작가의 무의식의 세계가 외부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한에서 영원으로 나아가는 생명에 관한 깊은 성찰과 우주적 본질에 관한 관조의 결과인 것이다. 위슈엔이 구현하는 음미된 색의 흔적들에서, 현대미술의 내용과 확장, 조형과 철학성의 만남에 관한 긍정적인 면모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과 정신, 본질에 관한 작가의 성찰이 향후 자못 기대가 된다 하겠다. (2012.8) ■ 박옥생
생로병사는 평범한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이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추억, 사고, 감정을 쌓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앞에 놓여진 기억, 욕망, 불안들 그 속에 빠지게 된다. 우리에게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은 우리 스스로가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감정들을 색채, 형태 방식으로 캔버스에 회화로 표현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사고와 연구의 과정이 그 해답을 찾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로운 삶의 자세이고 회화 작업을 통해서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 위슈엔
Vol.20120925d | 위슈엔展 / Wei Xuan / 魏軒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