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과 색

서진옥展 / SEOJINOK / 徐眞玉 / painting   2012_0921 ▶ 2012_1016

서진옥_마술적 공식_한지에 혼합재료_65.1×53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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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21_금요일_06:00pm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청년작가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7:00pm

군산 창작 문화공간 여인숙 Gunsan creative cultural space yeoinsug 전북 군산시 월명동 19-13번지 Tel. +070.8871.0922 cafe.naver.com/gambathhouse

끊임없는 나찾기의 여행 ● 서진옥 작가의 작품사와 작품관의 층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린다. 왜 작가는 초기작품에「형이상학적 표면」이라는 표제를 붙였을까? 작가의 초기작품을 보았을 때 나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은 나의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이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 중에서 가장 어렵지만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에 항상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려던 시절이 생각난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언급하듯이, 작가는 그림이란 형이상학적 언어로 표현되어야한다고 생각했으며 형이상학적 표면 위에 작가의 흔적을 남기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하얀 표면 위에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예술가적 역할을 하려는 듯하다. 작가는 예술적 언어를 가지고 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포부와 희망을 보여주었던 시기인 듯하다. 마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와 세계는 일대일 대응한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언어 속에서 모든 세계를 찾아내려했던 전기 시기와 유사하다.

서진옥_경계로부터의 자유_한지에 혼합재료_65.1×53cm_2007

화가는 왜 하얀 배경위에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쳤을까? 글을 쓰는 작가가 낙서되었거나 인쇄된 부분 위에 글을 쓰는 일이 드믈 듯이, 서진옥 화가는 예술이라는 세계를 하얀 종이로 생각하며 그 위에 자신의 「흔적」을 분명히 남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가 하얀 종이 위에 글씨를 쓸 때, 하얀 종이보다는 검은 글자 하나하나의 자국 그리고 자국이 남긴 의미가 중요하듯이, 서화가는 자신의 예술을 하얀 배경 위에 조심스럽게 하나하나의 흔적으로 남긴다. 형이상학이 어려운 언어이지만 인간만이 사용하는 언어이듯이, 형이상학처럼, 예술도 인간만의 세계이다. 서작가는 형이상학과 예술을 관계 짓고 있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형이상학이란 첫째 인간이 사용하는 가장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반박이 있지만 인간의 언어는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라는 점에서 동물의 언어와 분명히 다르다, 즉 인간만의 것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형이상학과 예술의 공통점은 바로 인간만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만 때로는 다수가 이해할 수 없는 특정 집단만이 이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언어의 이중적 측면이다. 형이상학은 바로 인간만의 언어로 되어있으며, 특히 학문성을 지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작가의 「형이상학적 표면」에서는 서작가의 세계만을 표현하려고 한다. 하얀 배경은 예술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하얀 표면 위에 작가적 사명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하나의 흔적을 남긴다. 이 시기는 예술적 역할과 소명에 대하여 긍정적 사고를 지닌 시기이다. 그의 역할은 하얀 표면 위에 규칙성(혼돈이 아닌 나름대로의 질서를 부여함)을 가지고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름의 규칙성을 찾으며 규칙성에 대한 희망에 차있다.

서진옥_경계로부터의 자유_한지에 혼합재료_65.1×53cm_2007

「마술적 공식」의 작품에서 작가는 예술가의 역할보다는 예술의 본질을 질문하고 있다. 예술의 역할에 회의적 질문을 하면서 예술가의 역할보다는 예술이란 무엇인가하고 자문하고 있다. 작가의 고뇌와 번민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밝은 색보다는 어두운 색상으로 작품을 단색 처리하였으며 작품 속에서 작가의 유일한 관심사인 예술에 대한 본질을 자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름의 공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은 이성적 차원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 즉 마술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이성에 바탕에 둔 학문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와서 색상이 많이 어두워지고 있다. 마치 피카소가 「노인의 기타연주」 또는 「가난한 식사」에서 미술평론 잡지사업의 실패와 자신의 지인 이였던 카사헤마스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 이후에 자신의 우울한 내면에 잠긴 시기였던 「청색시기」와 유사하다. 서작가는 예술에 대해여 묻고 또 묻고 하면서 나름의 마술적 공식을 찾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작가의 내면의 세계를 그리려는 작가의 고뇌와 번민에 충실한 시기이다. 방황 속에서 작가는 외로웠고 혼돈스러웠던 듯하다. 이 시기는 외부세계에서 내면세계에 주목하면서 작가의 감정, 아니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인들의 감정에 충실한 시기이다. 자본주의의 사회가 극도로 전개된 현대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거부하거나 들을 시간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게 만든다. 모두가 바쁘다. 정서가 왜곡되어 있다, 이러한 심리적 왜곡은 자살, 폭력, 살인, 우울증 등을 야기했다. 이러한 현대 병리적 현상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발생하는 것도 우연스런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 솔직히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외롭다, 우리는 힘들다. 이러한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두운 단색이외 무슨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이시기는 현대인의 감정을 충실히 들어낸 시기인 듯 보인다.

서진옥_경계로부터의 자유_한지에 혼합재료_65.1×53cm_2007

「경계로부터의 자유」라는 작품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밝은 색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의 주제도 예술의 본질에서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변화한다. 예술가적 사명이나 예술의 본질을 질문하는 시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더욱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기이다. 「나는 나의 규정에 충실하고자 한다」라고 작가는 고백하고 있다. 긴 작가적 여정을 통해 여러 질문을 결쳐 우회하였지만 결국 예술에 대한 질문은 인간, 아니 나는 누구인가 하는 소크라테스적 질문과 통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역사인 듯하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작가를 구속하였다면 이제는 이러한 지나친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질문의 무게에서 벗어날 때 작가의 감정은 한결 가벼워지며 밞음이 찾아온 것 같다.

서진옥_경계로부터의 자유_한지에 혼합재료_65.1×53cm_2007

예술가라고 해서 예술이라는 틀에 박힌 선입견(경계)에 자기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과감히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가도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연인이다, 바로 인간이다. 기존의 질문에 대답을 하거나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심리적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존의 질문을 답하려하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때 느끼는 자유함이 존재한다. 다른 문제에서 기존의 문제의 본질을 보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예술의 본질을 답하려하기 보다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오히려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지름길인 경우도 반드시 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질문에 반드시 답변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때 인간은 병들고 구속된다. 이러한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때 느끼는 감정이 있다. 경험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자유함의 감정이다.

서진옥_형이상학적 표면_한지에 혼합재료_45.5×37.9cm×3_2004

또한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어떠한 규정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역사는 경계 초월의 역사이다. 이러한 초월의 자유가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인간됨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한다. 동물과 달리 규정성을 넘어선다. 이처럼 규정과 경계를 넘어서려는 몸부림이 인간의 본질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예술은 예술다워지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 몸부림을 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유로움을 향해 손짓하는 강한 몸짓이 작품 속에 가시적으로 들어나 있다.

서진옥_금강을 바라보며_한지에 혼합재료_41.5×33cm×5_2010

작가의 작품은 개인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작가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이다. 이점 때문에 그림은 우리의 무딘 감정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가의 사고의 전이는 작품의 변화를 초래했다. 작품의 층들을 한데 모아 전시를 한다. 이러한 작품 속에서 서진옥이라는 작가를 찾지 말고 우리의 모습을 찾기 바란다. 나는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 작품을 통해 나의 내면적 상태를 점검하고 이해하는 여행을 즐기시라. ■ 양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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