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후라질]

김지훈展 / KIMJIHOON / 金志薰 / painting   2012_0919 ▶ 2012_0928

김지훈_fragile the fragile_장지에 먹, 채색_150×1050cm_2012

초대일시 / 2012_091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0.1144 www.gongartspace.com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을 살아가는 어느 청년의 단상 ● I. 시대정신이라 함은 한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형태 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혹은 이념을 일컫는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피력하였고, 헤겔은 '민족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며 동시에 과거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함께 진보한다는 특징이 있다. 정신이 진보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종결되는 일회성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시대의 보편성에 대한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예술에 있어서의 시대정신의 역할은 독보적이며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대에 따른 예술적 정신의 흐름이나 전개가 곧 '미술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는 긴 호흡을 가지고 아주 조금씩 변모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으나 때로는 해당 지역이나 국가의 역사적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과 함께 급변하는 양상을 띄기도 한다. ● 우리나라의 경우 후자와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시대를 반영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리해보고자 할 때 80년대 민중미술의 태동과 폭발적인 파급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1세대 민중미술이라 함은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사회운동과 그 궤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시위에 사용되는 걸개그림이나 벽화, 바닥화의 형태로 시작된 민중미술의 조짐은 당시의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모임을 통해 미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독립적인 아이콘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1세대 민중미술은 그것의 뜨거운 출발과는 달리 예술적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현실참여의 한 형태 정도로 축소포장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는 당시의 민중미술이 그것의 기본 틀을 미술에 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위한 정치적 노선의 연장선에 두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의 예술가들은 현실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을 뿐 그것의 결과물을 자신의 감성과 결합시켜 예술의 입장으로써 독창적 발전을 꾀하기엔 너무도 긴박한 나날을 보냈을 것임이 틀림없다. ● 지지부진 하던 민중미술의 조류는 80년대 말이 되어서 2세대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에는 작가뿐 만 아니라 탄탄한 비평가나 이론가들도 이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이 즈음에는 태동기처럼 단순히 정치적 활동에만 동참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에 예술적 관점을 삽입시켜 극소수의 지식인들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이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양적, 질적인 확장을 꾀하였다. 여전히 목소리를 표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반 미술에 비추어 볼 때 직접적이고 격정적이었으나 1세대에 비해서는 다분히 미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2세대 민중미술의 경우에도 역시 그것의 기반은 예술이 아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 이었다. 1세대 민중미술의 출발점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서 기인했다면 2세대는 '민중은 곧 노동자'라는 일종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사회 평등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운동은 결국 학생운동과 결합되었고 이후 어떤 그룹은 '진정한 민중미술이란 곧 노동계급의 문화이다.'라고 가치를 산정하기도 했고, 또 다른 그룹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반기를 들며 사회주의로의 변화를 소리 높이기도 했다. 결국 예술가들의 극단적 자기 주장은 대중과의 소통 부재로 생긴 온도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1세대와 2세대의 민중미술과 비슷한 형식을 차용한 소그룹들의 활동이 종종 목격되기도 하나 당대 미술계의 큰 흐름에 영입되기엔 그들의 목소리는 작은 편이다.

김지훈_fragile the fragile_부분

II. 2000년대에 들어 서면서 우리 삶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대한민국은 독보적인 IT 기술력과 정보화를 기반으로 세계 속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후 사회는 잉여 된 자본을 담보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시대는 386세대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보수집단으로, 기성세대로 탈바꿈 시켰다. 사회 보다는 나 자신이 우선시 되는 만연한 개인주의적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부폐한 사회에 대해 광장에 모여 항거하기 보다는 인터넷 토론방을 이용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상황을 운운하기 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하며 '미래' 보다는 '내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 성인이 되어 독립된 사고를 하게 된 세대들의 머릿속에 광주는 이제 비엔날레의 도시일 뿐이고, 금남로는 광주에서 제일 큰 교차로 일뿐이다. ● 본인은 민중미술의 정의를 정치적 미술운동의 특정 맥락으로 보지 않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예술사조로 보고자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민중미술은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대중이 시대의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방식의 하나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입장에서 민중미술을 정의 내려 보았을 때 지금 시대의 민중미술이라 함은 무엇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산업화에 대한 기대, 민주화에 대한 열망, 노동자 계급과 지배층 간의 간극 축소, 집단 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를 거쳐 2012년 대한민국에서 대중의 보편적 정서는 과연 무엇이 지배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민심을 예술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을까. ● 기술과 자본에 의해 정의되는 사회, 서구문화에 대한 무절제한 수용, 그리고 그로 인해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결핍을 우려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종용하는 목소리들은 근래에 들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꽤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이들은 이러한 폐단이 자본가와 정치가, 그리고 미디어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1%의 권력자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99%의 대중을 세뇌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들은 미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모든 것들을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정리해 보자면 민중미술의 태동기부터 이미 사회 특권층은 존재해 왔으며 1세대에는 정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려 했고, 2세대에서는 경제력을 근간으로 하여 우리를 억압하였다. 이제 그들은 정치, 경제뿐 만 아니라 사회기술과 언론, 심지어는 문화를 이용해서도 대중 위에 군림한다. ● 일찍이 기 드보르는 1960년대에 이미 이러한 조짐들을 곳곳에서 목격했고 훗날 이것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커다란 권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가 말한 '스펙타클의 사회'는 실체가 없어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의하면 스펙타클은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의 위력은 자본의 음영이 드리워지는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 걸쳐 발휘된다. 자본이 지배하는 모든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스펙타클이라는 거대한 축적물로 귀결된다. 스펙타클은 특정 대상이나 독립된 이미지이기 보다는 사회의 이미지들에 의해 조작되어 형성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 그것은 이미 관념적 이미지의 범주를 넘어섰고, 정치, 미디어, 문화, 철학을 지배한다. 동시에 개인의 사회활동과 대인관계는 물론 삶의 목표와 세계관까지도 설정해 준다. 이것은 한낱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바꾸거나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삶을 다 할 때까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 기 드보르가 언급한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는 그저 현실이 특정 세력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큰 향상을 가져 올 것이라는 정도의 주장이다. ● 당대의 젊은 예술가들은 바로 이 지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화면에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거창한 주제를 내비치지도 않고 크게 비판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기 드보르의 요구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삶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젊은 세대들의 방식이 어쩌면 선배 예술가들의 사회적 참여도에 비해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존의 민중미술이 소수의 지식인에 의해 절대 다수의 대중을 일방적으로만 이끌었던 탓에 결국 무력화 되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이들의 완곡한 표현방식은 사실 훨씬 합리적으로 보여진다. 이것을 본인은 또 다른, 혹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민중미술의 한 갈래로 보고자 한다.

김지훈_'a' made by 'b'_장지에 먹과 채색_91×72.7cm_2012
김지훈_Stand_장지에 먹, 채색_160×490cm_2012

III. 김지훈이 전시의 제목으로 정한 『FRAGILE [후라질]』은 그 대상을 인간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그가말하는 인간이라 함은, 부서지기 쉽고, 취약하고 허술하면서, 동시에 섬세함을 동반한 마치 유리잔과도 같이 위태롭고 연약한 존재임을 관객에게 암시하고 있다. 또한 FRAGILE과 발음이 비슷한 '후라질'이라는 한글 표기도 덧붙였는데 이것은 어떤 일이나 형국이 뜻한 바대로 진행되지 않아 속으로 안타까워할 때 내뱉는 감탄사로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불안함과 안쓰러움을 반어법으로 위트있게 인용한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두 가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가지는 인간에 대한 취급주의, 다시 말해 인간존중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이고 다른 한가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어떤 허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가지 모두 현대 산업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나 전자의 경우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풀어낸 것이고 후자는 한층 확장된 시각으로 전체를 바라보며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 그의 신작들은 전작과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보여지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결국 작가가 시종 천착하고 있는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작인 사탕 시리즈에서는 그의 차분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는 사탕이 입안에서 녹아 사라지는 형태가 마치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듯, 녹아가는 사탕의 구석구석을 폴라로이드 필름이 담고 있다. 어떤 부분은 이미 녹아 사라져 버린 곳도 있고 다른 부분은 처음 그날의 기억처럼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사탕 사진도 있다. 작가는 잊혀져 가는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련한 향수를 단순히 개인의 기억력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추억이나 기억의 지탱을 방해하는 어떤 사회적 개입의 일부로 본다.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어느 한 대기업의 광고 카피처럼 기술의 과도한 발전은 평생 구속되어 있고만 싶었던 우리의 어떤 기억들 마저도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버렸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현란한 지금 이 순간만을 반영하고 희미한 과거를 끄집어내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과거와의 기억을 차단할 뿐 아니라 현재의 순간도 막아선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결국 그것은 실체가 아닌 디지털 기술에 투영된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김지훈은 이러한 잉여 된 자본과 기술력이 사용자의 편의에만 치우치는 바람에 결국은 인간에 대한 기만과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결국 작가가 초기작부터 말하고자 했던 키워드는 '인간'인데, 개인의 문제로 출발했던 작품들이 근래에 와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 작가 혼자만이 느끼고 있던 문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김지훈_Do not enter_장지에 먹, 채색_130×160cm_2012

김지훈_Where_장지에 먹, 채색_91×72.7cm_2012

IV. 좀 더 본격적으로 김지훈의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가 이미지를 구성해 내는 방식은 나무조각으로 이루어 진 간판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다. 간판이라는 것의 목적은 자신의 상점이나 영업소의 존재를 행인에게 드러내기 위해서 통상적으로 가게의 출입구에 세워두거나 입구에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된다. 그러나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간판은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목격되는 형태의 간판이라기보다는 대형 건물의 옥상이나 도로변에 큰 규모로 설치되는 옥외간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행인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소형 간판과는 달리 이러한 대형 간판의 경우 자신의 기업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나 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를 가장 핵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함축적인 문장이 인쇄되어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특정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되겠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간판의 경우 눈이나 비, 바람 등에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견고하게 제작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간판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롭고 조악한 나무조각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김지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진 간판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전● 시의 출품작 중 상대적으로 초기에 제작된 작품 「Fragile the oriental painting」을 살펴봐야 한다. 이 작품은 당대의 동양화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동양화 작가로서 갖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진경산수화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겸재의 작품을 화면의 뒤 쪽에 그대로 모사해 놓고 전면에는 영문으로 된 '취급주의' 간판을 세웠다. 섬세하게 세필로 정성껏 그려진 진경산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간판과 그 간판의 상단에 게양되어 있는 미국의 성조기는 묘한 긴장감을 표출한다. 관객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정리되지 않은 공사현장은 선택을 머뭇거리는 작가의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동양화나 한국화 전공 학생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풀어내느냐, 혹은 어떤 방식으로 화단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가 따위의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문방사우라는 한정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어떻게 현대적인 동양화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가 가장 큰 관건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동양화가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사이에 두고 고민을 해왔고, 그사이 세계 미술계의 흐름은 몇 번이나 뒤바뀌었다. 우리의 선배들은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고, 후배들은 이것을 바라보며 '동양화의 위기'라 말한다. ● 자신과 가장 근접한 지점에서 출발한 불안과 우려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좀 더 확대 재생산된다. 출품작 중 가장 대작에 속하는 「Fragile the fragile」에는 바로 이렇게 확대된 작가의 관심사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10미터가 넘는 'Fragile' 이라는 대형 간판에는 작가가 지켜야만 한다고 판단한 7가지의 가치를 대입하여 제시하는데, 이를 테면 Frog (자연), Religion (종교), America (국가), Gold (경제), Icecream (동심), Love (사랑), Earth (지구) 등을 각각의 스펠링에 맞추어 이미지를 삽입한 형태가 그것이다. 이것은 마치 회화문자나 픽토그램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는데, 일반 대중이 빠르고 정확히 읽고 의미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그것의 기본 명제에 충실하고 있다. ● 「Fragile the oriental painting」과 「Fragile the fragile」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나 판단에서 비롯된 작품들이라고 한다면 「Stand」의 경우에는 좀 더 사회적 현상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로 대변되는 식음료 부터, 독일의 고급 자동차,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라 자부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성조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대국이 만들어 낸 가치들은 매우 거대하다. 이것들은 모두 소비자를 위하는 척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것의 이면에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한 글로벌리즘의 결과물들은 이젠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아주 좁은 틈새까지도 침범해 있는데, 예를 들면, 영어 지상주의와 한글 경시 풍조, 서양식 인스턴트 식품 위주의 식생활, 그리고 명품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 등은 그야말로 문화사대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풍토를 비판하고자 그것들이 허상뿐인 존재임을 암시하며 거대한 간판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표현해 직접적으로 본인의 심경을 토로한다. 촘스키의 표현처럼 식민지 시대의 주체에게 역사란 한낱 낡고, 고리타분하고, 희미한 것이다. 지배자였던 자들은 오직 영광스러운 미래를 향하여만 행진한다. 하지만 곤봉을 맞은 사람들은 반드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_at night_장지에 먹, 채색_130×160cm_2012

V. 마지막으로 「The Art」라는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사실 다른 전시작들에 비해 크기도 작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다소 명확하게 드러나는 탓에 막상 전시장에 걸린 뒤에는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은 이 작은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작품은 전시를 준비하며 거의 마지막에 완성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 다음 전시에 선보일 작품들에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The Art」의 언급이 앞으로 작가가 새로운 각도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킬 여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콕 찍어 제프 쿤스의 작품세계만을 예술의 기준점에 부합하는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마도 굳이 The라는 정관사를 붙여 총체적인 의미로서의 '예술'을 지시 하는 것일 테다. 이 작품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두에 언급했던 '시대정신의 변화는 긴 호흡을 가지고 아주 조금씩 변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문장을 다시 한번 가지고 와야 하겠다. 왜냐하면 최근 십 수년 사이에 이러한 시대 정신과 관련한 일반논리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정신'에 근거한 예술이 아닌 '시장'과 '미디어'의 논리에 근거하여 전 세계 미술계가 폭발적으로 변화하였고 그것의 거품이 꺼지고 난 후의 세계 미술계는 참혹했다. 혹자들은 실도 있었지만 분명 득이 더 많았다고들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당대의 미술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제프 쿤스나 데미언 허스트 같은 작가를 역설적이게도 어느 평론가는 사후에 가장 먼저 잊혀질 작가 1, 2위로 선정하기도 했다지만 예술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과 흐름이 깨져버린 미술계가 다시 치유하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 개인의 소소한 기억에서 출발한 김지훈의 작품은 동양화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거대한 자본 안에서 살아가는 작은 인간으로써 지켜야만 할 것들을 찾아보고, 나아가 후기 식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되짚어 보며 그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곤 마지막에 다시 예술가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 '과연 이 시대의 예술이라 함은 무엇인가'를 반문해 본다. 김지훈은 인간 고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들에 저항한다. 김지훈이 저항하는 것들은 거대한 자본이기도 하고, 고유의 인간관계를 훼방하는 기형적 문화구조나 SNS이기도 하다. 그는 걸러지지 않은 서구 문명에 저항하기도 하고, 강력한 국가나 그 국가가 배설한 사회적 산물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강력한 권력에 의해 규정 내려진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보기도 한다. ●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이 시대의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 경의를 표한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김지훈의 행보를 주목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들이다. ● "19세기 이후에도 전 세계에서는 언제나 문화적인 저항이 있었고, 민족주의자들의 민족 정체성 주장이 있었으며, 또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공동 목적을 가진 여러 집단의 등장이 있었다. 물론 서구의 제국주의는 활동적인 서구의 침입자와 게으르고 비활동적인 토착민을 싸움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지 저항은 있어왔고, 대부분의 경우 그 저항은 결국 승리했다."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W. 사이드)윤상훈

Vol.20120920h | 김지훈展 / KIMJIHOON / 金志薰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