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출구로서의 그림 ● "나의 작업은 자유 그 자체이다. 계획적이고 늘 최선의 선택, 최고의 결과를 지향하는 완벽에 대한 강박은 화지에서만은 무장 해제된다. 여러 개의 캔버스와 한지, 판화지, 소포 지를 펼쳐 놓고 마음가는대로 색을 선택하고 춤을 추듯이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느리게 선을 긋고 형태를 만든다."(김선숙)

김선숙_집으로 오세요._종이에 스티커, 펜, 오일바, 크레용_68.6×99.5cm_2012

김선숙_참 잘했어요._종이에 스티커, 펜, 오일바, 크레용, 아크릴채색_100.1×138.6cm_2012

효율성과 무거운 책임이 수반되는 사회에선 자아가 위축되거나 억제되기 쉽다. 그러나 김선숙은 주위의 시선이나 규율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림 속에서 만큼은 마음껏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외로움과 쓸쓸함, 불편함과 스트레스 등을 쏟아내도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 그림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용납하는 것이 좋아 더욱 그림에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마음 가는 대로 색을 선택하거나 조형의 리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곧 자기만의 상상세계를 표시하며 일종의 정서적 출구로서 그림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자유스런 표현은 작가가 재료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화면에 여러 종이를 붙여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삼합 지나 소포지, 포장지, 다이어리, 색종이, 스티커 등을 도입하기도 하고 그에 어울리게 연필이나 볼펜, 매직, 크레용, 사인펜, 잉크, 오일바 등으로 이미지를 올리기도 한다. 여러 재료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그때그때의 느낌과 생각들을 스스럼없이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김선숙_비바람이 몰아쳐도._종이에 스티커, 펜, 오일바, 아크릴채색_227.3×181.8cm_2012

김선숙_늙어 병들어 죽다._종이에 스티커, 잉크, 오일바, 아크릴채색_139×100cm_2012

작가의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유희충동이랄 수 있다. 그의 그림이 장 뒤뷔페의 아트 브뤼트(art brut)를 연상시키는 것은 기성의 관습과 이성의 편견을 거부하려는 제스처로 읽히며 내면의 충동과 정서를 숨기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 진다.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않는 형식으로 잠재된 인간내면을 정 조준하는 것이다. ● 작품에는 손과 눈, 귀와 같은 신체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집과 계단과 같은 이미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신체가 자아의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직접적인 기관이라면, 집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이자 보금자리로 풀이할 수 있다. 그만큼 작가에게 있어서는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구체적으로 작가가 말하듯이 그는 "작가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식한 가정, 가족, 사회 속에서의 끊임없는 관계와 선택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는 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여성작가라면 어김없이 마주하게 되는, 작업과 가사의 갈등이 작업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김선숙_붉은 지붕_종이에 스티커, 펜, 오일바, 아크릴채색_116.7×90.9cm_2012

흥미롭게도 근작에선 천진성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에 제작한 여러 점의 작품을 보면 점점 더 단순해지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얘기인즉 조형체계를 건너뛰고 상징성을 띤 이미지들을 직접 투하하고 있다는 말이다. 화면을 장식하는 모종의 기호가 이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필선으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드로잉 역시 이를 뒷받침해준다. 집을 그릴 때도 집 위에 집을 얹혀놓는 식으로 동일패턴을 반복하는 방식을 취한다. 자신의 세계를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순박한 아이들처럼, 김선숙의 작품은 바로 그런 천진성을 띠고 있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미술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 다분히 고독하고 쓸쓸하며 그러면서도 행복과 평화를 갈구하는 측면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작가 내면의 심리를 감추지 않고 여성작가로서 지닌 고충을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형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 고민하듯이 작가는 욕망과 환경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갈등을 보는 것이 그다지 편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긴박한 삶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짜릿함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얼마나 우리는 자주 수렁에 빠지고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고투하는지…. ● 작가는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몰입의 순간으로, 무의식의 결과물을 의식하면서 심리와 감정 상태를 확인 한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회화란 내가 누구인지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이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통로이다. 다시 말해 표현이란 감정분출을 통해 현실과 욕구의 충동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자기를 추스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붓을 드는 있는 이유이자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순간이 된다. ■ 서성록

김선숙_집_종이에 스티커, 펜, 오일바, 아크릴채색_227.3×181.8cm_2012

Sun-sook Kim, Painting as an Emotional Vent ● The self is easily intimidated or oppressed in our society where efficiency and huge responsibilities are demanded. However, Sun-sook Kim breaks free from regulations or being conscious of other people, and seeks freedom as much as she pleases in her paintings. Though we pour out our loneliness, dreariness, discomfort, stress, and more, paintings accept it all. Maybe we become more captivated by paintings because we like the fact that paintings understand our situation and accept it. Choosing colors as she wishes and letting the rhythm of the form take over mean she perceives paintings as an expression of her own world of imagination and a kind of emotional vent. ● Freedom in expression can also be found in Kim's unlimited use of materials. Kim prefers to attach many different papers on the surface. Thus, Kim utilizes three-ply paper, package paper, diary paper, colored paper, stickers, etc. She also draws images on them with writing supplies that fit the paper such as pencils, ball point pens, crayons, markers, ink, oil bars, etc. By using various materials alternately, she immediately expresses what she feels and thinks without reserve. The most remarkable thing in Kim's paintings is their spieltrieb ("the play drive"). The reason Kim's paintings remind us of Jean Dubuffet's Art Brut is because her art is a gesture that rejects the existing conventions and the prejudice of reason. Also, it is because her paintings do not hide the impulses and the emotions of the inner self. Kim's art takes aim at the latent inner workings of human beings with its coarse and rough form. ● The image of the body, such as hands, eyes and ears frequently make an appearance, as well as images such as houses and stairs. If the body is the direct passage way that perceives the self's outside world, the house can be interpreted as the fence and nest that protects me. In other words, the artist pays that much attention to the things that revolve around "me". As the artist specifically states, she implicitly expresses the "journey of resolving the conflicts that occur in the endless relationships and choices in the home, family, and society perceived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artist and the self." Particularly, the conflict between work and home making activities, the problem that a female artist inevitably must face, seems to consistently influence her work. ● Interestingly enough, in her recent work, innocence stands out. Especially in several of her works she created this year, more simple and spontaneous aspects can be seen. Kim has skipped the shaping process and is directly dropping images that are charged with symbolism. This is represented not only by a certain sign that decorates the surface, but also by spontaneous drawings made with numerous brush strokes and lines. When drawing a house, Kim repeats the same pattern such as placing a house on top of another house. Like simple children who convey their own worlds at face value, Kim's works are filled with this sort of innocence. ● As mentioned previously, Kim's work is immersed in her own world, regardless of the flow of the existing art world. It is possible to see that she desires solitude and loneliness, happiness and peace at the same time. She does not hide her inner mentality and she sublimates her difficulties as a female artist into a unique artistic style. As we contemplate between the ideal and reality, the artist contemplates between desire and environment. We feel uneasy when we see the conflicts of our own inner selves. However, through this encounter, we inevitably feel exhilaration as if watching a drama filled with the tension of life. How often do we sink into a pit and struggle to crawl out of there… ● The artist explains that "the most enjoyable moment is when she is absorbed in her work, oblivious even to what she is expressing: she checks on her psychological and emotional state while being aware of the results of the subconscious." To her, painting is a method that can verify who she is and a passage that helps her find herself. In other words, through the gush of emotions called expression, Kim fills the gap between reality and the impulse of desire, and pulls herself together. This is the artist's reason she holds a paint brush, and the moment she identifies the significance of her existence. ■ Sung-rok Seo

Vol.20120919f | 김선숙展 / KIMSUNSOOK / 金宣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