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Object

성라미展 / SUNGLAMI / 成羅美 / painting   2012_0919 ▶ 2012_1007

성라미_Red Objec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2×16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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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21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Red Object : 역설이 보살피는 '자라나는 풍경'Red Object 성라미의 전시는 '붉은 오브제들(Red Objects)'로 꾸며졌다. 그런데 그것들은 실상 복수의 집적체이기 보다는 대부분 건조하고 침잠한 공간 속에 외롭게 자리하는 것들이다. 때로는 화면 안에 회색의 기다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고즈넉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식물이거나, 때로는 화면 밖에서 추위를 맞고 있는 가련한 선인장의 모습으로 자리한다. 그것들이 더러는 흰색 혹은 청회색의 탁자 위에 군집들로 서로 모여 있는 장난감 로봇과 자동차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녀의 붉은 오브제들은 주어진 공간 안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이다. ● 그것들이 선인장과 같은 식물이거나 장난감 로봇 혹은 실내에 걸어둔 벙어리장갑과 같은 사물의 형상으로 다양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것들은 한결같이 건조하고 침잠한 색조를 바탕으로 자리한 채,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 여기 있어." 하나의 화두처럼 던져지는 이러한 언급은, 창작에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지난한 시간들을 감내해왔던 작가 성라미의 창작에 대한 남모를 번민과 고민들이 비로소 발화되는 지점이다. 현재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한 선인장이지만, 그것이 붉은 열정을 가슴에 품고 가시들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온 존재들인 것처럼, 그녀 역시 번잡한 일상과 부단히 대면하면서도 예술 창작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온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관조의 대상으로 작품에 나타나는 붉은 오브제는 실상 작가 성라미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성라미_Red Objec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2×157cm_2010
성라미_Red Cact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20cm_2012
성라미_Red Cact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20cm_2012

Warm Hybrid ● 그녀가 도미(渡美)하기 전부터 가졌던 일련의 개인전들에서 '변종(variety)'이라 불렸던 그녀의 혼성 오브제들은 이제 '따뜻한 잡종(Warm Hybrid)'으로 옷을 갈아입고 귀국했다.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들고 몬스터와 원생생물 사이를 횡단하던 그의 거대한 오브제들은 대개 그 크기를 줄이고 평면작업으로 전이되면서, 병적 징후마저 지닌 괴기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들로부터 대부분 탈피해 있다. 대신 이전의 상상력 가득한 이종생성의 조형언어에 심리적 전이를 강화함으로써 외형적 스펙터클로부터 내재적 심층(深層)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우리는 그녀가 그간 언급했던 '변종'이란 용어가 생물학 분류체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 용어가 파생시키는 '변이'의 의미를 강조했던 개념이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변종이란 생물학 용어로 '돌연변이로 인해서 그 형질이나 분포가 달라진 종(species)의 집단'을 의미하지만, 그녀에게서 그것은 어떠한 범주화와 분류체계에 속하지 않으면서 혼성의 의미로서 존재하는 모든 자유로운 변이체(變異體)를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물론 비예술의 세계를 예술가의 체험적 삶 속에서 자유로운 예술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이성적 사유 체계보다는 '지속(Durée)'이라는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 실존으로서 '직관(intuition)'의 체계로 접근하는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라는 세계를 예술로서 실천하고자 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성라미_Red Cact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5×194cm_2012

우리는 그녀의 변종이 일으킨 '창조적 진화'의 세계에서 '따뜻한 잡종(Warm Hybrid)'이란 이름을 발견한다. 그것은 고즈넉한 집을 지키고 있는 가시 혹은 털을 몸에 지니고 있는 붉은 선인장과 같은 동/식물이거나, 연체동물의 촉수 같은 뿌리털을 늘어뜨리고 자신의 긴 그림자 속에 외로이 서있는 커다란 붉은 무와 같은 '동물/식물'이다. 그(것)들 스스로는 외롭지만 언제나 다른 것들과의 따뜻한 대화를 시도한다. 삭막한 공간의 차가운 벽에 자신의 그림자로 스킨십을 하거나 공간 밖의 달님을 자신의 방안으로 불러와 이야기를 지속한다. 때로는 이러한 '따뜻한 잡종'은 쌓아올려진 종이컵들이 만들어내는 기다란 그림자를 뚫고 자라나는 식물체를 화분처럼 올려놓은 붉은 꽃무늬를 지닌 박스와 같은 '식물/사물'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인공/자연'이 결혼하거나 '사물이라는 실재/그림자라는 이미지'가 연애하고, '작● 가라는 주체/붉은 오브제라는 대상'이 친구를 맺는 잡종들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녀는 양자 사이를 중매하거나 매개하는 소통 행위에 '사귐, 보살핌'과 같은 심리적 전이를 시도함으로서 자신의 캔버스 안에서 만나는 양자를 '따뜻한 잡종'으로 재탄생시킨다.

성라미_Red Cact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2×41cm_2012
성라미_Red Cactus(키리코의 오후)_76×101.5cm_2008

Ironic Landscape ● 주지할 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서 '따듯한 잡종'을 만들어내는 소통 행위에는 '역설의 미학 혹은 아이러니의 미학'이 깊이 잠재해있다는 것이다. ● 역설(paradox)이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로서 논리에서는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논리적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목적 아래, 부가적으로 이르게 되는 자기모순에 개의치 않고, 내재적 의미에 보다 더 주요성을 두려고 하는 상징적 표현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피상적으로는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언어구조를 통해서 진의나 진실을 담아내는 수사법(rhetoric)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irony) 역시, 논리에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반어적 전략을 의미함으로써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역설의 미학과 공유한다. 결과적으로 도래하는 모순이나 부조화가 메시지의 본래적 의미를 한층 강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이러한 수사법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 우리는 그녀의 작품에서, 역설과 아이러니와 같은 수사법과 관련하여, 비교적 디테일하게 묘사된 바나나가 노란색으로부터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한 작품을 대표적인 예로 살펴볼 수 있겠다. '송곳 같은 가시를 지니고 있는 붉은 껍질의 바나나' 이미지는 실재 바나나와 현격히 다른 '구조적 모순(structural imbalance)' 속에서 출발한다. 연약한 바나나가 실상은 가시와 같은 단단한 방어막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며 농익은 붉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작가의 '선언적 상상'은, 초현실주의적 일탈을 지향하려는 의도를 내세우기 보다는, 작품의 '구조적 모순' 자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외려 작가가 여기에 부여하는 메시지의 함의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기제가 된다. 이렇듯 그녀에게서 '역설'과 '아이러니'는 자신의 메시지를 훌륭히 성취시키는 도구인 셈이다. ●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역설과 아이러니의 미학을 담고 있는 그녀의 최근작을 '역설적 풍경(Ironic Landscape-더 정확히는 Ironic interior landscape)'으로 규명해볼 수 있겠다. '인테리어 랜드스케이프'가 건축 내부 공간에 수목을 심는 방식으로 '인공/자연'의 조화를 도모하는 디자인이듯이, 그녀의 '아이러닉 인테리어 랜드스케이프' 역시 실내 공간 안에 달님을, 포근한 눈밭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인공/자연'을, 또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지닌 선인장으로 잡종화하는 방식으로 '동물/식물'을 혼성화시키는 커뮤니케이셔널 페인팅을 지향한다. 그녀는 여기에 부가해서 '포크에 찔린 붉은 오이'나 '실내에 눈이 온 듯 온통 하얀 공간 속에 걸어놓은 빨간 장갑', '회색 그림자가 지닌 빨간 가시' 등 나른한 중간색조에 개입시키는 강렬한 붉은색을 통해, 예술영화에 등장하곤 하는 '영상 불일치(inconsistency)'의 전략을 실천함으로써 실재를 비틀고 이미지가 함유한 '역설적 메시지'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피상적으로 앱노멀 스케이프(Abnormal scape)를 지향하는 그녀의 아이러닉 랜드스케이프(Ironic Landscape)가 그녀가 구사하는 역설의 미학으로 인해서 따뜻한 심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로 변형되고 있는 지점이다. 그것은 그녀의 '잔잔한 역설의 미학'이 보살피는 '자라나는 풍경'에 다름 아니다. ■ 김성호

Vol.20120918b | 성라미展 / SUNGLAMI / 成羅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