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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08_토요일_06:00pm
퍼포먼스 / 2012_0915_토요일 Versus / 02:00pm,06:00pm_한빛미디어파크 Gute Nachrichten(Seoul-Bremen) / 07:30pm_한빛미디어갤러리 In cooperation with Museum Weserburg, GAK in Bremen
주최 / 한빛미디어갤러리 후원 / 서울시_GL Associates_streetworks_가인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한빛미디어갤러리 HANBIT MEDIA GALLERY 서울 중구 장교동 1-5번지 Tel. +82.2.720.1440 www.hanbitstreet.net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경우의 예술, 『Gute Nachrichten』 ● '고향으로부터 온 그리운 편지', '학수고대한 대학교 합격소식', '첫 직장의 가슴 떨리는 출근길 소식', '아름다운 결혼식 청첩장'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좋은 소식을 전한다. 소식을 전해 받은 사람들은 함께 축복해주고, 격려해주며 응원해준다. 이러한 '소식'에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의 소식을 듣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는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다. '좋은 소식'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고 축복해 줄 사람에게 보내는 나와 타인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메시지들로 채워진다. 천경우는 바로 이러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좋은 소식'을 통해 사람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오랫동안 사진을 통해 그 관계의 의미에 대해 연구해 왔는데, 사진에서 찍는 주체와 찍히는 대상의 관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들 자체에 대해 주목하였다. 가령 인물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장시간의 카메라 노출을 통해 포착함으로써 그 인물이 사진의 주체인지 대상인지를 정의내리지 않고 단지 흐릿한 흔적으로 남긴다. 그러면 그 인물은 단지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증명하며 사진을 통해 단지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천경우는 바로 이러한 이미지에 다가가 말을 건다. 즉, 사진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가두지 않고 그 사진이 가능하게 하는 피사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사진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미지가 내뿜고 있는 정서, 혹은 내면의 영혼을 통해 발화된다. 천경우의 이번 전시 "Gute Nachrichten" 또한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도 같이 인간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전시는 크게 세 점의 작품으로 나뉘는데, 우선 이 전시의 주제이면서 작품제목이기도 한 「좋은 소식(Gute Nachrichten」은 빠른 문자로 소식을 전달하는 현사회의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두 번째, 낯선 사람과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15분간 앉아있는 퍼포먼스 「Versus」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교감에 대해 살펴본다. 세 번째, 서툴고 완벽하지 않은 반대 손(oposite hand)으로 쓰는 올림픽 표어쓰기 프로젝트인 「Perfect Relay」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완벽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세 점의 퍼포먼스 및 작품을 통해 천경우는 "Gute Nachrichten"의 주제에 다가간다.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의미를 확인해보자.
1. 『Gute Nachrichten』, 좋은 소식을 담은 편지 ● 천경우의 『Gute Nachrichten』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로 '굿 뉴스 Good News'의 의미와 같다. '좋은 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그의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참여 퍼포먼스를 통해 완성된다. 주변 직장인들,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누구든지 작품이자 퍼포먼스인 "좋은 소식"에 참여할 수 있다. 관람자가 '내가 문자로 받기를 가장 희망하는 개인적인 좋은 소식'을 종이에 적으면, 전시장 벽면에 설치되거나 외부 LED 문자 광고판에 메시지가 공개된다. 아주 간단한 메커니즘을 가진 『Gute Nachrichten』은 이렇게 자신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바라보는 자신과 타인의 시선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 시선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소급되어 자신의 꿈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전시장에 설치된 네 개의 테이블 중 하나에 조용히 앉아 스텐드 램프를 촛불처럼 종이에 비추며 자신의 '좋은 소식'을 쓰기위해 '어떠한 소식이 나에게 가장 좋은 소식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 순간의 살아있음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Gute Nachrichten"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위한 '좋은 소식'을 쓰는 것과 자신이 쓴 '좋은 소식'을 바라보는 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소식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 즉 나와 타인이 따로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발신자와 수신자의 주체가 명확히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그의 프로젝트에서는 주체와 대상이 동일하다. 내가 바라는 좋은 소식을 나에게 부치는 편지는 그러므로 '소식'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깝다. 그 희망은 나와 타인을 하나로 만들어 모든 주체를 '나'로 집중시킨다. 내가 원하는 '좋은 소식'은 모두가 원하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좋은 소식' 또한 나의 '좋은 소식'과도 같이 행복한 웃음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자신을 위한 '좋은 소식'이 흘러나오는 LED 문자 광고판을 바라보는 타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리하여 '좋은 소식'의 문자 광고판은 진정 "Gute Nachrichten" 그 자체가 된다. ● 천경우의 작품이 주체와 대상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좋은 소식'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했다면, 두 번째 퍼포먼스는 문화와 시간의 경계에 대해 접근하게 만든다. 그는 독일의 브레멘과 서울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한다. 20명의 참여자들이 만드는 퍼포먼스 『Gute Nachrichten』에서는 브레멘의 시민들에게 서울시민들이 전화를 걸어 직접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한다. 서울의 참여자들은 브레멘에서 가져온 좋은 소식 하나를 골라 종이에 옮겨 적은 다음 종이비행기를 만든다. 그리고는 브레멘시 참여자들의 전화번호를 하나 골라 전화를 하는 동시에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그러면 전화 벨소리를 듣는 브레멘의 참여자들은 전화가 올 때마다 빈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퍼포먼스가 끝이 나고 사람들은 각자 종이비행기를 주워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두 도시의 사람들은 "좋은 소식"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서로 대화를 한다. 그 대화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서울 19시 30분, 독일 12시 30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사실 직접적인 만남이라기보다 미래와 과거, 혹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만남, 영혼의 만남을 의미한다. 그러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Gute Nachrichten」인 것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단지 두 도시의 시공간을 연결한 것이 아니라, 결국 '소식'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깊게 각인시킨다. "Gute Nachrichten"의 메시지는 수많은 아름다운 종이비행기가 되어 나와 타인들 사이를 끊임없이 날아다닌다.
2. 「Versus」,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잇다 ● 광장에 모인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두 개의 긴 의자에 앉아 15분간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 각자의 길을 간다. 퍼포먼스 「Versus」의 장면이다. 광장에 모인 퍼포먼스 참여자는 1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낯선 이의 어깨를 잠시 빌린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15분 동안 서로의 체온과 심장박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앉아있었던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타인에 대한 부담감과 긴장감에 휩싸였다가 서서히 자신의 심장소리에 집중하고 이내 아득히 멀어지는 자신의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생각을 나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타인으로 되돌렸을 때 아마도 퍼포먼스는 끝날 것이다. 인간의 실존을 가장 극명하게 느끼게 하는 타인과의 어깨 포옹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그것을 통해 우리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천경우의 퍼포먼스「Versus」는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사람 '인(人)'자의 형상을 띤 퍼포먼스 「Versus」는 2007년 서울을 시작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독일, 스위스, 덴마크를 거쳐 2012년 다시 서울에서의 퍼포먼스를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이 퍼포먼스는 그가 사진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긴 노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바로 침묵의 언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교감을 드러내는 영혼의 목소리를 말이다. 그 목소리는 나와 타인의 체온과 체취, 숨소리가 뒤섞여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증명한다. 서로의 몸과 몸이 맞닿아 느끼는 동물적인 교감은 사람(人)의 형상을 넘어 서로 맞붙은 개개인의 정신에 각인된다. 신체의 접촉은 이제 나와 너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맥박과 숨소리로 맞춰진다. 그리하여 함께 숨 쉬게 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신체를 기꺼이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혼의 개념은 신체와 정신의 분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체의 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여전히 동물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신체를 맞대고 서로 마주했을 때 서로는 더욱 더 강렬하게 교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퍼포먼스가 끝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자신과 어깨를 맞댄 타인이 바로 실존적 인간 자체에 대해 고민했던,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해 교감했던 자기 자신이었음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결국 나와 타인간의 'Versus'는 나와 나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 교감은 마찬가지로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영혼에도 숨을 불어넣어 '사람'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천경우의 퍼포먼스 「Versus」는 그가 말한 대로 확장된 사진의 형태로 살아있는 생명체의 흔적들을 모두 담아내며, 인간의 영혼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만남의 또 다른 언어이다.
3. 「Perfect Relay」, 불완전의 완벽성을 향해 ● '보다 빠르게(Citi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힘차게(Fortius)', 이는 단지 올림픽 표어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외치고 있는 구호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간다. '초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채근하고 속박한다. 바로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천경우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묻는다. "과연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을까? 완전한 인간이 돠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라고. 그는 서울에 사는 1869년부터 현재까지 올림픽을 개최한 18개의 국가들의 어린이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이제 막 글쓰기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올림픽의 표어인 'Citius, Altius, Fortius'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국의 언어로 종이에 적게 하였다. 그런데 그냥 적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는 반대의 손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단어를 쓰고 다음 어린이에게 넘기는 글쓰기 릴레이 퍼포먼스 「Perfect Relay」에서 어린이들은 삐뚤빼뚤하지만 정성스럽게 각자 선택한 단어를 써내려간다. 천경우는 바로 이러한 어린이들의 서툰 글씨를 통해 완벽성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되묻는다. 이 물음은 완벽한 일등을 위해 달리는 올림픽 선수들과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향하는 강렬한 외침이다. "실수하고, 틀리고, 삐뚤빼뚤하면 좀 어떠냐"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틀린 것에 대한 부끄러워하지도, 완벽하지 못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아주 즐겁게 릴레이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그들에겐 완벽해야한다는 목표가 없는 것이다. 천경우는 어린이들과 함께 한 퍼포먼스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는가를 묻지 않고, 자신의 실수와 마주할 때 인간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해 묻는다. 어린아이가 서투른 왼손으로 '보다 빠르게'를 쓰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어린이는 단순히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통해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자신을 바라본다. 그들은 실수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해방감을 느낀다. 바로 완벽성을 위한 불완전성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들의 손 글씨는 올림픽 선수들의 구슬땀에 경종을 울린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힘차게'의 구호는 인간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경쟁의 트랙에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새겨 넣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타인보다 더 뛰어나고 더 빠르면 더욱 더 행복해지는가? 완벽하고 완전한 것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Perfect Relay'는 어린이들의 'Imperfect Relay' 놀이와 어떠한 점이 다른가? 어린이들이 자신들이 쓴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즐겁게 웃고 있는 사진에서 'Perfec'의 의미는 다시 새겨진다. 그들의 불완전성을 위한 완벽한 릴레이는 계속 이어진다. ● 작품을 통해 천경우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Gute Nachrichten 좋은 소식"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에게 기쁨과 축복, 희망의 메시지인 것처럼 나와 타인의 관계는 「좋은 소식(Gute Nachrichten)」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우리들이 가장 듣고 싶은 좋은 소식은 미래와 현재, 과거의 시간을 넘나들며 인간의 영혼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행복한 길에 있다. 그것은 인종과 문화, 나이를 뛰어넘어 영혼과 영혼을 이어준다. 마치 「Versus」의 어깨 기댐에서 오는 따뜻한 인간미와 같이, 「Perfect Relay」에서 보여준 불완전을 위한 아름다운 바통터치에서와 같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하다.천경우의 "Gute Nachrichten"은 그가 오랫동안 작업해 온 초상사진과도 같이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잠시 머물다 떠나간다. 그가 작품과 순간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Gute Nachrichten"의 메시지는 어떠한 목소리로 발화되고 있는가? "Gute Nachrichte"은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진지하게 자신을 향해 발화된다. 그렇기에 타인의 어깨를 빌려 자신의 어깨를 인식하고, 자신의 불완전의 서툰 글씨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그 바라봄은 단지 자신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순간의 찰나와도 같이 언제나 더블로 다가온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나를 인식하고 나를 지각하며 타인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Gute Nachrichten"은 언제나 '좋은 소식들'이 된다. 나와 타인이 '함께하는 좋은 소식들'은 사람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이어주는 매체가 된다. 나와 타인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Gute Nachrichten"이 바로 천경우가 말하고자 하는 '소식'의 매체이자 퍼포먼스이며, 사진이고 예술인 것이다. ■ 백곤
Vol.20120911b | 천경우展 / CHUNKYUNGWOO / 千京宇 / performance.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