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윤진영展 / YOONJINYOUNG / 尹眞英 / photography   2012_0906 ▶ 2012_0914 / 월요일 휴관

윤진영_NR104_디지털 C 프린트_100×125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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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근혜갤러리 GALLERY K.O.N.G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7-78번지 Tel. +82.2.738.7776 www.gallerykong.com

사진의 존재론적 본성을 드러내는 사진 ● 앙드레 바쟁은 일찍이 "회화와 조각의 기원에 '미라 콤플렉스'가 있다"는 말로 시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인간의 근원적 욕구와 시각적 재현이 지닌 밀접한 관련성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 대상과 닮게 그리고 만들어 후세에 남기려는 재현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은 자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거나 얼굴을 마스크로 뜨던 행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유한한 삶과 그에 대항하는 영원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바쟁은 사진의 탄생을 이러한 서구 조형예술을 리얼리즘의 강박으로부터의 해방시키고 미적 자율성을 찾게 해준 역사적 사건으로 칭송한다. 인간의 창조적 개입이 전제된 회화나 조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계장치를 통한 사진의 자동적 생성이 리얼리즘의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외려 회화를 회화이게, 조각을 조각이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바쟁이 보기에 사진은 "빛을 매개로 사물의 흔적을 뜨고" 지속 중인 시간을 정지시켜 보존함으로써 "시간을 방부 처리하고 시간을 부패로부터 구제"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데스마스크이자 미라인 셈이다. 이는 회화나 조각이 꾀한 주술적 의미에서의 영속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진은 본디 어떠한 대상이 '거기 있었다'는 현존의 증거로서 그 자체 영원히 현재를 담지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진은 찍히는 그 순간 이후부터는 - 이미 인화된 사진을 볼 때에는 - 반드시 과거가 되고 만다. 따라서 사진에는 언제나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며, 그것은 곧 삶과 죽음의 공존을 의미할 것이다.

윤진영_NR117_디지털 C 프린트_80×120cm_2012

사진작가 윤진영은 고유한 소재와 기법으로 이러한 사진의 모호한 존재론적 본성을 배가시키는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그녀의 세 가지 연작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그 윤곽을 드러내 줄 것이다. 생선과 해산물의 내장, 눈, 대가리와 꼬리 등 살을 제거한 뒤 버려진 부위들로 일정한 형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은 「Metamorphosis」(2006), 사람 얼굴을 젤라틴 성분의 흰 색 마스크로 뜨고 그 얼굴 안에 붉은 실고추나 검은 톳과 같이 상처나 염증을 연상시키는 이물질을 넣고 얼굴조각을 중심으로 주변 배경에 고추장, 김치, 흑미, 돌나물 등의 색과 질감이 강한 식재료를 넓게 배치한 뒤 사진으로 찍은 「The Edibles」(2008), 생닭, 닭발, 돼지족발, 돼지껍데기, 문어 등 약간은 혐오스러운 형태의 날 식재료에 문신과 같이 화려한 원색의 데칼코마니 영상을 투사해 다시 사진으로 찍은 「Reminiscence after death」(2010)가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이제까지 윤진영의 작업 전반에 걸친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변형', '먹을 수 있는 것들', '사후 연상'이라는 세 연작의 제목에서 읽어낼 수 있다. 첫째, 작가의 사진 대부분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보다 촬영 전에 작가의 의도에 따른 조형적인 '변형'을 거친다. 다시 말해 대상의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일시적으로 새로운 대상을 만들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다. 특히 그 대상 모두가 생명은 제거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형태와 상태가 변화하는 유기물이라는 사실이 사진 이후의 시간을 유추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변형'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이는 윤진영의 사진을 정물사진인 동시에 초상사진으로 인식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둘째, 사진의 대상 모두는 '먹을 수 있는 것들', 즉 식재료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말 그대로 '먹을 수'는 있지만 '먹음직스럽'거나 '먹기 위한' 용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가열하거나 조리되지 않은 날 것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영양분을 제공하여 에너지를 얻고 살아가게끔 하는 '음식'이기보다, 그러한 음식이 되기 위해 채취되고 포획되어 생명을 빼앗긴 '생물'이라는 사실이 먼저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편 식재료임에도 먹는 용도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죽은 생명체의 형태를 바꾸어 또 다른 생명체를 연상케 하는 새로운 대상으로 바꾸어 놓는 제작방식의 특징 때문이다. 이는 세 번째 특징인 '사후 연상'과도 관련된다. 즉 소재와 제작방식으로 인해 사진의 결과적 양상이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인식되고 전혀 다른 정서로 자각된다는 사실인데, 이 때 그 대상에게는 분명히 생명이 박탈된 상태임에도 또 다른 생명체가 감지되는 삶과 죽음의 모호한 이중성이 느껴진다. 예컨대 생선 내장을 드로잉처럼 일시적으로 배치해 찍은 사진은 그 모양과 색의 다채로움으로 인해 하나의 싱싱한 화초를 떠올리게 하며, 흰 색의 젤라틴 마스크 안에 박히고 주변에 흩뿌려진 흑미를 찍은 사진은 죽은 사람의 얼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작은 벌레 떼처럼 보인다. 한편 '사후 연상'이라는 제목의 최근 작품들에서야말로 그러한 연상 작용은 본격화된다. 원형으로 뻗어나가는 한 무리의 닭발이나 승리의 브이를 그리고 있는 한 쌍의 돼지족발, 팔다리를 뻗어 똑바로 서 있는 문어 등이 비정형의 현란한 색옷을 입고 지금이라도 당장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기이한 생기'를 전한다. 실제로는 생명이 박탈된 생물에게서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이러한 삶과 죽음 모두를 함의한 일련의 연상을 작가는 '사후 연상'이라 칭한 것이리라. 사실상 삶과 죽음의 모호한 혼재상태로서 이러한 '사후 연상'은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가 살아나거나 죽은 자의 소리를 듣는 초자연적인 경험이 아니고서라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몸소 겪게 될 것이며 살면서 종종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상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어떤 면에서는 삶의 연속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죽음은 적어도 현세에서의 삶의 종결이자 존재의 사라짐이기에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사실로부터 '친숙하지만 낯선' 불편한 정서가 촉발된다. 프로이트는 이를 '언캐니(uncanny, 독일어 unheimlich)'라 칭하였는데 그것은 특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생명이 없는 무생물의 대상을 자각했을 때 느껴지는 모호한 정서를 말한다.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우리는 윤진영의 사진 전반에서 감지되는 언캐니한 정서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작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사후사진((Post-mortem photo)'이다. 사후사진은 19세기 사진 탄생 초기에 유행했던 경향으로 죽은 이에게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는 등 여러 장치를 이용해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 - 대부분 산 사람들과 함께 - 찍은 사진이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보이도록 하여 산 사람과 함께 포착한 사진을 그들과 무관한 후대 사람들이 보는 경험은 언캐니의 극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 죽은 자들은 분명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고, 우리를 포함해 살아있는 사람의 사진 역시 언젠가는 이미 죽은 사람의 사진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릴 때 사후사진은 어쩌면 사진의 존재론적 본성을 가장 잘 담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윤진영_CR111_디지털 C 프린트_100×100cm_2012

이러한 삶과 죽음의 공존으로서 사후사진은 윤진영의 이번 신작 「The Remains」(2012)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평소 관심을 두어 온 사후사진 속 인물 중 몇몇을 골라 조각가에게 그들의 두상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 두상에 배지(培地)를 입히고 인위적으로 곰팡이를 번식시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제까지 작가의 사진이 - 사람은 아니지만 특정 종의 생물로서 - 생명이 제거된 직후의 사체를 찍은 일종의 사후사진에 해당하였다면, 「The Remains」는 그러한 사체(실제로는 조각상이지만 사후사진에서 가져왔다는 상징적 의미에서)를 균주 삼아 그것을 부패시켰다는 의미에서 '이중적' 사후사진이 되는 셈이다. 이전의 사후사진이 사체임에도 또 다른 생명체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생과 사의 모호한 혼재였다면, 지금의 이중적 사후사진은 사체를 부패시키며 번식하는 또 다른 생명체로서의 곰팡이라는 미생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생과 사의 공존 상태가 된다. 사체가 실제 유기물이 아니고 조각상인 까닭에 사진 속 얼굴의 표면은 각양각색의 곰팡이에게 완전히 잠식당하였음에도 얼굴의 윤곽과 표정, 그리고 표면에서 미세하게 살아 숨 쉬는 곰팡이의 포자들이 감지되어 생과 사가 모호한 언캐니한 느낌이 더욱 배가된다. 고대의 데스마스크와 미라가 육신의 부패를 저지하려는 몸부림이었다면, 윤진영은 그러한 육신의 부패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으로 치환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을 포함한 생물의 유해가 결국 다른 생물에게 양분이 되고 그러한 양분을 토대로 삶을 유지하던 생물이 다시 죽음으로써 또 다른 생물의 삶을 지속시키는 자연의 순환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생명체의 가장 극단적인 존재로 곰팡이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The Remains」 연작에서 곰팡이의 서식처가 된 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작가는 여러 형태의 도자기 그릇과 돌이나 조개껍데기와 같은 자연물에 곰팡이를 번식시켰다. 사람 이외에 사람이 남긴 문화적 잔해와 생태계 전반으로 작가의 의도를 확장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human)', '문화(culture)', '자연(nature)' 세 가지 범주로 작업을 분류한 「The Remains」라는 제목이 '유해', '유물', '남겨진 것들'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유다. '먹을 수 없다'는 소재상의 변화 이외에 「The Remains」는 전작들의 핵심적인 특징을 동일한 맥락에서 발전시키고 있다. '사후 연상'이라는 결과적 양상의 측면에서 앞서 언급했듯 의미의 결이 훨씬 풍부해졌고, 제작과정에서의 '변형'이 시간과 노력 면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조각상, 도자기, 자연물에 곰팡이를 입히고 키우는 변형의 과정은 전문적 지식과 지난한 인내를 필요로 하여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과 관찰에 대한 열정이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녀는 곰팡이의 균주와 배양액의 성분에 따라 각기 다른 색과 형태의 곰팡이가 자란다는 사실을 기본 원칙으로 포자와 접촉한 이후 수분, 온도, 영양분을 생육에 적당한 상태로 유지하며, 배양과 관찰의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무리 전문적인 지식과 실험 결과를 동원하여도 개별 대상들에 입혀진 곰팡이가 자라는 양상은 언제나 작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동일한 균주를 사용하더라도 배양액의 성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심지어 균주와 배양액 모두가 동일하여도 공기에의 노출 정도나 습도 등의 미세한 차이로부터 다른 모습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통제를 벗어난 유기체로서의 곰팡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으로, 작가에게 생물학이 단순히 자연과학의 의미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구현하는 출발점이자 예술을 위한 토대가 됨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변형' 과정을 거쳐 사진 안에 포착된 피사체의 모습은 낯설고도 익숙하며, 혐오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무생물의 대상 위에 생물인 곰팡이가 자라나 정확한 형체를 알 수 없도록 뒤덮힌 피사체는 검은 색 혹은 흰 색 배경의 한 가운데 놓여 그 자체 하나의 새로운 대상으로 강조된다. 100x150cm라는 대형 사이즈로 제시되는 사진은 곰팡이 포자의 미세한 형태와 색의 차이, 결과 짜임을 디테일하게 확대하여 보여줌으로써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곰팡이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얼굴의 수분이 빙결되어 흘러내리거나 화재로 그을린 듯한 끔찍한 사람의 형상이 있는가 하면, 동물의 털이 끈끈한 점액질로 엉켜 있거나 고운 빵가루가 입혀진 듯한 그릇도 있고 보송보송한 흰 솜털 보숭이 같은 돌맹이도 있다. 이들의 사진은 그 자체 새로운 대상으로서 하나의 정물사진이며 제각기 다른 유동적 (미)생물체로 뒤덮혀 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초상사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죽은 사체를 곰팡이가 다시 부패시킨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이중적' 사후사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윤진영_CR101_디지털 C 프린트_150×100cm_2012
윤진영_CR122_디지털 C 프린트_150×100cm_2012

부패와 발효처럼 언제나 동일한 현상은 관점에 따라 상이한 해석을 가져온다. 예술의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그러한 상이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제시하고 허용한다는 점일지 모른다. 윤진영의 사진은 더럽고 혐오스럽고 쓸모없는 것을 신비하고 아름다운 전혀 다른 생명체로 새롭게 재조명한다. 그러한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하여도, 적어도 그것은 실제로는 유독하고 위험한 대상을 순간 포착하여 실제보다 더 적나라한 모습으로 계속 대면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정확히 전쟁사진이나 사후사진이 기능했던 지점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미라나 데스마스크가 영원히 붙들어두고 싶어했던 '현재'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그러나 미라나 데스마스크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생명이 박탈된 직후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에 불과했던 것처럼, 사진은 현재를 포착하기 위한 것이지만 언제나 현재가 아닌 지나간 과거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의 공존과 혼재라는 그 고유한 역설적 이중성으로 인해 사진은 보다 매력적인 예술 매체가 된다. 윤진영의 사진은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사진의 존재론적 본성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 신혜영

윤진영_HR111_디지털 C 프린트_150×100cm_2012

Jinyoung Yoon's Microbial Magic ● Taste is highly individual: as the French say, chacun à son goût. But taste is also a cultural construct. Many Westerners, for instance, love blue cheese, while those not brought up in a cheese-loving culture often find it putrid—blue cheese, after all, is the result of controlled rot. Conversely, stinky tofu and kimchi—end products of fermentation—can elicit a similar reaction in those unfamiliar with these foods. Yet the process of decay shouldn't be intrinsically abhorrent; it is a natural, biological process. Aversion and disgust are cultural responses, linked largely to our fear of death. ● Although putrefaction occurs naturally, from ancient times humans have sought to control it, in order to produce such delectable products as wine, vinegar, pickles, and cheese. Those who work with these foodstuffs understand fermentation as related to life—to growth—rather than to death or decay, and celebrate the many types of microbes that work magic. In her art, Jinyoung Yoon similarly explores the boundaries between flourishing and rot. She does not intend to elicit revulsion. Her aim is the opposite: she seeks to reveal the inherent sublime in natural forms. With Yoon's background in biology, it is perhaps not surprising that she would be interested in the kind of processes from which most of us generally avert our eyes. Yet although she chooses her medium like a lab scientist, it is as an artist that she reveals its intrinsic beauty. ● For her 2006 series "Metamorphosis " Yoon manipulated the discarded bodies of fish and octopi to compose still lifes for photographs that display vivid colors and rich patterning. In her new series, "The Remains," she goes a step further to create her own forms, rather than working with pre-existing ones. She uses living organisms, including fermented bean paste and ginseng as the source of fungi—the object of our ambivalence for their connection to decay. Yoon's work forces us to contemplate that which generally remains unseen, and to watch as it assumes ever new forms. Not only do we observe nature's processes, we discover the surprisingly beautiful patterns that ensue: circles and swirls, webs and creases. The process of decay is explored by the British artist Sam Taylor-Wood in her video Still Life (2001), which documents the slow decay of fruit, and in A Little Death (2002), which examines a dead hare being consumed by maggots. Taylor-Wood's work causes us to think about the passage of time. By contrast, Yoon's work arrests us in the moment and allows us to see decay as generative, as very much alive. This apparent contradiction is simultaneously disturbing and fascinating, raising questions about the essential mystery of reproduction. What makes Yoon's work especially striking is that even though fungi are the basest of organisms, they appear cosmic and otherworldly in their explicitly revealed forms. Thanks to Yoon's use of lighting and a superior vantage point that eschews the traditions of still-life photography, her forms often appear as though they are floating in space. The white orb of NR104, shot against a midnight-black background, looks like a celestial body, a beautiful yet alien being, one that is fibrous and soft on the surface, but concentrated at its core. This cosmic aspect is all the more remarkable because the palette of these photographs is very much rooted in the earth: olives, browns, creams, black, rust, and ochre. ● The works in the "Remains" series emphasize texture. Sometimes the cultured forms are fuzzy or mossy, at other times wispy and insubstantial. In some places the growth becomes clustered, almost weighty, causing distortions in the shape of the underlying object. On the vases and stones, it's not hard to admire the inherent loveliness of the fungi, especially when they turn a hard surface into something soft. But when this growth appears on a modeled human face, it is far more unsettling: Is this what we will look like after death, once we begin to decay? Are these disembodied heads death masks, or are they a medium for life? Although the human body is covered with millions of microbes invisible to the naked eye, we choose not to dwell on this biological fact—it is too creepy. And although the growth of hair on faces is natural, at least for men, when growth is uncontrolled—when it is alien—it becomes disturbing: it is no longer of us but on us. Yoon's works are living objects. She has said that when she photographs the objects, "I feel like I am handling an animal or a live and delicate creature. They react to gentle touch and breath." As in the ancient Korean tradition of fermenting cabbage into kimchi, Yoon's work gives rise to something new and unexpected, something that many will find delectable. Others may need to struggle with intrinsic aversions in order to enter fully into their spirit. ■ Darra Goldstein

Vol.20120909d | 윤진영展 / YOONJINYOUNG / 尹眞英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