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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901_토요일_05:00pm
오프닝 공연_Sound art performance Pears in the Mud 「Artist; Hasan Hujairi」
참여작가 양태근_임승오_주송렬_류신정_노준_나점수_신치현 설총식_신성호_송운창_조권익_강민규_강덕봉_김택기 민정아_유지숙_채진숙_정의지_Hasan Hujairi
주최 / Project Artist Group-야생동물들 후원 / 경기문화재단_크라운 해태(주) 장소협찬 / 경기관광공사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 10:00am~09:00pm
임진각 평화누리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81-1번지 경기평화센터 Tel. +82.31.953.4854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더욱 편해졌지만 모든 생명이 함께 누려야 할 지구에서 수많은 동식물들은 그 설 자리를 잃어만 가고 있는 현실에서 차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술 방면에서도 자연과 생태를 주제로 한 테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1년 창립 이래 매년 새로운 현장을 찾아 프로젝트형 조각전을 펼치고 있는 프로젝트 아티스트 그룹 '야생동물들' 작가들이 친환경적 생태와 DMZ 접경지대의 아름다운 자연이 이루어내는 조화를 보여주기 위해 이곳 평화누리에 모였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정된 구역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생기로 가득한 전시 공간 연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공간을 속박하지 않고, 공간 또한 예술에 한계를 씌우지 않는, 자연과 생명이 서로 공명하듯 환경과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편안한 감각을 선사하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사전답사로 처음 이 평화누리를 찾았던 '야생동물들' 작가들의 생기와 호기심으로 영롱히 반짝이는 시선은 이 전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은 童心의 발로였으며 그 힘이 뿌리를 내려 「평화누리에서 만나다」라는 형태로 결실을 낳았습니다. '야생동물들'이 이번 전시를 밑거름으로 앞으로도 더욱 메시지 강한 작품 활동을 해주시리라 거듭 확신하며 바쁜 작품 일정 속에서도 전시를 위해 모여주신 '야생동물들'과 DMZ 일원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을 모색하고자 후원을 아끼지 않은 유니시티 코리아에 거듭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 김선영
소통을 위한 생태학적 상상력 ● "자연"은 우리가 보는 것 - / 산 - 오후 - / 다람쥐 - 일식 – 땅벌 - / 아니 - 자연은 천국 - / 자연은 우리가 듣는 것 - / 쌀먹이새 - 바다 - / 천둥 - 귀뚜라미 - / 아니 - 자연은 화음 - / 자연은 우리가 아는 것 - / 그러나 말할 방법이 없는 것 - / 그녀의 소박함 앞에서 / 우리의 지혜는 너무나 무력하네 - (Emily Dickinson. c. 1863. The Complete of Emily Dickinson. Thomas H. Johnson(ed). London: Faber and Faber. 1975, p. 332.) 인류의 역사는 창조의 역사이다. 인간은 언어, 종교, 철학, 과학, 산업, 예술과 같은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인류가 이끌어낸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발명과 지적이고 정신적인 발전으로 현대는 양적이고 질적인 면 모두에서 풍요로움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파괴의 역사이다. 자연 파괴는 이를 대표하는 것이자 가장 광대한 규모의 것이다. 토양과 대기, 그리고 물의 오염을 비롯한 각종 공해와 같은 환경 오염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또한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주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의 원인이 자연발생적이든 인공적이든 간에 자연 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임에도 인간은 이러한 무능함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에 의해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으며, 인간의 지성을 통해 정복될 수 있다는 자만심은 환경의 재앙을 가속화시킨다. ●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인간척도설(人間尺度說)을 널리 받아들였던 인류는 지구-더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믿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인간을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시켰다. 자연과의 일방적인 위계 관계 또한 강화되었다. 테오도르 W.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가 말했듯, 근대는 인간이 자연의 위협에 맞서 그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세계와 자연을 과학적인 대상으로 통제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에게 한계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는 계몽주의적 유토피아(utopia)를 향한다는 이유로 묵인되었다. ● 우리나라도 근대화, 산업화와 함께 예외 없이 자연의 대상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인 자연 파괴, 환경 오염은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과 소통 불가능하게 되면서 자연만 잃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소통의 본질적인 가능성도 함께 잃어버렸다. 문명 세계에서 얻는 대부분의 만족감은 분리와 차별화에 의해 강화되는 주체의 정체성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주체의 정체성이 강화될수록 소통의 통로는 단절된다.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폭력의 바탕에는 언제나 소통의 부재가 자리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문명 속의 현세적 만족감에서 벗어나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시도해야 한다.
그룹 "야생동물들"은 인간과 자연을 화해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다. 이에 "야생동물들"의 작가들은 2001년부터 도시 속 자연에서 프로젝트(project)를 진행하며 인간과 세계와의 소통에 집중해왔다. 이들은 예술이 -자연 파괴를 가져온-소통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야생 동물'은 오염이 안 된 자연에서 저절로 나서 자라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동물을 말한다. 야생 동물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는 자유와 순리이다. 그룹 "야생 동물들"이라는 이름 안에는 인간이 자연을 비롯하여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을 야생 동물처럼 자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는 메시지(message)가 담겨 있다. 우리는 야생의 자연을 무질서하고 위험이 가득한 곳이라 여기지만 그 반대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런 이유로 "야생동물들"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건강한 야생성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전시 『평화누리에서 만나다. 2012』에서 "야생 동물들"은 경직되고 한계 지워진 도시 공간을 탈피하여 개방된 삶의 공간, 자연의 공간인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비록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이기는 하지만, 공원은 자연이 도시 문명에 가장 가깝게 침투하고 교차하는 지점이다. 또한 공원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장소이기에 소통을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생태학적 소통'과 '상상력'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갖는다. 생태학(ecology)은 원래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였다. 그러나 점차 자연 현상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다루는 포괄적인 학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생태학자들은 생태 위기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을 인간 중심주의로 진단한다. 문명이 세워지기 전부터, 아니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자연은 무한한 전체로서 존재해왔다. 지구상에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자연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것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품에 던져진 존재이고 인간 세계는 자연 세계를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우리는 주인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함께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인간 역시 유기체적인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보충하고 대리하는 긴밀한 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중략)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찮은 것이라 여기던 인간 이외의 모든 것들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바로 그러한 힘을 행사하는 동식물들과 뒤얽혀있기 때문이다.(Jean Giono. Colline. Bernard Grasset, 1929. p. 181.)
"야생동물들"이 생태학적인 관점을 갖는다는 사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행동주의(activism)적인 태도를 견지(堅持)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술에 생태학적인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작품의 창작 과정, 매체, 작품을 통해 제시되는 의미, 설치 장소, 관람객에 이르기까지의 전(全) 과정을 관계론적으로 보고, 느끼고, 인식함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생태학적인 관점을 갖는다. 작가들은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는 공간으로서 환경을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과 환경, 작품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이끌어낸다. 최종적으로 이들의 작품은 주변 공간-자연-, 더 나아가 세계와 생태학적 소통을 갖고 공진화(共進化)를 이룬다. 자연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작가들이 먼 야생이나 산과 물만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아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도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환경이기에 그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작가들의 활동은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생태학적 소통을 지향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 『평화누리에서 만나다. 2012』가 만들어내는 환경과의 소통은 사람 사이의 소통으로 이어진다. 전시된 작품들은 엄숙하거나 사변적이지 않은데, 이것은 어렵지 않고 즐거운 작업으로도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사유가 가능하다는 작가적 믿음 때문이다. 관객이 쉽게 다가가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작품들은 예술의 자율성만을 고집하는 폐쇄적인 엘리트주의(elitism)를 벗어난다. 개방과 소통의 생태학을 실현하는 것이다. "야생동물들"의 작가들은 고립과 분리보다 상호 관련과 소통, 커다란 전체를 생각하는 새로운 작가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작품은 하늘과 대지를 연결하고, 자연과 문명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 직접적이고 명료한 문제 의식과 결론을 연상시키는 '자연'이라는 주제가 미술적 행위와 만날 경우 예술적 다양성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하여 "야생동물들"의 작가들은 작품이 환경을 위한 홍보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작가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이들은 작품이 작가들만의 예리한 감수성을 담은 내적 표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과학에 의해 만들어진 살균된 인공의 세계에 생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피력한 것과 상통한다.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변질된 문명 사회에서 사유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자연적 진리를 공유하는 순수한 상상력의 회생이 필수적이다. 상상하는 예술가는 사고하는 인간처럼 현상과 법칙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부를 탐구하는 탐험가이자 성찰자이다.
『평화누리에서 만나다. 2012』에는 상상력의 세계 그리고 예술의 세계를 통해 자연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보여주는 열여덟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강민규와 정의지는 야생성이 두드러지는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강민규는 메갈라니아(megalania)와 모아(moa)처럼 문명의 전개와 함께 멸종된 생명체들을 되살려낸다. 하얗게 칠해진 동물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처럼 느껴져 과거의 존재였음이 강조된다. 인간에게 공격당하고, 배척당하고, 멸종되었던 동물-괴물-들은 작가의 손을 통해 사람들과 즐거운 순간을 함께 하는 건강한 자연으로 부활한다. 정의지는 버려진 양은 냄비를 단련하고 연마하여 동물상을 제작한다. 이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문명화된 동물이 다시 야생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 작품은 상당한 노동력과 물리적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야생성을 되찾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과 회복기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 류신정과 채진숙은 원형적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태를 이용한다. 류신정은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와 정자, 혹은 씨앗을 연상시키는 생명체의 군집을 보여준다. 생명의 원형들은 모태적 자연-연못-과 결합되어 탄생을 노래하는 생태적 존재로 승화된다. 그것의 선명한 색채와 상승하는 형상은 진정 살아있는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채진숙은 꽃, 식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그려진 램프를 통해 문명의 이기(利器)와 자연을 결합시킨다. 램프에 불이 켜지면 그것은 뿌리 내릴 토양을 잃은 불안한 생명체가 되어 부유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인조(人造)되는 현실, 인공의 질서를 자연의 질서라 착각하는 과학 기계 문명의 신기루를 풍자한다.
송운창은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로 나무를 만들어 카페의 난간에 설치해 놓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공의 나무와 멀리 보이는 자연의 나무는 묘한 긴장감과 여운을 남기며 조화를 이룬다. 현대의 문화와 문명을 우리가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둘을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제 송운창의 작업이 그렇듯 문명과 자연이 편안하게 함께 하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치현은 스틸(steel)로 거대한 인간상을 제작한다. 신치현은 산업적이고 기계적인 재료로 문명의 흔적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순수한 본연의 인간상을 제작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문다. 문명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인간은 이제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종(種)으로서의 겸손함을 되찾고 자연 속에서 다시 자리 잡기를 시도한다. 한편 나점수 역시 스틸로 거대한 정물을 제작한다. 그의 정물은 적막할 정도로 단순하고 정적이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으며 안정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유지하는 그의 작업은 거대한 산, 바다, 하늘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 김택기와 양태근은 기계적 세계에 자연의 세계를 결합시켜 서로가 서로를 청하는 충만한 상생의 관계를 기원하고 긍정적인 미래의 생태 사회를 상상한다. 김택기는 지구를 지키는 대표적 아이콘(icon)인 로봇태권브이를 클라리넷(clarinet)과 트롬본(trombone) 연주자로 무대에 올린다. 기술이란 본래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환경 파괴의 책임이 기술 문명의 발달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 영혼의 고갈이 더 큰 원인이다. 김택기의 로봇태권브이는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인 감수성이 마비된 인간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구원 투수가 된다. 양태근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자동차를 보여준다. 지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우리의 세계가 산업 문명으로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자동차의 바퀴는 동물의 다리로 만들어졌다. 이는 인간의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 자연이라는 사실을 은유한다. 겸손한 태도로 마지막 한 그루 남은 지구를 지키는 자연의 묵묵한 생명력은 문명에 취한 현대인을 치유한다. ● 노준, 민정아, 설총식은 인간과 동물을 결합시켜 유쾌한 우화(寓話, fable)와도 같은 작업을 선보인다. 노준은 애니메이션(animation) 캐릭터나 인형 같은 동물들을 만들어 관객에게 어린 시절의 동심과 추억을 선물한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자연 속 동물보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의 동물들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노준의 동물들은 모두 인간처럼 두 다리로 서 있는데 이는 평생 흙을 밟지 못하고 집안 혹은 동물원에 갇혀 사는 야생성이 사라진 문명 안의 동물들을 연상시킨다. 민정아는 토끼의 얼굴과 여성의 몸을 결합시켜 진짜 바니 걸(bunny girl)을 창조한다. 바니 걸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1865)에서 흰 토끼가 그랬듯 작가를 모험의 세계로 이끄는 길잡이와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 모험의 안내자는 무한한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 대지의 품으로 작가를 이끈다. 한편 설총식은 인간의 형상을 한 사막 여우를 통해 무한 경쟁적인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진화시키는 현대인을 풍자한다. 설총식의 작품 속 인간은 귀와 눈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기괴하지만, 이는 남보다 더 빨리 정보를 소유하고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 도시인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정작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자연의 소박한 진실 앞에서 그 본질을 알아보고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러니(irony)에 빠져 있다. ● 신성호와 조권익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상징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신성호는 철 구조물만 남은 문(門)의 안과 밖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동물의 형상을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문명의 구조는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얇은 막(膜)일 뿐이다. 우리가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문은 닫고 폐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방하고 소통하기 위한 통로로 전환될 수 있다. 조권익 역시 소통을 위한 벽을 만든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지키려는 본능적 욕구를 갖는다. 그러나 맹목적인 영역 정하기는 비극을 가져온다. 완전한 분리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작가는 내부가 보이는 소통하는 벽을 만들어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낸다. 유지숙은 전시 공간인 평화누리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사진으로 소통의 기록을 남긴 작가는 남과 북, 문명과 자연의 단절과 긴장 상태를 느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새로운 소통의 희망을 찾아낸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애정과 연민은 모든 경계를 허물며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감성적이고 진솔한 교류를 이끌어낸다.
임승오와 주송렬은 전시 장소가 임진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주목한다. 임승오는 철조망이 붙어 있는 거대한 시멘트벽에 군인과 인간의 형상이 공존하는 통로를 파낸다. 군인의 형상은 남과 북의 긴장 상태를 상기시키지만 그것과 연결된 인간의 형상은 남과 북이 한 민족이며 동등한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아낸다. 작품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비둘기는 모든 것을 초월한 인류애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작가적 장치이다. 주송렬은 들고 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스틸로 만들어진 거대한 여행 가방을 통해 작가가 원하는 대로 국토를 돌아다닐 수 없는 현실을 그려낸다. 세워진 가방의 윗부분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반대 방향을 향한 삽이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남과 북의 대립 상황과 소통 불능 상황을 암시한다. 임승오와 주송렬은 자연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이항 대립적 사고를 견지하고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낸다는 점, 작품이 설치되는 환경의 특정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생태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한편 핫산 후자이리(Hasan Hujairi)는 음악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도시 속에 숨겨진 청정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전자음과 자연의 소리를 결합시킨 그의 음악은 관람객들에게 문명과 자연을 오가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시처럼 메시지가 모호하고 다중적인 그의 음악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삶의 공간을 무한히 열린 의미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 문명 사회에서 강조되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는 경제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최고의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이고 인위적이며 조작적이다. 이제는 무위(無爲)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순수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상력은 단순한 공상, 환상, 꿈이 아니다. 그것은 배타적인 이분법적 구조에 갇힌 현대인들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한 삶의 터전이자 휴식처인 자연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유를 향한 통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학적 소통과 상상을 통해 얻게 되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충만함이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문정
Vol.20120903h | 평화누리에서 만나다 we meet in Pyeonghoa-Nuri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