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2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전시 작가 공모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구체관절인형, 대리인에서 단독자까지 ● 사람의 형상을 원본으로 삼는 인형(人形)은 생명 없는 무기체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호흡을 불어넣어 마치 생명체에 준하는 인형을 창조하려는 심혈을 바친 과거사는 유구하다. 흔히 태엽이 장착된 자동인형의 움직임은 그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착시하도록 유도한다. 18세기의 어느 인형 제작자는 인형과 함께 감방에 수감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당사자인 자크 드로(Jaquet Droz)가 그런 형벌에 쳐해진 사유는 그가 만든 자동인형을 종교재판이 이단으로 간주해서다. 생명체를 빚는 신의 영역을 침해한 죗값. 어디까지 진실인진 알 수 없으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도 일찍 여읜 친딸 프랑신을 애도하려고 시계태엽으로 움직이는 딸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제작했다는 일설이 전해진다. ● 인위적 움직임을 부착하지 않고서 사람의 수준으로 인형을 승격시키려는 또 다른 방법은 사람을 빼닮거나 또는 정교한 미모를 지닌 인형을 제작하는 것이다. 비스크나 도자를 소재로 백옥처럼 고운 인공피부에 실리콘이나 유리로 만든 인조 안구를 착용한 (구체관절을 포함한) 인형은 사람의 천연 미모를 초월하는 극사실적인 매력이 지닌다. 때문에 인형의 수려한 미모란 원본 없는 미모 즉 현실에는 없는 미모의 발명이다. 보는 이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착각하게 만들고, 만드는 이에게는 생명 창조의 우월감을 안기는 그런 미모다. ● 인형 원류는 기원전까지 거슬러가야 할 만큼 제작의 연대기가 길다. 그럼에도 현대인에게 인형으로 연상되는 건 아동용 완구로 수렴되기 쉽다. 대량생산된 지천의 인형이 그런 용도로 쓰이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꼭 실상이 그와 같진 않다. "아이와 어른이 인형을 대하는 관점은 차이가 실로 크다."는 인형예술가 웨슬리 스미스(Wesley L. Smith)의 진술은 인형을 놀이 대상으로 대하는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관상 대상으로 인형을 바라보는 극소수 성인 수집가의 미감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미성년이건 성년이건 인형을 의인화하려는 응시에선 일치한다. 글 서두에서 동력이나 미모를 통해 인형을 의인화 하려는 인형 제작의 배후를 살폈다. 인형에게 말을 건네고 인형과 자신을 혈연관계로 묶는 아이는 사유는 인형을 사람과 대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매한가지로 충분히 분별력을 갖춘 성인마저 빼어난 표현력으로 다듬어진 인형을 가까이 두고 지켜보려 한다. 성적 끌림 나아가 실제 성교를 목적으로 제작 시판되는 섹스 돌처럼 극단적인 상품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무수한 구체관절 인형은 사람의 육감적 미를 배가시키는 모양새로 설계되곤 한다. 무결점 피부에 긴 흑단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무기체 인형은 인간의 농염한 미모와 변태 성욕을 대리한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인간 형상의 무기체에 감정이입을 시도하려는 인간의 희구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허구적 이야기로 재현한 것일 테다. 밀랍인형을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있는 무엇으로 지목하면서 '불가사의한 uncanny'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프로이트에서 보듯, 무기체이지만 나이를 먹지 않는 인형은 유기체의 아름다움을 정지된 시간 속에서 보존하고 박제한다. ● 인형이 인간으로 변신하길 염원하는 집단의 염원 때문인지, 인형은 예술가와 대중의 환심을 사로잡기 유리하다. 세라믹 목재 도자 구슬 섬유 카드보드 신문지 마스킹테이프 등 인형 제작에 동원되는 재료의 범주는 무궁무진하다. 세계 도처에서 인형 예술가들이 활약하는 배경일 것이다. 인형예술가 정양희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 무렵 내놓은 작품은 구체관절인형의 본질을 즉물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많았던 것 같다. 10대 후반 소녀의 나이를 한 인형들은 성적 끌림과 보호본능을 동시에 간직한 소녀애의 화신처럼 보였다. 현실에서 인간을 직접 내세워 수행할 수 없는 유무형의 욕망을 인형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인형은 일종의 대리인이다. 인형의 대리 역할이야 말로 인형을 바라보는 이와 그것을 만드는 이가 만끽하는 매력의 원점이 된다. 둥그런 관절구는 인형의 관절 부위마다 개입되어 인형의 목 팔 다리 허리가 생명체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고안한 핵심 부품이다. 때문에 구체관절인형을 흡사 인간인양 보이려 했다면, 관절구로 인해 갈라진 틈새를 옷매무새 속에 숨겨서 눈속임은 완성시켜야 옳다. 그렇지만 구체관절인형들은 관절구 주변으로 둥그렇게 패인 선명한 틈새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채 전시되기 마련이다. 회전하도록 제작된 관절구가 틈새를 숨기기 어려운 구조 상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관절구 자체가 사람을 닮은 인형을 실제 사람으로부터 분리시켜서 독자적인 생명체 혹은 독보적인 존재로 알리는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무릇 관절구의 인공미를 고의로 노출시켜 기괴한 상상력을 증폭한 예술가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자 한스 벨머다. 정양희의 「무제」(2011)나 「Clown」(2011)도 관절구의 독보성과 관절구로 인해 이격된 신체의 해체를 토르소 부위만 떼어 강조한다. 이는 구체관절이기에 가능한 인형 미학을 즉물적인 방점을 찍은 것이다.
예술가와 대중 모두를 유인하는 매력을 인형은 담고 있다. 그러나 인형이 전시장에 진열될 때면 제약이 수반된다. 좌대에 올려진 인형의 공간예술은, 동선과 이야기가 포함된 시간예술의 긴박감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니 인형만이 모든 미적 승부를 감당하는 단독자로 뛰어야 한다. (구체관절인형을 포함한) 숱한 인형예술이 인형의 완전한 미모에 집중하거나 은밀한 관음주의에 기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미장센이다. 정양희의 초기작에선 화장실로 보이는 백색 타일에 몸을 기댄 「Sisters」(2001)나, 선혈 낭자한 밀폐공간에 소녀 인형을 기대어 앉힌 「첫사랑」(1998)가 미장센이 돋보인 경우였다. 표현주의적 첫인상과 설정된 화면 전후의 스토리를 관객이 대략 추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무제 0」(2011)와 「백일몽」(2006)이 미장센이 부분적으로 개입된 경우 같다.
인형 예술의 완성도는 개별 인형에 공력을 집중시키는 방법과 미장센을 통해 생명 없는 무기체에 스토리텔링을 얹는 방법으로 성취될 것 같다. 인형이 사람의 욕망의 대리인으로 존재해 온 오랜 선례로 볼 때, 정련된 기술로 다듬어진 개별 인형들에게 드라마가 부여한다면 공감대의 너비와 깊이가 이전과 다를 것이다. 인형이 인간이 되길 바라는 보편적 인심처럼 인형도 인간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단다. ■ 반이정
Vol.20120902f | 정양희展 / CHONGYANGHEE / 鄭凉姬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