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나다

2012_0829 ▶ 2012_090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경은_김용자_김희정_송창수_안진희_이은규_이지은 이창민_정난희_정해진_조희영_함보경_황윤경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동서를 막론하고 그 문명사는 대체로 남성 중심적 역사로 일관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지성적인 남성에 비해 여성은 그 반대적 가치로 형용되고 인식되었다. 남성은 실체였으며, 여성은 여백이었다. 이러한 왜곡된 성적 이해는 근대에 들어 비로소 개선되기 시작하였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 까지 지난하고 치열한 투쟁과 희생이 전제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른바 근대, 혹은 근대성의 커다란 의미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확인이라 할 것이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이며, 그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는 보편적 규범이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듯이 동양의 근대화는 서구문명의 수용에 의해 피동적으로 이루어졌다.

김경은_숭고한 사랑_견본채색_100×70cm_2012
김희정_평강_견본채색_143×90cm_2012

완고한 유교적 전통으로 무장한 동양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존엄은 그야말로 가혹한 것이었다. 피동적이고 부수적인 존재로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식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어둠의 그늘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던 그들은 일종의 '숨은 그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 질곡의 어둠 속에서도 모진 꽃들을 피워내며 세상을 밝혀 나갔다. 그것은 때로는 암울하고 비통하며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의연히 피와 눈물로 스스로를 꽃피웠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다스려 찬연한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 땅의 여성들은 그렇게 여백으로서의 공백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물들였으며, '숨은 그림'에서 벗어나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었다.

안진희_나는 윤심덕_지본채색_165×74cm_2012
이창민_before & after_지본채색_130×160cm_2012

이번 "어둠 속에서 피어나다."전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숨은 그림'들의 개별적인 삶과 그들이 감내하였던 질곡의 시대를 조망하여 현대적 의미를 확인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다양한 성취와 업적, 그리고 그 밝음과 어두움의 흔적들을 유추하여 해석해 보는 일이다. 이러한 해석의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그것은 정치, 사회, 문화적인 모든 장르를 망라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상징성이 대단히 두드러지는 인물들 뿐 아니라 사회적 상징성을 지닌 가상의 인물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정난희_빛과 그림자 사이_지본채색_110×60cm_2012
송창수_순이_견본채색_143×73cm_2012

봉건시대의 전통적 가치에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자유로운 영혼으로부터, 선구자적 자각으로 시대를 앞서간 여성상, 그리고 비련의 낭만주의 여성들과 철저히 무명으로 살아가며 이 시대의 근대사를 견인하였던 수많은 여성들에 이르기 까지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이들을 단순한 전기나 위인전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 가치에 의해 이들을 재해석하고 재조명하여 조형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이 땅의 여성과 그 역사의 의미를 반추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정해진_황후비애(皇后悲哀)_견본채색_82×146cm_2012
이은규_나도 맘은_지본채색_113×75cm_2012

전통적인 동양회화는 서정성을 전제로 한다. 의미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조형체계는 특정한 인물의 사연을 재현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서사적 표현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만약 진부한 초상화 작업으로 경도되게 된다면, 그것은 본연의 기획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바리공주의 애달픈 설화와 평강공주의 이야기에서부터 '순이'와 '홍도'로 통칭되며 근대화의 숨은 일꾼으로 청춘을 헌신했던 익명의 누이들, 그리고 '바비 인형'과 '못난이 삼형제'로 표현되어진 서구적 여성상과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감내하였던 명성황후, 예인으로서 당당히 획을 그으며 스스로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낸 허난설헌과 황진이, 그리고 비련의 로맨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윤심덕의 비감한 삶에 이르기까지의 결코 간단치 않은 작업들이 이번 전시의 주제인 셈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극히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에서부터, 익히 익숙한 구체적 내용과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들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의 요체는 바로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작가 개개인의 해석과 조형적 표출에 있는 것이다.

함보경_이따금 나를 행복하게_견본채색_73×52cm_2012
황윤경_난설헌 그녀도 날고 싶었다_견본채색_60×125cm_2012

내용과 형식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과 표현은 실로 분방하고 자유롭다. 그것은 기성의 정형화된 표현의 틀을 답습하기 보다는 새로운 주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고루한 초상이나 인물 형식에서 벗어나 그 인물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특수성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점철된 작업들은 자못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극히 개괄적이고 함축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깊은 여운의 여지를 제시하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부차적인 이미지들을 통하여 인물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업들은 적어도 경직된 직설적 표현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채색화 특유의 정치한 화면을 통한 장식적 성격과 설명적인 요소들을 함축과 절제의 정리된 이미지로 수렴해 낸 점 역시 긍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체 전시 기획의도에 부합하는 것인 동시에, 장차 개인의 개별적인 작업의 전개에 있어서도 새로운 영감과 동인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내용들이라 여겨진다.

김보야_영혼의 빛_지본채색_46×68cm_2012
조희영_숙명_견본채색_64×44cm_2012

사실 그간 전통회화는 '시정화의'(詩情畵意)의 서정적 표현으로 일관하였다. 이는 전통 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동양회화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대 이후 조형(造形)에 의한 표현을 학습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 현대미술 교육에서의 지향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개별적이고 표현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지는 현대미술의 현장에서의 괴리감은 대단히 큰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조형체계와 전통과 현대라는 접점에서 '숨은 그림'으로서 존재하는 여성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해 봄으로써 그 모순과 조화, 충돌과 화합의 묘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지은_토지 박경리 生_지본채색_90×60cm_2012

나아가 이러한 시도는 그간 단순한 소재주의적 경향과 표현주의적 성향으로 일관된 단조로운 한국화의 표현에 서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소재와 내용을 모색해보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하는 의미를 두고 있다. 물론 이는 한 두 번의 전시나 작업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출품된 다양한 해석과 그 내용들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기대할만한 내용들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출품 작가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본다. ■ 김상철

Vol.20120829d | 어둠 속에서 피어나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