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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홈페이지_www.songchangae.com 인스타그램_@changaesong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ngik Museum of Art 서울 마포구 상수동 72-1번지 제1관 문헌관 전관 Tel. +82.(0)2.320.3272 homa.hongik.ac.kr
송창애, 풍경의 스펙트럼-하나의 풍경은 다른 풍경을 품고 있다 ● 삶도 그렇지만 작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무언가를 향한 모색의 과정일 수 있다. 설익은 의미와 모호한 형태를 부여잡고 의미가 또렷해지기를 기다리고 형태가 분명해지기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동물은 순간을 살고 인간은 시간을 산다고 했다. 순간의 지속인 시간은 그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인과론과 함께 자기반성적인 인간의 인문학적 발명품이다. 그 시간의 축에 순간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다만 밑도 끝도 없이 물고 물리는 반성과 인과의 과정이 있을 뿐. 그 희미하고 치열하고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다보면 아주 이따금씩 불현듯 의미가 또렷해지고 형태가 분명해질 때가 있다. 경향성이라고 부르는, 아님 유형으로 명명되는 형식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 송창애의 그림은 이처럼 희미하고 치열하고 지난한 모색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매스 혹은 매스케이프로 명명할 만한 일련의 그림들에서 그렇게 의미가 또렷해지고 형태가 분명해진다. 매스케이프? 유기적인 덩어리 풍경이라는 말이다. 유기적인 덩어리 풍경? 모든 덩어리는 유기적이다. 부분과 부분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 비로소 덩어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유기적인 덩어리 풍경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실현하는가. 사실 작가의 그림은 또렷한 의미와 분명한 형태가 무색할 정도로 그 의미도 흐릿하고 형태도 모호하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흐릿한 의미와 모호한 형태 위로 뭉실한 구름 같기도 하고 아득한 숲 같기도 하고 얼기설기한 잡풀이나 잡목 같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알 수 없는 얼룩 같은 비정형의 풍경을 밀어 올린다.
그리고 그림에 가까이 다다가면 반전이 일어난다. 알 수 없는 얼룩처럼 보였던 비정형의 풍경의 실체가 드러나 보이는데, 벌거벗은 사람들이 얼기설기 엉켜져 있는 살풍경이다. 자연 풍경인줄로만 알았는데, 아님 비정형의 얼룩으로 표상되는 심의적이고 관념적인 풍경인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살풍경이었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첫인상이 다르고 실제 그림에 직면했을 때의 인상이 다르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그림이 틀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자연풍경(구름이나 잡목 같은)과 관념적인 풍경(자동기술법의 흔적이며 무의식의 얼룩 같은) 그리고 여기에 살풍경(살덩어리 같은)까지 하나로 포개진 풍경의 레이어는 어떻게 왜 그려진 것이며 그 의미 또한 어떤 지점을 겨냥하고 지시하는가. ● 그 의미? 살풍경이라고 했다. 그림의 의미론적이고 형태적인 씨앗 아님 원형에 해당할 이 살풍경은 원래 미디어를 통해 접한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이라크 전쟁 포로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피라미드처럼 벌거벗은 채 포개져 있는 인간군상 이미지를 드로잉으로 옮겨 그린 후 복사기를 이용해 드로잉을 무한 복제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이미지를 화면에다 콜라주하고 연필과 먹(흑연)을 이용해 가필한 그림이다. 먹의 농담과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맺힌 자국과 같은 회화적인 과정으로써 살덩어리로 나타난 적나라한 재현적인 화면을 덮어서 가린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렇게 가림으로써 재현적인 상황논리(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오히려 더 잘 드러나 보인다(효과적으로 아님 전략적으로 노출된다?). 그렇게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자연풍경 속에 숨은 살풍경이 보이고, 관념적인 풍경에 가린 사회학적 풍경이 보이고, 알만한 풍경의 이면에 예기치 못한 의외의 풍경이 보인다. 바로 중의적 의미이며 양가적 의미이다. ● 이처럼 모든 의미는 겉보기와는 다르고, 그 자체 결정적이지도 않다. 언제나 하나의 의미는 다른 의미와 연결돼 있고, 때로 표면적인 의미는 자기와는 대극적이고 대차적인 의미에 연동돼 있다. 그렇게 전혀 상관없는 줄로만 알았던 자연풍경과 살풍경이, 사회학적 풍경 아님 존재론적 풍경이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삼투되고 있었다.
대비되는 문법도 확인되는데, 가로나 세로 화면 중 일부를 순수한 추상화면에 할애해 재현적인 아님 관념적인 형상을 표현한 화면과 상호작용하게 했다. 조형의 일부로서 차용된 기하학적 추상화면과 에어브러시로 그린 유기적인 화면이 서로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다. 이런 모노톤의 화면과 함께, 더러 그 화면 위에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을 전면적으로 덧입히기도 하는데, 그 색채감정이 흥미롭다. 셀로판지와 같은 투명하고 맑고 깊은 색감이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할 때의 빛의 질감을 연상시킨다. 내면의 빛(이를테면 카라바치오와 렘브란트 같은)과 외광파(인상파와 같은), 조명과 같은 인공의 빛(팝아트에 연유한) 이후에 전혀 다른 종류의 빛의 질감을 감지하고 적용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 작가는 이런 형식실험의 지점 지점들을 매개로 감각적 재현(이를테면 구름이며 바다 같은)에서부터 내면의 메타포(이를테면 생명력의 분출이나 기의 흐름 같은)에 이르는 풍경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일종의 내면풍경이며 심의적인 풍경을, 존재론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 고충환
새 연작 MæSS_Purification은 기존의 MæSS 연작의 중심 주제인 '인간과 자연의 한 덩어리 의식'을 근간으로 하되, 불가에서 말하는 사대요소, 즉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地.水.火.風이 지닌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을 인간의 성정과 연계하여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는 만물일체론적 사상과 천인합일의 조화 추구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동양철학과 예술관에 근거한 것이다. 자연에 내재하는 이치와 원리를 지.수.화.풍이라는 무형의 소재를 통해 구현하고, 이는 '결(gyul)'이라고 하는 공통된 조형언어로서 표출되었다. 즉, 산수결, 물결, 불결, 바람결은 다름아닌 자연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을 시각화 한 것이며, 연구자 자신의 성정과 기질이 그대로 투영된 파동체이다.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격동하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인간의 감정을 자연의 생명력을 전달하는 결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결'의 표현을 위해 그리는 기법이 아닌 지우는 기법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허 중시적' 동양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나아가 음양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허실이 상생하는 화면 구성을 추구하고자 함이다. 마치 흑백사진을 뒤집어서 현상한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는 채움에 급급해하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비움으로 이끌고 사색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필뮥법이 아닌 현대적인 도구인 에어 콤퓨레셔 또는 지우개를 이용하여 흑연가루로 검게 도포된 바탕화면을 바람으로 지우고 비워서 형상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삶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비움으로써 비로소 진정 채우는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이번 MæSS_Purificaiton 연작에서 보인 두드러진 조형적 변화는 회화와 사진의 합성을 통한 초현실적인 화면의 창출이다. 이는 회화와 사진이 가지는 장점을 효과적으로 접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구상과 추상, 현실과 이상, 형이학과 형이상 세계를 오가는 심미적 경험을 유도하고자 함이다. 여기에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바탕의 선묘와는 대조적인 강렬하고 인공적인 색의 가미를 통해 심리적 긴장감을 이끌어 관람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본성과 자연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고자 하였다. 과연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공간은 언제나 이 두 경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는가. ■ 송창애
Vol.20120827i | 송창애展 / SONGCHANGAE / 宋淐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