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시선 또는 알레고리

김광표展 / KIMKWANGPYO / 金光標 / painting   2012_0829 ▶ 2012_0903

김광표_12-7_혼합재료_145×145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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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829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제4전시장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빛이 없는 어둠 속에 포식자가 회를 치면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은 이리저리 도망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야생의 세계는 순간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순한 인상의 동물들도 결국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삶에 깊이 배인 잔혹성을 체감한다. 그러기에 동물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은 삶의 내면과 죽음의 깊이를 담고 있다. 인간은 동물을 통해 타자의 신을 예감한다. 동물을 감상하는 것이 하나의 오락처럼 유행하는 취미임에도 우리는 어떤 진실의 어둠이나 숭고를 추리하기도 한다. 동물의 눈은 타자의 시선이다.

김광표_12-1_혼합재료_227.3×181.8cm_2012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부엉이나 올빼미와 같은 야행성 새를 화면 가득 채워놓은 작업을 시리즈로 보여준다. 지난 전시에서 한가로운 바닷가 풍경, 가족과 이웃들, 새, 나무, 여행 등 매우 일상적인 소재를 소박하며 나른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였는데,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으로 새와 새가 주는 은유를 주제로 삼았다. 작가가 고른 새는 아름답거나 이상적인 비전을 상징하는 새가 아닌 부엉이처럼 밤의 포식자이며 부리부리한 눈과 반복하는 깃털의 무늬로 조형적인 실험을 위해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새 중에서도 부엉이는 미네르바로서 지혜를 상징하는 거나 박학다식하나 엉뚱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다소 유머러스한 인상과 밤의 포식자로서 느끼는 자신만만함 또는 사냥과 포획의 황홀함과 공포라는 현대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김광표_12-4_혼합재료_194×130cm_2012

육식동물이며 맹금류인 부엉이나 올빼미는 정교한 시력과 비행술로 밤의 사냥꾼이다. 눈은 실상 육식동물의 공격성을 은유한다. 사람의 눈도 예외일 수 없다. 커다란 두 눈이 정면을 응시하는 새는 한편으로는 위협적이고 한편으로는 유희적이다. 작가의 새는 이미지가 시선의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눈과 부리를 제외하고는 새의 깃털은 이전 작업의 표면질감을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는데, 여러 겹의 두꺼운 유화의 물감 층을 쌓은 화면에 조각도로 교차하는 선과 동심원 형태를 통해 형상을 만들고 있다. 이전 오랜 기간 서정적 추상 작업에 집중하다 근래 일상의 다양한 소재를 모색하는 모습이었다. 부엉이 또는 올빼미를 유화의 질감과 판화의 질감이 결합한 형태의 작품을 주로 보여준다. 이 시리즈에서 이미지와 재료의 표현을 다루는 작가의 숙련성과 스타일을 주목할 수 있다.

김광표_12-5_혼합재료_162×97cm_2012

작가는 양식화된 새의 형태를 반복하면서 실상은 화면의 표면효과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 이질적인 또는 마술적인 새의 시선과 이미지는 화면가득 채워져 단순히 새의 생김새를 조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관객의 시선이 교차하거나 현실감을 넘어가는 물질성을 드러낸다. 캔버스 위에 숯을 얹고 그 위에 두꺼운 채색 층을 만든 후 에칭이나 목판화처럼 날카롭게 스크래치를 내고 긁고 흔적을 내면서 형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긴 시간과 숙련성을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새의 형태를 만들고 새의 형상과 표면질감이 충돌하고 어울리면서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고 회오리치는 시각적 효과는 오랜 숙련의 결과이다. 과거에 비해 쉼 없이 동요하는 최근의 시각문화의 조건에서도 새로운 주제나 형식을 모색하거나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 아니다. 작가는 오랜 기간 일상의 소재를 벗어나 재료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매진해 왔다. 거기에 작가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형상을 통해 하나의 방향으로 기술해나가는 이미지의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추상이미지라 하더라도 그것을 접하는 관자(觀者)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형상이 운동하게 된다. 새를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이미지와 형상의 관계가 열려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광표_12-6_혼합재료_145×145cm_2012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모색의 정신적 과정을 담기 마련이다. 작가 특유의 여러 가지 표현과 기법, 재료의 개성적 해석과 변용, 계획하지 않은 결과들 이 모든 것들이 한 작가의 작업 과정에 융합되어 작가가 창작 중에 심리적이 상태가 흔적으로 남게 된다. 작가는 이미 표면질감의 물질적, 심미적 효과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 왔고 그것은 어떤 형상을 그리건 특징적인 개성으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의 작업들은 그가 복고적인 소재와 표현을 재해석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도정에 있다고 보인다. 새는 새일 뿐이고 재료는 재료일 뿐이다. 새나 재료나 무엇이 되었건 결국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작품 내부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전제한 외부의 시선과 의식에 있다. 단지 조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미지의 영역에서 연원하는 상처와 깊이를 드러낸다. 의인화하는 형상으로서 새의 이미지는 동물의 재현이 아니라 알레고리로서 삶과 사회를 비유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동물 이미지는 존재와 사물의 비밀을 은유한다. ■ 김노암

Vol.20120827f | 김광표展 / KIMKWANGPYO / 金光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