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시퀀스

劇,極,克 Sequence展   2012_0831 ▶ 2012_0917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831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김도균_박대조_이지연 김영배_박민준_서상익 유선태_하이경_황용진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시각예술가들은 자신의 한계 혹은 자기와의 싸움을 극복(克)해 내어야만 새로운 창작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중 얻어지는 화면은 함축된 이미지를 통한 스토리텔링으로 매우 극적(劇)인 구조를 이룬다. 그래서 그들이 얻은 오늘의 결과물인 예술 창작품은 일정의 한계를 벗어난 극(極)적이라 부를 수 있다. 그들의 이러한 극적인 작업은 완성이라는 단어를 서술어로 갖게 되어 그들의 고뇌와 모든 에너지의 종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 완성으로 펼쳐 보여주는 작품은 무언가를 향해가는 연속된 사건들이나 순서의 차례들일 지도 모른다. 하여 오늘 완성된 작품은 절정을 향해가는 중간 중간의 장면들. 시퀀스(Sequence)라 부르기로 한다. ● 極的 Sequence - 이들이 포착한 장면은 매우 극적이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모두 목격했던 장면이다. 인간의 삶의 범주인 도시와 숲, 그 속의 익명성들과 부조리한 실존의 사실이다. 우리가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작가들은 시각적 아름다움이라는 부제를 달고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을 매우 긴장감 있게 보여 준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벗어났다. 그들의 이미지를 통하면 보다 넓은 時空을 만나게 된다. 무형에서의 유형으로 창조된 환경보다 훨씬 더 동의를 구하기 힘든 유형에서 새로운 유형으로의 전이. 이것은 구획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절대 찰라의 순간이며 行間일 수도 있다. 그들이 실행에 옮긴 카메라의 셔터 타이밍은 일상의 평면이 지닌 매우 極的인 절대 순간을 새롭게 조성하여 화면이라는 공간 위에 조성된다. 날카롭지 않지만 예민하고, 적나라하지 않아도 단호하다.

김도균_sf.Be-3_나무 프레임에 C 프린트_160×200cm_2010

김도균의 도시 화면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라졌으나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도시의 건물과 차 창밖의 풍경은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빌딩의 한 모서리. 작가의 의도로 공간은 쪼개지고 새로운 시각적 환경을 제시한다. 달리는 차 창밖의 풍경은 구체적 환경이 사라지고 오로지 속도와 색만으로 표현되었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가치를 전달하는 것. 김도균이 오늘 목격한 지점의 뚜렷한 예술성이다.

이지연_Walking on air 2_피그먼트 프린트_140×180cm_2012

이지연은 조각난 도시는 반복되는 오늘의 우리다. 화면 속 인물은 특정인이 아닌 익명인이며, 바로 '나'다. 우리가 선택하여 벌어졌다고 믿는 오늘의 풍경은 사실 다분히 사회적이며, 규칙적이고, 소속된 개체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뛰어난 색감과 리듬이 있어 보는 동안은 무겁지 않게 실존의 문제를 탐닉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여러 컷의 장면을 나열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작가의 감각적, 직관적 스킬이 매우 뛰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모아 놓은 여러 조각의 화면은 결과적으로 색감과 조화로운 구성으로 인해 마치 페인팅을 다루고 있는 것과 같은 정서와 느낌을 잘 전달해 낸다.

박대조_Human & Nature_혼합재료, 라이트 박스_101×154_2011

박대조는 인물과 자연을 화해(和諧)롭게 풀었다. 인간이 자처한 소외와 방임의 댓가를 스스로가 받아 공허라는 현대에 익숙한 단어로 안일하게 귀결지으려 할 때 자연은 그 대안으로 등장하며 자정작용을 인간에게 제시한다. 생각보다 강한 우리 내면의 힘은 결국 자연에게서 왔으며, 그로 인해 치유받고 정화될 수 있다. 박대조는 이러한 지점의 소통구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아름답고 유연한 가능성을 내비친다. 인간의 여러 신체기관 중 내면을 가늠하기 가장 적절한 기관인 눈을 선택하여, 보여지는 눈과 보고자 하는 눈의 상을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닌 눈동자 그 자체로 해결한다. 쉽지 않으나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예술이기에 가능한 제시다. 예술가가 먼저 목격한 문제와 대안. 아름다움으로 보되 진심으로 느끼면 실천 가능한 구조다. ● 劇的 Sequence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삶은 진실이며 다큐멘터리고, 사실이지만 허구보다 더 치열하고 극적이다. 시각을 통해 말하는 작가들이 선택한 풍경은 다분히 시어(詩語)처럼 함축적이며 스틸 컷처럼 순간적이다. 그래서 이들의 풍경은 사실 탈일상적이고, 초일상적인 풍경이다. 현실과 환영의 중간 지점인 극적 구성은 공간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고취시키고, 순간에 대한 시선을 더욱 집중시켜 작가의 창조적 현실 재현을 사실의 구현이라 믿게 만든다. 있을 법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것은 있을 수도 있다는 전제 조건 하에 가능한 일이고, 그 있을 수 있음은 다름 아닌 우리 삶의 무한한 스펙트럼 중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 재현일 것이다.

김영배_Botanical Garden_캔버스에 유채_130×170cm_2011

김영배는 화면은 있었거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러나 모두 극(劇)이다. 작가는 모아둔 사진이나 스케치, 혹은 메모를 보면서 부분적인 소제들을 머릿속으로 조합을 해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면 작업을 시작한다. 소설이나 시나리오의 작법과 같다. 김영배의 관심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시각적으로 확장시킴에 있다. 정적인 화면 속에는 언제나 인물이 중심이 되고 그 인물의 감정을 읽게 해 줄 도구들이 등장한다. 접근법은 피사체가 가지고 있는 평범함에 이례적으로 상징성을 띠게 만들어 작가가 평범한 인물을 특별하게 선택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선택적 장면이 갖는 힘은 일단 보고 나면 우리가 직접 목격했거나 체험한 장면처럼 견고하게 정신에 남아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결국엔 지속적인 삶의 궤적까지 사유하게 되는 영향까지 미치게 됨에 그 회화적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박민준_No hope no fear_리넨에 유채_66.04×101.6cm_2011

박민준의 회화는 완전한 극적 삶의 환영이다. 작가는 타로카드를 재해석 하며 삶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회화로 재현한다. 박민준은 작품을 하기에 앞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정해 놓고 있으며, 절대로 우연한 것을 다루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그림을 진행시키는 상황에서 여백으로 처리될 수 있는 부분을 결코 간과하지 않아 매우 진지한 방식으로 화면에 집중하고 그 속내를 읽어 나갈 수 있는 작법을 유지한다. 박민준이 선택한 타로는 일상의 사건들이 서로 관련되어 나타나게 될 예지적 설정이다. 설정을 제외한 등장인물과 상황, 장소는 마치 벌어진 일처럼 보여지나 작가자신을 숨긴 채 피사체로 하여금 화자가 되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용히 주지시키는 묘한 힘을 갖는다. 그가 화자 뒤어 숨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지만 매우 미묘한 감정의 것들이라 우리는 더욱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듯 그의 그림을 몰입하게 되는 즐거움을 덤으로 얻게 된다.

서상익_익숙한 풍경 2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2

서상익. 속임수 : 현실로 돌아온 척한 극. 그는 이제 극적 상황을 벗어나 현실을 그린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사실이라기 보다 현대인의 속성에 가깝다. 설득력을 가진 자체의 공간 체계를 만들어 놓았으나 그의 공간은 모호하다. 매우 현실적인 환경과 결코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을 병렬시키거나 결합시켜 우리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사적인 대중(private public)이다. 대중의 무리에 속하나 그들은 익명성이 부각되기 보단 개인이 주가 되는 매우 사적인 부류다. 이 사적인 대중을 통해 서상익은 사실로 보이는 부분(공간과 인물)과 가설인 부분(인물의 심리상태)을 적절히 혼합하여 자신의 발언을 극적으로 이끈다. 가설과 몽환이 보다 적극적이었던 이전의 작업보다 현실화된 작가의 시선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바로 동시대의 화두가 되는 물음표들이다. ● 克的 Sequence - 실존하는 일상의 기물들 사이사이 허상의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작가는 현실과 그렇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시각리뷰를 화면을 통해 제시한다. 이들은 인식이 갖고 있는 대상이나 공간에 대한 선입견에 가까운 오해들로부터 극복해내어(克) 직감적으로 느끼는 실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오랜 사유과 관찰을 수순으로 가지고 화면이던, 나무던, 하늘이던 그의 손끝이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작가 스스로도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는 시간, 드디어 우리는 그들의 심상 속에 자리 잡은 상을 목격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극(克)적 풍경들이다.

유선태_말과 글(3년간의 흔적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2

유선태의 화면엔 작가 작업실의 소도구들과 작가가 수년 간 수집한 물건들, 붓과 화구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현실이다. 아니다. 현실이 아니다. 작가는 그 현실 속에서 다시 환영을 부여하며 이미 조성된 환경을 이겨내 극적인 풍경을 조성한다. 아름답고, 심오하지만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시간과 공간, 현실과 환영, 서사와 은유가 경계 없이 펼쳐진 새로운 스펙트럼은 유선태의 풍만한 사유체계를 농익은 작가의 손끝으로 드러낸다. 아카데믹한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의 속내는 사실 매우 유쾌하고 진취적인 사고의 기발함에 기인한다.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개인사적 맥락의 소재의 관계들이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진부한 과거가 아닌, 오늘의 나를 존재케 하는 살아 있는 호흡이다.

하이경_섬_캔버스에 혼합재료_51×43cm_2011

하이경이 다루는 풍경은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거리다. 아니다. 보기만 했을 뿐 인지의 단계까진 다다르지 못한 스쳐간 풍경들이다. 세필로 획득한 화면의 밀도는 팽팽한 긴장감과 탄성을 제공하며, 고요한 풍경을 집중토록 도와준다. 경복궁과 삼청동에서 우리는 언제 나뭇가지의 그림자까지 목격해 보았는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 귀중한 부제들이었으나 현실의 우리는 그저 스치기만 했을 뿐이다. 예술의 가치는 이런 것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아름다움으로 승격시키는 힘. 하이경이 담아내고 있는 풍경에서 전이되는 소리와 냄새, 햇살의 농도와 거리의 온도가 바로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극적인 시각이며, 그것을 규모있게 담아낸 화면이 바로 극적인 장면이다.

황용진_My Landscape-10103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0

황용진은 보다 내밀하게 안으로 들어온 풍경을 담는다. 내 방 책장 안의 오래된 책들과 소품들. 그들을 통해 작가의 머릿속과 이상향마저도 유기적으로 오늘의 현재 진행형처럼 꿈틀거린다. 동화도 되고 환상도 된다. 오늘을 바탕으로 삼으나 머지 않을 미래인 오늘이며, 잠들지 않을 초심이다. 나와 오늘을 이겨야만 가능한 극(克)적 화면이다. 화면 속 관계들의 밀도와 속도는 작가의 심미적 리듬을 타고 때론 경쾌하게 때로는 정적으로 결말에 도달된다. 그러한 구성은 소재가 갖고 있는 물성을 극복하고 현실이라는 정답에 가까운 상황을 극복하여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화면을 이루어 낸다. 아날로그적인 소재들이 아카데믹한 붓질을 통해 조심스레 화면을 운용하면서 작가는 무엇에 대한 기원을 올리는 듯 의식적인 행위를 지속해 나간다. 그의 화면이 오늘의 작가로써의 기도가 되는 의미다. ● 극적 시퀀스의 작가들은 첨예한 감각의 시선을 가졌다. 주어진 일상적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에 이들의 시선의 주목이 시작된다. 날카롭게 바라보고, 미묘한 감정을 먼저 포착해 낸다. 익숙한 풍경이, 사물이, 사건이 이들의 시선을 만나 기묘하고, 찬란하며, 극적인 사유로의 전환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작가의 시선에서 포착된 일상의 날 것은 그들의 관찰을 통해 미분화되고, 그들의 감정을 통해 예리하게 분석된다. 그 분석은 감정적일 수도, 사변적일수도 있으나 대부분 혹독한 외로움과 시련이라는 과정을 통해야만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되며, 뜨거운 감정의 몰입과 집착 같은 사유의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짐작하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를 예술작품이라는 현실적 구현으로 제시 가능해 진다. ■ 김최은영

Vol.20120826c | 극적 시퀀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