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서신

장수종展 / JANGSOOJONG / 蔣樹宗 / media installation   2012_0822 ▶ 2012_0830

장수종_Hollow Promise_LED 패널_13×78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803f | 장수종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한요한 주최 / Odd Capital Syndicate

관람시간 / 01:00pm~07:00pm

FM 333.3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3-3번지 Tel. 070.7758.4118 www.fm3333.com

Odd Capital Syndicate은 FM 333.3 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서 근대 도시와 현대 사회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제공하는 장수종의 개인전 강철 서신을 진행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상징화된 다양한 키워드를 조합해 다양한 의미를 재해석해나가며 시각예술 분야에서 아직은 생소한 메타 텍스트의 가능성에 대하여 실험하는 이번 전시는 이미지로써의 텍스트와 텍스트로써의 미디어의 가능성을 고찰해 볼 수 있는 한국 예술계에 중요한 지점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로 귀착될 것이다. ■ ODD CAPITAL SYNDICATE

장수종_임대_나무 패널에 유채_60×200cm_2012

근대 전신 기술과과 그 파급으로 인한 현대 미디어의 형식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순간적인 즉시성과 총체적 개입은 아직도 문자적 교양인의 반발을 낳고 있다. 그들의 시각적 연속성과 고정된 관점은 즉시적인 미디어의 즉각적 참여를 대중 스포츠 만큼이나 불쾌하고 혐오스럽게 만든다. 급속한 기술 발달로 인하여 감수성은 고칠 수도 없이 삐뚤어지고, 기게적인 글과 인쇄의 고정된 자세로 굳어져 버린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기시대의 아이콘적 형식들이 희미하게 보이거나 혹은 육안으로 호르몬을 보는 경우처럼 심지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미디어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이미 존재하는 미디어의 자리를 옮기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예술가는 경험을 다시 배치하는 새로운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 (미디어의 이해, 마샬 맥클루언, 테런스 고든 편집, 김상호 옮김,『전신: 사회의 호르몬』, 커뮤니케이션 북스, p435) ● 문화 학자 마샬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의 육체나 정신이 확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미디어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써, 항상 상을 이루며 등장한다. 그래서 전신은 인쇄된 말을 담고 있고, 인쇄된 말은 손으로 쓴글을 담고 있으며, 또 손으로 쓴 글은 말을 담고 있다. 담긴 미디어는 담은 미디어의 메세지지만, 주로 담겨있는 미디어, 메세지의 메타성과 미디어의 텍스트성에 대한 양태를 경고한다. 하지만 내용으로 다가오는 미디어에만 집중하는 사용자 들에게 그것을 담고있는 미디어의 효과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디어의 효과는 매우 강력하다. 통상적으로 내용이나 정보라고 부르는 메세지는 미디어보다 그 영향력이 훨씬 적다. 따라서 "미디어가 메세지다"라는 결론을 그는 도출해 낸다. 하지만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인간의 사회적 관게맺음과 그 활동 형식, 규모, 그리고 속도를 변화시킬때 미디어의 잠재적 효과를 가장 강력하게 드러낸다고 말했다. 나는 이러한 결과로인해 우리가 창출한 현대 기술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환경은 고통을 만들어 내며, 그런 고통을 차단하기 위하여 신체의 신경계는 작동을 중단해 버리고 우리는 집단적 감각의 폐쇄상태에 진입했다고 판단 한다. ● 따라서 나는 이러한 폐쇄라는 개념을 마음의 평정 상태로, 지각의 대체로, 그리고 이미지의 완결로 해석하고 미디어를 인간의 육체나 정신이 확장된 형식이며 우리의 육체를 감싸는 외피로 간주하여,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현대사회에서 신체확장물들의 증가된 힘과 속도에 대한 우리의 확장된 반응을 실험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 미디어는 그 내용과 관계없이, 단지 그 형태상의 이유때문에 숨은 이야기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고백적 성격을 지닌다고 보며, 따라서 진정한 미디어는 나쁜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즉 온갖 미디어가 우리의 지각을 혼동케 하고 메세지의 자극성으로 인해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매체 과잉 현실에서 오리지날 메세지의 부재가 창출하는 자극적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성에 의해 무한 확장을 진행하는 미디어의 파급력에 의해 현대인은 모든 감각과 지각을 상실해 나갈 것이라고 나는 예측한다.

장수종_대출_나무 패널에 유채_60×200cm_2012

이렇게 모든 감각과 지각이 무뎌진 상황에서 그리고 오리지날의 부재 즉 대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 대상을 설명하는 형식 즉 메타 텍스트에 대한 지각은 절실하다. 다양한 문학의 장르에서 발전되온 메타텍스트에 대한 연구는 사실 대상없는 실제에 대한 재현을 실행해온 시각 예술의 분야에서 더 심도있게 고찰되어야 할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나는 미디어의 속성인 메타성을 중심으로 텍스트가 서술하는 대상의 본질과 시각 예술에서 진행돼온 재현의 방식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도출되는 변증법에 의해 창출되는 새로운 대상성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관객의 지각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사실 텍스트는 문화 현상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 하는데 그것은 텍스트를 넘어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기호 영역 안에 존재하는 텍스트 이다. 여기서 나의 목적은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 즉 메타 텍스트를 산출하는 일이며 이렇게 창출된 메타 텍스트는 또한 하나의 텍스트로써 또다른 메타텍스트를 산출할 가능성을 창출 하고자 한다. 즉 이번 작업은 무의미한 텍스트에서 메타텍스트를 생산했다면 그 메타텍스트는 그 자체로 오리지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으로써, 무의미한 텍스트에 대한 메타텍스트, 또는 오리지널 없는 복사본이란 그 자체로 본디 표상하려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는가를 관객과 함께 도출하고자 한다. ● 사실 내용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면 텍스트-메타텍스트 관계도 성립하지 않으며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 오리지널리티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내용을 부차적으로 보는 관점이 적절한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메타텍스트는 글의 존재유무로만 따지면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내용상으론 원 텍스트에 종속되어 있다. 물론, 그 사실이 메타텍스트의 메타텍스트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되지 않으며. 따라서 메타텍스트는 오리지널이 될 수 있다. 즉 텍스트와 메타텍스트의 구조적 차이점은 없다. 모든 메타문장은 그 자체로 문장의 자격요건을 완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텍스트에 대한 메타텍스트, 또는 오리지널 없는 복사본이란 그 자체로 본디 표상하려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도출된다. 의미론 적으로 메타 텍스트의 의미는 「기존 텍스트에서 어느 부분이나 전체를 빌려와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새롭게 변형시킨, 혹은 그 텍스트에 완전히 반(反)하게 만든 텍스트로써, 기존 텍스트나 그렇게 변형시킨 메타 텍스트를 접하고 난 뒤 각자 나름대로 찾아낸 그 텍스트의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이것을 넓게 해석하면 문화에 대한 문화라는 개념까지 확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속에는 어떤「메타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전재로 현대 문화의 허상성을 개인적 경험과 중첩시켜 펼쳐 나가려 한다. 왜냐하면 문화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의미를 파악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파악하는 나와 그 대상이 갖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그 대상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 속에 있기도 하며, 또한 대상과 나 사이의 관계 속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이 이루는 관계의 성격을 우리는「대화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문화 속에서의 이러한 관련성을 텍스트와 경험 그리고 상징의 관점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 제시된 다양한 텍스트들의 재현된 현실성으로 본다면, 이런 재현, 모사, 묘사된 텍스트에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의견과 상상이 결부되어 만들어진, 2차적 창조를 메타텍스트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메타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객관화된 장은 인터넷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제시되는 작업들은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들의 매체인 사인과 간판등의 아직 네트워크화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고유한 메타성을 함유하고 있는 매체를 그 대상으로 형식화 하였다. 이는 전시장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통해 그 매체에서 전달하는 메타 텍스트인 2차 텍스트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3차, 4차 텍스트를 구성하며 관객을 새로운 나레이티브로 끌어들이며 비물리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함으로 해석되어 지길 바란다. ■ 장수종

메타meta라는 말은 '더불어' 또는 '넘어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메타 텍스트는 하나의 텍스트를 지닌 텍스트, 혹은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를 지칭하게 된다. 메타 텍스트의 자기 참조성(self-referentiality)은 작품과 독자와의 거리두기를 목적으로 하며, 독자로 하여금 작품의 내용 뿐 아니라 형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할 목적으로 도입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저작인『소설 속의 독자-Lector in Fabula』에서 작가에 의해 정의된 '모델 독자'가 작품과 어떻게 거리를 두며 작품을 재해석하게 될 것인지 설계한 작품을 메타텍스트로 정의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발화자의 관점에서 메타 텍스트를 정의하였다면 현대의 메타 텍스트 개념은 수용자, 즉 관객이 작품과 스스로 거리를 두어 능동적으로 작품을 메타 텍스트로 파악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으로 전시된 작품을 전시물이 아닌 존재로 인식해, 순수한 미적 태도로만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개인은 자신이 속한 범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고 결국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현대 예술은 이러한 필연성을 더욱 극대화 하여, 수용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출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일정한 방향성 안에서 이를 제한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왔다. 작품은 단독자로서 완료된 개체이나 동시에 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주체들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방가르드에 해당하는 예술들에서 작가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함으로써 전시의 형식을 전복하고, 헤게모니를 공격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전시장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관객은 작품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전시를 먼 거리에서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도록 강요받으며 동시에 이해를 포기하고픈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 사실 20세기 전반, 세계는 물질문명의 가속화에 따른 부작용이 대두되고 있었다. 도시의 중력에 무력한 개인들은 익명화에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스스로를 타자화 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다면성과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 장수종은 도시문화 연구, 도시 개입 프로젝트 발기, 그리고 예술 네트워크 구축 사업으로 인한 그의 다각화된 행위로 인하여 타인이 자신이 인식하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타인의 인식 속에 깃든 자신을 해체하기 위해, 그들이 기대하는 행동을 거부함으로써 타인이 정의한 자신의 상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이미지를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또한 이를 위해 사회를 보고 있지 않은 자신을 사회를 통해 관찰하려 노력하는 광기에 사로잡혔었다. 즉 마치 비극 소설속 주인공 처럼 거울 속의 상과 거울을 바라보는 자신을 분리하려는 것과 같은 노력 끝에, 그는 점차 무의식의 상태로 나아가게 되고 자아를 분리하는 실험은 고통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여 완벽한 소외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의 이러한 모순된 행위는 분리된 자아를 찾아 떠도는 분열증적인 현대인의 특징을 상징화한 것으로 해석 되어진다. ● 이번 전시에서 그는 현대 문화의 메타 텍스트성에 대한 작업을 통해 그만의 분열된 자아를 봉합하고자 노력하는 고통의 비극성을 역설한다. 그는 아무도 아니며,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자신, 즉 십만 개의 거울에 비친 상을 자신과 분리해냄으로써 순수한 자신과 그를 둘러싼 사회를 발견하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아무도 아닌 존재'이자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인 익명으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관찰된다. 사실 그는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여러 개의 얼굴과 역할을 부여받아야 했으며, 그 결과 '도상-icon'의 감옥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하고 말았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그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상을 비웃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그 속으로 이주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예술가였던 장수종에서 저항운동의 선구자로, 그리고 문화 기획자에서 다시 저항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자신과 그런 의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세계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아나키스트로 대변되는 그는 그를 지시하나 결코 그가 아닌 다른 지시를 표현함으로써, 그 다양함 속에 깃들어 있는 장수종적인 어떤 것을 종합적으로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나는 타인이다'를 선언하고, 작품을 통해 타인조차 아닌, 그래서 아무도 아니면서 모두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속한 뒤틀린 사회를 반영한다. 따라서 그는 정해진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는 표현적 구조를 파괴함으로써 "작품을 통해 한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의 상투성"을 폭로한다. 이번 전시에서 제시되는 그의 작품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전기가 되었던 몇 개의 장면과 일화를 서로 다른 문맥에서 제시하며 그가 속한 사회의 다면성과, 삶의 질곡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른 유동성을 표현한다. 따라서 이 전시는 한국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짐과 동시에, 어떤 시도로도 한 사회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들 모두에게 일깨워준다. ■ META SPACE MEDIA LAB

Vol.20120824g | 장수종展 / JANGSOOJONG / 蔣樹宗 / media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