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810_금요일_05:00pm
기획 / 가나아트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빛으로 그린 새벽 ● 빛을 그리는 화가 김성호. 이런저런 새벽을 빛으로 빚어낸다.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깊은 밤을 지나 새벽으로 향하는 짙은 어둠 사이에서 그의 빛은 빛을 발한다. 여명과 함께 사라지듯 강하게 꿈틀거리는 새벽은 그의 빛을 통해 새로운 표정으로 살아난다. 그에게 있어 빛을 그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빛을 그리거나 빛이 있는 풍경을 담아내는 단순행위가 아니다. 세상 속 인간 존재로서의 나약함과 가능성, 위대함을 인정하고 치유하며 어루만지는 자기시선을 따라잡는 행위다. 따라서 그의 풍경은 일상의 가쁜 호흡과 함께 자신을 걷잡는 현실풍경이자 희망풍경으로 이해된다. ● 김성호의 새벽은 각양각색의 빛을 얹어 놓고 그 위에 물감을 나이프와 붓질로 더해가며 제법 칼칼하게 시작된다. 그가 청년시절부터 줄곧 관심을 기울이고 담아온 자연풍경과 궤를 같이 하는 역동적 작업충동이다. 도시와 아스팔트, 새벽녘 항구의 온기를 열적외선 렌즈로 포착하듯 붓으로, 나이프로 지지체 위에 부지런히 담아 올려놓는다. 견고하게, 때론 툭툭 부드럽게 더한다. 셀 수 없이 겹쳐지고 교차하고 부딪히며 빛으로서 존재를 발하기 시작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숨 가쁜 호흡이 화면 여기저기 진동하며 충돌한다. 뜨거운 장면이다. 이내 작가의 마른 호흡과 새벽도시에 대한 오랜 묵고(黙考)의 감정이 씨줄과 날줄로 자리 잡는다. 차갑도록 탄력 있는 나이프와 유연한 붓으로 뜨겁고 단단하게 포치시킨다. 거대 도시기운을 찢어내듯 파헤치며 깊은 침묵 가운데 새벽기운을 길어낸다. 반복하듯 다시 켜켜이 쌓아 올린다. 김성호의 새벽은 도시의 버거운 질량감, 거대한 존재감, 현존적 실재감을 특유의 나이프 스트로크(knife stroke)로 직조하듯 탄탄하게 쌓아 올린 김성호식 새벽준(峻)이 빛나는 심리풍경이다.
주지하다시피 새벽은 그리 길지 않다. 보란 듯 존재를 자랑하던 어둠과 거리의 이런저런 빛은 순식간에 밝음 속으로 사라진다. 김성호는 찰나와도 같은 새벽을 고스란히 따라잡는다. 따라서 화면 속 그의 새벽은 정지된 새벽이 아니라, 흐르는 새벽이다. 그가 상당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많은 새벽장면을 지켜보고 받아들인, 가슴 깊이 여울진 새벽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엄연한 어둠 사이로 존재를 증명하듯 요동치는, 밝아오는 희망, 극복으로서의 움직이는 새벽이다. 어둠과 밝음의 이리저리 섞임을 통해 김성호는 둘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강조하기보다는 서로의 심리적 경계를 인정하고 용인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늦은 귀가길, 김성호는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새벽을 호흡한다. 때론 차를 달려 바다로 산으로 나선다. 바쁜 새벽을 만난다. 바라보거나 올려보거나 내려다본다. 새벽의 빠르고 다양한 표정 변화를 이리저리 지켜본다. 새벽을 깨우는 이런저런 기운들과 이야기를 오랜 시간 주고받는다. 저간의 사정을 나눈다. 새벽이 그에게는 마음의 본향, 친구인 이유다. ● 이렇듯 김성호는 분명하고 과도한 해석과 치밀한 묘사로 새벽에 다가가지 않는다. 깊숙하게 자세히 개입하지 않고 저만치 거리를 두고 이야기 나누며 지켜본다. 관조의 새벽이다. 그가 주로 담아내는 도시의 새벽풍경이 깊게 드리운 무거운 침묵 가운데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잠들거나 깨어나는 거대한 기운과 그 과정, 흐름을 포착했다면, 새벽바다라든가 항구, 비온날 거리풍경 등은 사소하고 분주한 일상의 시작을 밝고 경쾌하게 조율한 것이다. 새벽의 도시호흡을 주로 검은색에 가까운 프러시안 블루로 주조하고 명멸하는 다양한 온기와 생명력을 끄집어내듯 발화시킨다면, 새벽바다는 형형색색의 따스한 색으로 물 위의 찰랑거림이라든가 가벼운 설렘과 긴장의 파문을 담아낸다. 전자가 주로 대형의 캔버스 위에 다분히 서사적인 정서로 출몰한다면, 후자는 비교적 작은 화면에 서정적인 느낌으로 끈끈한 울림을 전달한다.
김성호에게 새벽은 생명이요, 삶의 충만한 기운 그 자체다. 작가의 몸과 맘에 다시 힘을 주는 거대한 경외감에 다름 아니다. 그가 오래토록 희구했던 또 다른 세상이요, 자연인 것이다. 나이프를 빠르게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그의 화면은 물리적 층위가 얇아 보일 수 있지만, 그의 농밀(濃密)한 새벽은 심리적으로 제법 두터운 두께를 보인다. 그것은 화면 속 켜켜이 녹아든 작가의 내밀한 감성이 세상의 모든 새벽처럼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그러나 각각 내밀한 호흡으로 자리 잡은, 김성호가 마음으로 다가가 하나하나 더해놓은 사랑의 켜다. 그의 새벽은 일견 마른 풍경, 건조한 표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푸석푸석하지 않다. 때론 촉촉한 기운으로 밀고 올라온다. 대상을 둘러싼 시공의 습한 기운을 단순 반영한 결과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설레는 심적 기운과 함께 호흡한 따스한 심상이기 때문이다. ● 이렇듯 김성호의 새벽은 세상의 모든 오욕칠정을 함축하고 포용하며 일체의 과도한 욕망기제를 달래듯 어루만진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건조하고 촉촉한 화면 질감과 빠른 나이프 스트로크는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인다. 거대 도시구조 속에 잠복되어 있는 욕망구조, 새벽에 시작되고 끝나는 익숙한 삶의 풍경과 내면 질감을 조심스레 병치시키면서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더한 것이 아니라 배어 나온 것이다. 그의 새벽은 선긋기를 하듯 선과 점을 더하고 면을 만드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행위로 시작해서 구상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과정을 거치면서 밝아온다. 김성호의 새벽빛은 작은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넨다. 그의 새벽세상에서 명멸하는 빛은 물질이 아니다. 이른바 비물질로서 새벽의 기운을 강조하는 희망모티프로 작용한다. 때론 역동적인 느낌으로, 때론 휴식의 의미로 다가온다. 삶에 지쳤을 때, 인생이 먹먹할 때 마음으로 다가간 이런저런 새벽은 김성호에게 삶의 희망풍경이었다.
김성호가 무엇을 그리던 그곳에는 항상 빛이 있다. 따라서 그의 화면은 밝고도 어둡다. 빛의 개입에 의한 감각적인 인상 때문일 것이다. 김성호의 새벽은 분명한 삶의 풍경이자 희망풍경,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는 가식 없는 진솔한 풍경이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이른바 '생얼'이다. 김성호가 새벽을 그려 보인다면, 감상자는 각자의 새벽 이후를 마음속에 한가득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새벽을 지키는 이유는 새벽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 잡으면 미동도 하지 않고 눈앞의 새벽을 응시한다. 누군가에겐 하루가 마무리되는, 어떤 이에게는 힘찬 시작일 수 있는 이런저런 풍경,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다시 달아오르는 현실풍경 너머로 들리는 깊은 존재의 아우성을 만난다. 도시와 농촌, 산과 바다, 시공을 동시에 오가며 그 속에서 퍼 올린다. 끄집어낸다. 뜨겁게 조우한다.
빛을 그리는 화가 김성호. 그의 회화를 관통하는 모티프는 무엇보다 빛이다. 그것이 자연이 선사하는 빛이든, 인공의 빛이든 그의 그림에는 빛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어둠을 밝히거나 어둠 속에 빛나기도 하고 바다나 강의 수면이나 비 내린 도로 위에서 반짝 거리기도 한다. 새벽녘 도매시장, 항구, 강변, 바다, 동네에서 경험하고 만나는 익숙한 풍광, 귀갓길에서 만난 사소한 거리풍경 곳곳에 부드러운 사물인상으로 배어 있다. 깊숙이 잠복되어 있다. 습한 새벽녘 기운을 날카롭게 배어내어 사물존재의 살아 있음을 강조한다. 일상에서 간과하고 있는 새벽녘에 묻혀 있는 그리움, 희로애락의 기운, 미래의 희망들을 길어 올린다. 김성호의 희망충동은 주로 빛의 존재를 반사하듯 받아주는 금물결이라든가, 바닷가 수면 위 어둠과 교차하며 함께 등장한다. 새벽과 조응하는 그의 빛은 건조한 하루를 채우려는 듯 촉촉하게 온몸으로 그 무엇을 훑으며 올라온다. 비집고 나온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특유의 표정과 호흡은 화면 구석구석 탄탄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자리 잡아 나간다.
김성호의 새벽은 이른 아침에 눈을 들어 만나는 새벽이 아니다. 깊은 밤으로부터 함께 호흡을 나눈 새벽이다. 새벽은 자신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표정과 존재감으로 화답한다. 평소에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존재들, 미물(美物)들이 빛을 발한다. 명멸하듯 자잘한 움직임, 숨 가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꼼지락거림을 한 자리에 오롯이 모았다. 오늘도 새벽으로부터 배운다. 자신을 걷잡는다. 어느덧 김성호 자신도 새벽이다. 화면도 새벽이다. 촉촉하게 빛을 발한다. 이내 곧 그의 새벽빛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도 찬연히 빛날 것이다. 김성호의 새벽풍경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 박천남
새벽을 여는 빛의 화가, 도시를 드러내다 ● 가나아트는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에 있는 아스라한 빛을 통해 보이는 일상적인 풍경을 그리는 김성호 작가(b. 1962)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새벽의 표정을 풍부한 빛을 통해 빚어내는 그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도시가 가진 다양한 면모를 그려낸다. 도시의 중량감, 거대한 존재감, 실재감을 견고하면서도 가볍게 터치해 낸 그의 풍경은 특유의 나이프 스트로크(knife stroke)로 살아나게 된다. 작가는 그 동안 침묵에 잠긴 도시가 깨어나는 과정 속에서 역동하는 거대한 기운과 그 과정, 흐름에 주목하였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새벽바다, 항구, 비 온 날의 거리 풍경 등이 간직한 분주한 일상의 경쾌함을 풀어내고자 하였다. 그는 찰나의 순간이 내보이는 인상을 빛과 어둠의 조화를 통해 풍경으로 완성하고 그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푸른 빛의 아날로그적 정서 ● 젊은 작가들이 주로 시골의 자연풍경 보다는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도시 곳곳의 풍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대미술의 경향 속에서, 김성호 작가는 자연과 인공, 시골과 도시의 이분법적인 경계에서 인공, 도시의 풍경을 소재로 취한 가장 선두 세대가 아닐까 한다. 특히 그가 도시의 풍경을 주로 그린다고 하지만, 때때로 한적한 항구의 포구에서 바라보는 고기잡이 배의 불빛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도시 풍경으로 넘어오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이 도시든 아니든 작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위 자연주의 화풍의 구상 화가들에게도,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젊은 작가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바로 익숙한 풍경을 통한 안정감, 따뜻함, 편안함의 감정의 발현인데, 그 역시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이 중요한 감정 상태이다. 또한 작품 전반에 흐르는 색조는 어두웠던 도시의 밤이 간직했던 정적이 깨지고 다가오는 새벽녘의 푸르스름하고 어스름한 기운을 느끼게 하면서 그의 감성을 드러내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빛과 어둠의 공존, 빛을 내뿜다 ● 김성호 작가에게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의 발현을 위한 "빛"의 운용은 작업의 핵심이다. 그의 배경은 주로 "낮과 밤이 만나는 경계선상의 시간대"인 새벽이나 밤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특정한 시간대는 주변의 어둠과 극명하게 대립되는 한정된 빛을 통해 형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형상은 명확하지 않고 실루엣으로 인식된다. 불분명한 형상의 표현을 통해 작가는 구상과 비구상이라는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작가에게 "빛"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도구가 되며, 주변의 풍경을 감각적인 인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매체가 된다. 또한 형상의 인식을 통해 빛이라는 비물질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김성호의 작품 안에는 물질과 비물질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 김성호
Vol.20120811c | 김성호展 / KIMSEONGHO / 金成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