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803_금요일_05:00pm
제7회 초헌상 수상작가 박계현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포항시립미술관 POHANG MUSEUM OF STEEL ART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 351번지(환호해맞이공원 내) 3전시실 Tel. +82.54.250.6000 www.poma.kr
이번에 포항시립미술관은 제7회 초헌상 수상작가 박계현 초대전을 개최한다. 박계현은 그동안 탄탄한 그림 솜씨를 기반으로 꾸준히 화업(畵業)을 이어가고 있는 포항의 중견 작가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고향이기도 한 포항의 풍경과 정취를 담은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면에서 포항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인 초헌 장두건 선생의 화풍과 맥을 같이 하는데, 초헌 선생의 작품에도 유난히 어린 시절 고향 초곡에 살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향은 작가들에게 있어 남다른 창작의 원천일 수 있는 법, 고향 산하의 아름다움이나 지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토양은 지역이 가진 풍부한 정서적 감수성을 담아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돌이키게 하는 자양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절제미와 균형미를 통한 사실적인 서양화풍의 초헌 선생의 작품의 바탕에 한국의 토속적이고 자연적인 풍토에서 빚어낸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듯이, 박계현 작가의 경우도 일견, 단아하고 서정적인 이미지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는 선적이고, 문인화적인 동양의 사유와 감수성이 자리하고 그 기저에 고향 포항의 아련한 기억들이 가로놓여 있다. 지역의 장소와 정서, 아름다움을 꾸준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기에, 초헌 선생의 화풍을 시대를 달리해서 잇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붓을 잡은 이래 계속 그림을 이어가던 작가는 고교시절, '예술의 정신은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 생성한다고 믿는다"(작가의 글)는 깨달음을 통해 회화의 진실에 대해 눈을 뜬다. 그림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세상을 정확히 담아내려 하는 사실주의적인 화풍의 미덕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개의 작가의 경우가 그런 것처럼 박계현 작가의 경우도 세상의 참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 속에서 그림 인생을 시작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야했던 탄탄한 소묘력, 표현력 등의 재현 능력은 이후의 박계현 화풍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본격적인 창작활동이 시작됐던 80년대는 작가에게도 쉽게 외면할 수 없었던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었고, 작가 역시 당대의 현실 인식이라는 시대의 두께를 화폭에 담아내게 된다. 포항의 송도, 형산강, 어시장과 폐선수리소 등의 힘겨운 삶이겠지만 우리 내 평범한 일상이기도 한 풍경을 마치 거친 숨결을 고르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온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작가로서의 자유로운 창작의 열망 속에서 적지 않은 고민을 했던 것처럼 보인다. 90년, 91년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이런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사실주의 화풍과는 사뭇 다른 작업들로 여러 눈에 띄기 때문이다. 화사한 느낌의 정물들이나 강렬한 색감으로 드러낸 여인의 이미지 등 표현주의적이고 상징주의적인 화풍으로의 탐색이 그런 징조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재현의 논리가 아닌, 현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잠재력, 가능성과의 교감을 통해, 작가적인 의식과 감각 속에서 변환하고 창안하는 그런 재현에 대한 고민들을 이어간다. 91년 첫 개인전은 이러한 작가적인 고민을 짐작케 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방향 모색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그간 이어온 진정성 있는 현실을 화폭에 담으려는 노력들과 함께, 꽃이나 여인을 다룬 표현주의적인 화풍이나 생략된 풍경, 마티에르의 효과 등의 화폭의 질료적인 효과를 동시에 시험하면서 당시의 작가로서의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는다. 이어 바로 이듬해에 이어진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더 절제되고 단순화된 대상들, 부드럽고 온화한 색감, 두텁고 안정감 있는 마티에르 등 시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을 담아낸다. 절제되고 생략된 화면 속에서는 그 만큼의 작가적인 고민들이 담겨 있었을 터,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말한 브레히트와는 달리 그 시절 작가 가슴의 한 편에는 절절하기 그지없는 깊은 슬픔과도 같은 서정성들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적인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진 않았겠지만, 그 고민조차 쌓이고 쌓여 단단해진 것이었을까, 전작들에 한결 자신감 있는 붓 터치에, 더욱 두터워진 마티에르, 화사하면서도 자유로운 색채구사가 안정적으로 보인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가 화폭에 힘들게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우리의 산하와 현실이 전하는 서정적인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향토색 화풍과도 다른데, 탄탄한 그림 솜씨를 바탕으로 동서양을 넘나들며 재료나 기법 면에서 다양하고 자유롭게 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양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양화의 수묵담채처럼 과감하게 생략하여 절제된 화면을 구성하는가 하면,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이지만 그 속에 치열한 현실을 응축해낸 시적 거리감을 보존하면서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정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감성에 대한 관심은 소재 면에서도 확인된다. 기마상, 석가여래좌상, 목각기러기, 문살, 풍경, 등장, 부채 등의 우리식 오브제들이 소재나 배경 등으로 화폭에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 있는 화력(畵力)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풍경, 정물, 인물 등을 넘나들며 작업 세계를 펼친다. 동시에 작가는 선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보이는 세계 저 너머의 비가시적인 것들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품은 절제된 화면을 구사한다기보다 그 비움을 채움처럼 드러내는 것이고, 화면상의 구성으로 인해 생략하고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고 버리는 것조차 자유로운 심적 상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에서 전하는 굵고 힘찬 획의 자유로움이나,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문인화와도 같은 작가적인 사유와 시적인 담백함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너른 대자연 속의 청산과 작은 집들, 가느다란 나무들은 그렇기에 어떤 표현적인 구성 때문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가 현실 속에서 그러한 현실을 도약하려 하면서 꿈꾼 작가의 마음 상태와도 같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후 작가는 꾸준히 고즈넉하고 차분한 색감과 함께 하는 풍경을 그려간다. 자신이 성장한 포항의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한적한 바다 풍경에 고즈넉한 판자집과 나무들, 야트막한 동네의 야산들이 그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그림들이 그런 작업들이다. 유독 청색이 많았던 것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포항, 청림(靑林)의 산하 때문이었을까. 바다를 닮은 서늘한 푸른 색조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낸다. 하천의 물이 맑고 차다고 하여 붙여진 청림동은 지금은 포스코 관련 공장들이 많이 입주해 있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그 그리움 또한 더욱더 덧칠되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풍경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내되, 그저 생략만이 아닌 색에 색을 덧칠하면서 보이지 않은 심연의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청림풍경으로 정한 이유이다.
큰 폭은 아니라 해도 길고 느린 변화의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화풍을 만든 작가였지만 화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지금까지 줄곧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고향 포항의 풍경들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는 점일 것이다. 80년대의 거친 사실주의 화풍에서도 포항의 풍경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이후 90년대, 2000년대의 다양한 기법과 스타일의 변모 속에서도 고향의 풍경은 늘 그의 화폭의 근간을 이루는 대상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작가와 분리된) 대상이라 하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고향은 그의 그림 인생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작가에게 있어 고향은 단순한 기억과 추억을 넘어 작가의 의식과 감성의 원형처럼 자리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렇게 포항이 품고 있는 저 너른 바닷가의 한적한 풍경은 가시적인 풍경 너머 그가 도달하고 싶었던 비가시적인 세계의 어떤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한가롭고 여유 있는 풍경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세계의 평온한 상태에 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게 된다. 이번 전시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점에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작가의 감성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되면서 애틋한 그리움으로 거듭난 포항의 모습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 포항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느낌들과 진정성 있는 사유들을 공감케 하고 싶은 것이다. 청림의 풍경은 비단 작가만의 고향이 아니라, 그 푸르른 기억 속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계속토록 자리해온 고향의 또 다른 모습들이니 말이다. ■ 민병직
Vol.20120804e | 박계현展 / PARKKYEHYUN / 朴繼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