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돈展 / LEEHEEDON / 李喜敦 / painting   2012_0727 ▶ 2012_0803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27.5×4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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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아산병원 아산갤러리 서울 송파구 풍납2동 388-1번지 Tel. +82.2.3010.6492

이희돈, 한지로 영글어낸 순정적인 회화 ● 산자락에 위치한 이희돈의 작업실에 발을 들어놓는 순간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열정의 포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업실의 사면은 대형캔버스로 가득 메워져 있었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총망라한 작품들이 그가 얼마나 뜨거운 창작열(創作熱)에 파묻혀 살았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작업실안은 한마디로 작품의 수장고이자 그의 삶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인생의 축도(縮圖)같았다. ● 더욱이 그의 작품은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기는 단순해도 정작 하기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인내와 끈기가 값지게 보인다. 그의 화면에는 온통 질박한 물감 조각들이 안착되어 있다. 그물을 촘촘히 쳐놓은 것같기도 하고 모판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근래에 유행하는 달짝지근한 그림 또는 대중 친화적 그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같은 조형어휘가 반복되어 있고 그속에 어떤 분명한 형태나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아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감상자들에게는 다소 까다로운 그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60.6×73cm_2012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 60.6×72.7cm_2012

그에게 회화란 내적 실재를 발견하는 통로로 이해된다. 가령 화면에 타공을 하여 구멍을 뚫고 그 위에 평붓으로 묵묵히 평면의 정지작업을 해간다든지 하는 일련의 작업과정을 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업 자체의 수행성이 하나의 목적성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최근의 작품만이 아니라 2천년대 초반의 작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2천년대의 작업은 물감을 뒤에서 밀어 바깥으로 나와 마치 점자책을 보듯 묘한 느낌을 안겨주었는데 물감이 아니라 몸짓이 추진체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근작과 동일한 맥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 근래에는 형태의 반복에서 진일보하여 행위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섬유질이 펼쳐져 있거나 나무뿌리가 사방으로 뻗어있는 것같은 흔적을 볼 수 있다. 그 물감자국은 단번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무려 열다섯 차례나 스무 차례의 물감축적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 행위의 과정은 퇴적층같이 쌓인 색층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섬유질같은 표정이나 두꺼운 물감층이나 모두 행위의 축적을 경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은 물질감을 지워간다는 것이며 이로써 작품을 자연화, 즉 그것이 태어난 자연의 땅으로 다시 돌려보낸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53×73cm_2011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60.6×72.7cm_2012

한편 물감이 섬유질처럼 보이는 것은 물감에다 용해된 순지를 혼합하여 사용했기 때문인데 이에 의해 다양한 표정을 얻어낸다. 즉 특수제작된 물감을 평붓에 묻혀 붓을 천천히 끌면 굵은 선이 나오고 반면에 빨리 끌면 얇은 선이 나온다. 이때 물의 농도가 관건인데 물의 농도를 감소하면 실선을 얻을 수 있고, 묽게 하면 뭉개진 표정을 얻을 수 있다. 그림에 '떡진' 부분은 붓이 가로나 세로로 가다가 물감이 중간에 떨어진 것으로 우연마저도 하나의 작품구성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이와 같이 그의 작업은 절차의 시퀀스를 준수함으로써 획득된다. 그의 작업은 물감의 축적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마르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제작하는 시간 못지 않게 기다림의 시간도 길다. 충분한 기다림 끝에 새 물감층을 올리고 다시 충분한 기다림 끝에 새 물감층이 올라간다. 이것은 마치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의문을 일정한 시간을 갖고 사색의 되새김질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무엇인가를 더 빨리 얻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현대인의 조급한 태도와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는 무엇을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인생이 무엇이고, 어디다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나의 지향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삶이 성찰에서 비롯되듯이 그림은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여실이 보여주고 있다.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83×83cm_2012
이희돈_알파벳의 열 두 번쨰 이야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91×116.8cm_2011

우리 미술을 돌아보면, 일본을 통해 한국에 서양화가 들어온 지도 어언 1백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고유한 모델에 대해서도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간 불리한 환경과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역량있는 화가도 많이 배출되었고 값진 성과도 이룩하였다. 그중에서 딱 하나만을 손꼽는다면 단연'한지회화'를 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한지라는 독특한 소재에다 우리다운 아름다움을 접목시켜 한국미를 잘 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희돈의 작품도 이런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작가는 한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장인적 철저함으로 거뜬히 현대회화로 승화시켜냈다. 한지의 물성뿐만 아니라 그것에 녹아있는 한국인의 어질고 순정적인 성정까지를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미술에서 한지를 소지(素地)로 삼는 것은 종종 볼 수 있어도 그것의 속성을 증폭시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는 동시에 한국적인 미감까지 접목시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까마득히 잊혀진 일들이 그에게는 매번 새롭고 설래임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작업에 매진하는 모습은 깊고도 특별한 인상으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 서성록

Vol.20120727b | 이희돈展 / LEEHEEDON / 李喜敦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