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728_토요일_06:00pm
하대리 예술지구 입주작가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공장 GALLERY 工匠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하대3길 7-4 여름숲속미술관 내 Tel. +82.33.345.6330 club.cyworld.com/studioharim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아니다. ● 만물은 변화하고 운동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의 세계관을 철학의 근저로 삼은 헤겔(Hegel)은 세계를 동적인 체계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진리는 자기 자신(正) 안에 내재한 모순과 자기부정에 의해서 타자로 전환하였다가(反) 자기 자신이 타자를 부정하면서 합일을 이루어(合)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원환(圓環)적인 운동에 의해 추구된다고 보았다. 이로서 진리는 두 대립항의 합일을 통해 한 차원 '향상(Elevation)'된 존재가 되고 모든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 ● 재료를 작가의 구상 의도에 따라 선택된 것이라 할 때 재료는 작가의 의도에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재료의 고유한 특질은 작가의 선택과 동시에 이미 의도의 일부가 되어 보존된다. 대부분의 조형 재료들은 애초의 용도에서 빌려온 것들이기에 재료를 특징짓는 고유성의 일부 즉 재질과 반복되는 쓰임새로 인해 고정화된 이미지 등은 작가 의도에 조응하는 만큼 드러난다. 반면 기존 쓰임새가 명확한 재료일수록 조형 재료로서의 적합성 여부도 그만큼 불투명해지는데 이는 재료에 내재한 모순이 발현되면서 형성되는 긴장이기도 하고 재료의 자기부정을 초래한 작가가 개입해야 하는 지점(재료의 타자성)이 된다. ● '쇠구슬(metal balls)'은 흔히 기계장치에서 마찰력을 최소화시킬 목적으로 제조된다. 작고 단단한 금속재 구(球)도 최소한의 마찰력과 최대한의 동력 전달이라는 역할에 오로지 부합한 결과이다. 이 공업용 반제품을 조형 재료로 선택한다는 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하는 목적에 재료적 장점이 적합하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금속재질 구(들)의 배열(위치)이 관건이 되리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작가는 재료에 내재한 모순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지양선의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 완성된 작품에서 재료의 원래 모습과 쓸모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질감과 색조가 표현된다. 동일한 규격의 금속구는 세포처럼 연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고유한 광택과 재질은 이미 사라졌다. 이로서 공업용 반제품은 두 번의 부정을 거치면서 회귀가 아닌 그렇다고 자신을 전면 부정하지도 않은 채 새로운 고유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 또한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재료를 다루는 곳에 머물지 않고 구상화된 또 다른 대상을 통해 표현 혹은 회피되면서 더욱 더 선명해진다. 대상에 대한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구상화된 실체들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들로 채워졌다. 이는 마치 허락된 경계 안에서의 극단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존재의 형상화를 통해 주제가 드러날 빈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주제를 비우면서 주제를 드러내고자 한 시도는 전략적으로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주제의식과 표현방식에 공감하면서도 오히려 이 주제와 작업방식이 이후 작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비존재를 구상화한 시도가 옳다고 했을 때 이는 오로지 주제의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방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추상을 통해 사유(思惟)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고자 할 경우에도 지금의 주제의식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팽팽한 긴장이 끊어지게 되는 순간 실험과 주제와의 단절은 불가피해진다. 재료와 작업방식에 대한 천착과 그 결과물로서 이번 작품들이 있고 그 자체로 주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 천착의 과정이 더 이상 주제를 대체할 수 없을 때 재료나 작업방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작품은 주제의식 없는 재료 덩어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 물론 이 곤란함조차 작가가 선택한 작업방식의 일부분이기에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이 비단 작품 속 주제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최석진
사람은 일상을 견디며 삶을 유지하지 위해 각자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고는 한다. 가족, 종교, 사랑, 욕망, 신념 등등. 그리고 나는 그 장치로서 '작업'을 선택한다. 작업의 목적은 자신의 안정이고 다른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다. ● 그런데 형태를 가진 부산물이 남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부산물이라기엔 작품에 가깝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가볍다. 작업으로서의 고민은 오직 기법의 실험과 완성이었으며 그 시작은 그냥 흙장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 시간동안 편안했고 놀랍게도 가끔은 행복했다. 작업은 일상이 되었으며 점층적인 기법의 완숙과 더불어 지금은 형태와 그 근거를 생각하게 되고 멈추어 숨을 고르는 여유도 부린다. ● 그간의 부산물 같은 작품, 작품 같은 부산물을 둘러보게 되었고 문득 주변인들에게 보여주고 묻고 싶어졌다. 그것에서 내가 보이는지... ■ 유승구
Vol.20120726b | 유승구展 / RYUSEUNGGU / 柳承久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