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7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club.cyworld.com/gallery175
위험한 축제 ● 윤향로는 2008년 교과서나 도안집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선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으로 객관성을 담보하고, 성적인 자세와 상황을 연출해 폭력성을 가시화하는 작업으로 주목 받았다. 이후 2010년부터 2년에 걸쳐 작가는 어딘가에서 읽은 것만 같은 이야기를 토대로 페인팅과 설치로 이루어진 「Monster Series」를 선보였다. 사라진 가족을 기다리던 여자가 점차 가족들이 피해서 달아난 괴물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두려워하던 그 괴물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남도 아닌 내가 나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을 때, 마지막 도피처는 사라지고 일상은 위험천만한 카니발이 된다. 몬스터 시리즈는 생일 파티, 가드닝, 아이들의 놀이와 같이 일상적인 축제의 장면을 보여 주지만 모든 장면들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느 구석에서는 불길이 번지고, 또 어느 구석에서는 연기가 나며, 아이들은 얼굴을 가면 아래 숨기고 서로를 대면하거나, 벌거벗겨진 아이를 둘러싸고 원을 그리며 춤추고 있다. 같은 시기에 벽에 직접 드로잉을 하고, 그 아래 흰색 에나멜로 잔인한 '마더 구스'의 노래 가사나 황병승의 시, 소설 등에서 짜깁기한 텍스트를 써넣는 식으로 드로잉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모든 작업에 폭력이라는 주제가 흐르고 공포의 감각이 스며들어 있으나, 윤향로의 톤은 한결같이 '무심'하고 태도는 분열적이다. 어디서 본 듯한 도안 이미지의 차용, 불필요한 감정을 배제한 단순한 선 드로잉, 색의 사용 자제가 무심함을 배가시킨다. 작가는 꾸준히 어떤 감각을 탈각하는 방법으로 일상의 수면 아래 서식하는 폭력의 가능성을 예민하게 비추고, 선악을 가르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폭력 자체의 조형성에 집중하는 기형적인 감각을 키워왔다.
텅 빈 싸움터 ● 본 전시 『숏 컷』은 전시제목과 크게 세 개의 덩어리-네온사인과 영상, 두 벽면의 드로잉과 텍스트 작업, 애매한 구조물-로 나눌 수 있는 작업들로 이뤄진 가상의 무대다. 전시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 컷』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의 일상이 옴니버스 식으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지만, 이들의 일상은 겉으로 보이는 활기찬 모습과는 다르게 단번에 무너질 수 있는 붕괴의 요소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갑작스런 살인이나 일상적인 불륜, 난데없는 사고와 의심, 질투, 불안의 연속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짧은 지진으로 정리되고, 등장인물들은 다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모든 이들이 붕괴 직전에 도달해 가까스로 살고 있고, 비극은 어디서나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요컨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번쯤 폭발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여기에서 일상에 도사린 다양한 폭발의 지점들을 보고, 그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의 조형성에 관심을 갖는다.
작가는 일종의 분열증적 태도로 조합한 숏-컷들로 전시장을 채운다. 먼저, 한쪽 벽면에 설치한 네온사인 「Intermission」은 연극이나 영화의 중간 휴식을 뜻한다. 작가가 인도에서 체류하면서 영화를 감상해 보니, 대부분의 영화가 3시간이 넘는 런타임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영화의 흐름과 상관없이 화면을 중지시키고 'intermission'이라는 단어를 스크린에 띄우더란다. 갑작스러운 개입과 그로 인한 끊김의 경험은 본 전시에서 여러 영화의 '짤방'을 버무려 만든 영상작업의 무수한 끊김을 통해 전달된다. 이른바 숏-컷들의 순환이다.
분열증은 두 벽면의 작업을 통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모든 벽을 둘러쌀 수 있는 폭의 커튼을 한쪽 벽면에 몰아서 드리우는 제스처로 전시장을 연극 무대 삼고, 한 쪽 벽면에 만화책에서 가져온 무수한 폭발 효과를 병합해 마치 무대배경인 양 벽화를 그렸다. 폭발하는 효과들의 변주를 배경으로 나머지 한 벽면에는 희곡 『모자마술』에서 관객의 상태를 지시하는 지시문을 발췌해 빼곡히 적어 놓았다. 각각 인물과 대사와 같은 알맹이가 아닌, 배경과 지시문이라는 변죽을 입은 두 벽면은 하나의 텅 빈 무대 공간을 선사한다. 이 연극 같은 상황에서 관객은 가상의 배우가 된다. 한 쪽에서 폭발 효과들을, 한 쪽에서 '박수갈채', '환호', '야유', '흐느낌', '비명'이라는 단어들의 웅성거림을 보고 있자면 머릿속에 어떤 파열음이 울린다. 이 파열음들의 공명 어디선가 전시 공간을 규정하는 벽이 깨진다. 애매하게 남은 두 개의 구조물, 벽화도 독립된 페인팅도 아닌 채 비스듬히 기대거나 돌출해 있는 기형적인 구조물이 말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 모르는 새 우리는 수많은 인물들을 거쳐 왔다. 『숏 컷』과 『모자마술』에 등장했을 인물들과, 작가가 소설을 읽으며 마주쳤을 인물들, 그리고 여러 영화에서 긁어 모은 다중의 인물들까지. 인물들은 등장이라기 보다 출몰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나고, 사라지고, 끊임없이 순환한다. 그리고 이곳 전시장에 남겨진 장소는 모두가 사라지고 난 후에 남은 텅 빈 공간, 어쩌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득한 무색무취의 싸움터다. 인물도 서사도 지워진 이 곳에서는 잠재된 이야기들이 발견되지도, 접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주체들은 증발했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었든, 죽였든, 혹은 사랑했든 이제 와 대수로울 건 없다. 앞으로도 전과 다를 바 없는 '숏-컷'들의 돌발 연속일 것이므로. ■ 우아름
Vol.20120725h | 윤향로展 / YOONHYANGRO / 尹香老 / installation.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