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부산미술협회
공보라_blog.naver.com/bora2023 김영민_blog.naver.com/kym2f1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토요일 휴관
부평아트스페이스 BUPYEONG ARTSPACE 부산시 중구 부평동 2가 57-2번지 Tel. +82.51.248.2011 www.bfaa.or.kr
고독에 잠겨 행복을 꿈꾸다 ●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라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왠지 모를 '고독감'이 담겨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도시 사회에서 소외감, 군중 속의 고독이란 도시문화의 어쩔 수 없는 단면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소통의 부족과 끝없는 고독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요소가 되었다고 본다. '고독감'을 느낄 때 인간은 과거의 좋았던 때를 떠올린다고 한다. 나에겐 그것이 동심의 세계이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나온 시간, 어린 시절이 있다. 그것은 성인에게 있어서 아련한 추억이며, 때 묻지 않았고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지나온 과거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무미건조한 삶과 가벼운 인간관계, 소외감과 같은 감정을 겪게 될 때 과거의 좋았던 추억, 즉 동심의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 내면에 누구나 순수한 감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의 일생은 의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동시에 업무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라는 곳은 하루의 반을 보내는 장소이며, 그 곳에선 누구나 자신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주어졌고, 수많은 상상과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꿈을 품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사회라는 곳은 '나'의 자리를 마련하고 지키기 위해 경쟁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열등감은 점차 늘어만 가고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은 사라져 가며, 고독이란 감정이 마음속에 생겨나고 있다. 사회라는 곳의 자리는 학창시절의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공간과는 달리 경쟁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곳이다. 누구도 '나'라는 자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 불안과 초조함이 자리 잡고 친구라는 존재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고독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어릴 적 그 때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해가 눈이고 배가 시계이던 그때는 마음 깊은 곳에 고독이란 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성인이 된 지금 의자에 않아 고독을 느낄 때, 학교라는 낯선 곳에서 수많은 상상과 꿈을 그리던 모습을 그려본다. '낡은 학교 의자'는 순수 했던 시절을 의미하며, 의자에 나타나는 '바다 이미지'는 떠나고 싶은 동심의 세계를 말한다. 바다라는 곳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며, 신비와 풍요로움을 지닌 생명의 근원으로 인간에게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인 동시에 나에겐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지칭한다. ■ 김영민
작업이란 나와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으며, 오로지 솔직해야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만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내가 살던 집은 철거됐다. 어린 나는 그것에 대한 미련이나 돌이킬 마음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망각을 뚫고 생생히 살아남아있다. 기억은 살아있지만 집은 사라졌다. 나는 내 기억을 빌려 사라진 집을 설계한다. 그러나 내가 살던 집의 형태도 아닌 이 결과물들은 철거되는 집의 이미지에 들어맞아있다. 그것에는 그 시절 느끼지 못했던, 돌아갈 수 없는 집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어린 아이는 '잃는다' 는 것을 모른다. 그것은 그 곳에 가서 똑같은 형태의 집을 짓고 똑같은 벽지를 바르고 똑같은 가구를 놓아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돼버린 아픔이다. 나는 그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집이란 단순히 숙식을 해결하거나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다. 내 집에는 사랑하는 내 가족이 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핏줄과의 인연이 남겨져 있다. 그 장소는 이미 '공간'의 개념을 초월해 '생명'의 개념을 갖는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집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때로는 사람이 머묾으로써 집은 자연이 된다." 나와 가족들의 온기로 집은 푸르른 숲과도 같았다. 그것이 생명인 것이다. 나와 가족들이 머묾으로써 집은 생명을 가졌었고, 지금은 흙이 되어 그 위에 풀이 자라남으로써 또 다른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태어나고 죽는 곳, 커다란 기쁨과 슬픔이 머무는 '집'에는 다양한 기억의 조각들이 공존한다. 그것은 곧 희노애락(喜怒哀樂) 그 자체이며, 그러한 감정들은 내 모든 삶의 주체가 된다.
내가 살던 집은 현재 땅(地)이 되었다. 명을 다한 인간이 땅 속에 묻히듯, 내 집은 땅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위로 자동차가 다니며 때로는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고, 길 위를 걷는 생명들 에게는 그저 디딜 수 있는, 의식적으로 생각할 이유도 없는 하나의 풍경 속 일부에 불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공간이 '집'으로 국한될 수는 없다. 나는 그러한 공간, 우리가 무심결에 놓치고 지나쳐 버리는 공간에 대해 의미를 찾으려 한다. 명확히 이야기 하자면, "의미 없는 공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각자의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내가 해온 작업은 그 공간들의 의미를 찾아내 공간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간의 크기에 관계없이 무한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의 이상에 대해 표현한 것이다. 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이질성을 융해시키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 모든 작품의 이미지는 자연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들은 돌아갈 수 없는 집의 그리움과, 땅이 되어버린 집을 재구성 하는 것이다. 가라앉은 집 위에 서서 내가 느꼈던 공허함과, 자연이 되어버린 집을 바라보며 느낀 애환을 나타내고 싶었다. 이 작업은 현실 그대로가 아닌 재구성된 형태를 표현한다. 이것은 현재 상태 그대로의 재현을 탈피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을 구체적인 형태로 상징화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일정한 형태로 나타나 보이게 함으로써 보는 이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가질 수 있고, 지나쳐버린 공간의 의미를 돌이킬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제작하고자 한다.
집, 그리고 안과 밖을 나누는 창문. ●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이에게 안식처로 자리잡은 '집'을 오로지 창문으로만 제작하여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먼 작가의 길, 높은 작업의 문턱 앞에서 스스로 곱씹는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거짓으로 허구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다. 안락하고 비밀스러운 집 안의 내 모습으로 작업하자. 그 결의를 담고 있다. ■ 공보라
Vol.20120715f | 공보라_김영민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