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2_0712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신하정_임진세_정철규_최은경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신한갤러리 역삼 SHINHAN GALLERY YEOKSAM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1번지 신한은행 강남별관 B1 신한아트홀 내 Tel. +82.2.2151.7684 www.shinhangallery.co.kr
신하정, 임진세, 정철규, 최은경 네 명의 작가는 별이 가득히 빛나는 들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로『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展을 기획했다. 이들은 회화라는 동일 장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표현을 보여주고자 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모호한 낯선 풍경을 통해 우리의 앞날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심한 풍경은 평범한 현실을 담은 기록이다. 네 작가는 순수한 회화 작품을 통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풍경은 언캐니(uncanny)한데 이러한 이질적인 풍경은 세상과의 단절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의 그림 전체에 슬픔과 공허함이 배어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회화'와 '멜랑콜리'는 쓸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된다. ●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Julia Kristeva)『검은 태양-우울증과 멜랑콜리(Soleil noir-Dépression et mélancolie)』에서 우울한 정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멜랑콜리(melancholy)는 우울(depression)의 학술적 용어로 우울의 근본적인 심리 구조는 대상과의 분리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관점에서 멜랑콜리는 단순히 슬프고 우울한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관련되는 주체와 상징 사이의 문제를 말한다. 이들은 구도, 형태, 색채 등 여러 조형요소들을 활용하여 멜랑콜리한 풍경을 제시했다. 멜랑콜리의 심적 구조는 상실과 직결되지만 이들 작품에서 보여지는 슬픔은 반드시 특정 대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상실이라기 보다 주체로서 갖는 근본적인 상실에 더 가깝다.
신하정은 목탄을 사용했던 과거 드로잉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독특한 붓 터치를 보여주었다. 갈필로 여러 번 그으며 칠하는 방식으로 그려진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을 준다. 실제로 작가는 캔버스 위에 먹을 사용하여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는 어둡고 깊이 있는 검은 풍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려지는 대상들은 구상적이지만 불분명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교각과 거칠고 앙상한 나무가 무성한 덤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해 보인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속에 방치된 외로운 영혼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전체적으로 탁하고 가라앉은 색채를 사용했던 기존 작업과 달리 밝은 색채로 맑은 느낌을 최대한 살린 최근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설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임진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소외된 풍경에 주목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빠르게 흘러가는 붓의 터치는 거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회색 빛으로 지워진 풍경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이고 서정적이다. 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 휘경동 밤 산책, 벚꽃 피는 계절, 목련가로등, 북악스카이웨이 등 누구에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 풍경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밝고 화사한 봄 꽃은 온데간데 없고, 으슥하고 어두운 골목만이 등장하며, 심지어 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들은 분명 함께 있지만 고독하고 외롭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은 인과와 우연이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금세 변해버릴 풍경이라 헐겁게 표현한 것이라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짙은 여운을 남기며 무덤덤하게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게 한다.
정철규의 작업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그의 작업에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 뒹굴고 있다. 특히 밝은 색채와 대조적으로 여러 번 덧칠해 탁해진 화폭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느낌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정철규의 작업은 2011년 겪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달라졌다. 여전히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지만 색감이나 붓 터치의 방식에서 이전보다 무거워졌고 부재와 결핍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더욱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얀 고래로, 고래를 덮은 흰 천은 거대한 산으로, 그리고 사라지려는 연기는 천을 실로 묶어 표현했다. 그는 종종 흰 천으로 사물을 덮어 그리곤 했다. 작가의 표현대로 여전히 그는 사라진 것을, 지나가 버린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외롭고 격한 슬픔을 표현하고자 했다.
최은경은 아버지의 고향을 그린다. 사적이고 은밀한 일상과 장소를 통해 인생의 여정을 보여준다. 작가에 의하면 그 장소는 폐허의 공간으로 망쳐지고, 어그러진, 내몰린 그 끝자락이다. 회색 빛이 감도는 어둡고 탁한 푸른색 배경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장소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청색은 비관적이고 공포스러운 우울함을 상징한다. 또한 눈, 코, 입이 지워진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무관심을 넘어 무감각한, 극도로 억제된 표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가는 관계의 무관심을 부각시킨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혹은 익명성에 대한 접근으로 표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작가는 지형도가 바뀌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유형과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되기 때문에 그 삶의 유형과 태도가 바뀌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없음이 아니라 그러한 실패의 단초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지금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전망해 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윗세대인 아버지의 삶의 과정을 통해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성찰하기 위한 작업이라 말한다.
현대 회화의 쇠퇴와 복귀에 관해서는 2005년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열린『회화의 승리전(Triumph of Painting)』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논의된바 있다. 별들의 캠프를 열고자 했던 네 명의 작가는 가장 오래된 예술매체인 회화를 통해 시대적 맥락에 뒤쳐지지 않도록 나름의 독창성을 유지하며 일상의 리얼리티를 풀어냈다. 이들에게 리얼리즘은 사조적인 의미에서의 리얼리즘과는 분명 다르다. 전형적인 양식이나 방법, 또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어 문자 그대로 무엇이 리얼리티인가 또는 리얼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리얼리즘은 결코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주체의 경험과 기억에 연관되며 특정한 객관성 보다는 모호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展은 기억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네 작가의 멜랑콜리한 현재를 들여다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진정한 삶의 사색을 느낄 수 있는, 회화 본질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 안선영
Vol.20120712e | 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