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성인 1,000원 / 학생(초,중,고)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6번지(성북로 134) Tel. +82.2.6925.5011 sma.gongdan.go.kr
증식(增殖)된 여성적 판타지(fantasy)의 세계 ● 해양 생물 같기도 하고 고산 지대의 식물 같기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미지의 공간을 부유한다. 사랑스러운 작은 동물처럼 보여 보듬어주기 위해 다가가자 그것은 위협적인 괴물로 돌변한다. 날카로운 촉수에 찔릴 것 같아 뒷걸음질 치니 괴물은 이내 부드럽고 따뜻한 실몽당이로 바뀐다. 매 순간 달리 보이는 모호한 형상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를 연상시킨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니 이번에는 구두를 신은 코끼리가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을 하며 하늘을 날고, 여름 휴가를 떠난 코끼리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또 다른 코끼리는 벽을 뚫고 탈출을 시도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 의인화된 코끼리, 이 모두는 환상 혹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낯선 판타지(fantasy)의 세계는 두 명의 작가, 백기은과 이정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것이며 이 세계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아바타(avatar)이다. ● 예술 작품은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개인적 현실과 시대적 현실, 성(性)적, 인종적, 계층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화신(花神)이자 예술가의 심리 상태, 철학적 태도, 미적 취향 등이 투영되는 분신(分身)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창조성과 개성에 대해 자문하고 그것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작가적 창조성을 파괴하고 작품을 통한 내적 세계의 발현을 거부하는 그 행위조차 특정 작가의 개성과 고유성이 되어 의미를 부여받을 만큼 작품과 작가의 결속은 절대적이다. 이런 이유로 예술적 창조 행위는 여성의 출산에, 작품은 그녀가 이 세상에 내어놓은 아이에 비유되곤 하는데 이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가진 자신의 분신을 잉태하고 창조하며 양육하는 능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여성 작가에게 작품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래 전부터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 조안 스나이더(Joan Snyder) 등을 비롯한 많은 이론가들은 여성 작가가 유독 자전적인 표현에 집중하여 자신의 모든 삶을 작품에 담아낸다고 이야기해왔다.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자전성(autobiography)이 두드러지는 이유가 단순히 여성들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 있거나 폐쇄성을 갖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분신으로서 작품을 창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유일한 통로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남성적 가치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현실에서 증식될 수 없었던 자신의 생각, 감정, 자아(self)를 자신의 아바타인 작품을 통해 표출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작품 속 상징물을 통해 잊고 싶었던 고통과 억눌러야 했던 욕망을 표현하고, 상징물을 증식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극복한다. ●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과 꿈은 여성 스스로 현실을 초월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승화된다. 여성 작가들은 긍정적인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서의 자아가 아닌 자기 환상을 통한 자아,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유토피아(utopia)를 제시하고 싶어 한다.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모든 형식과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나 솔직한 자아의 표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상상이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즈메리 잭슨(Rosemery Jackson)이 말했듯 환상은 현실을 투사하는 하나의 반영이자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경외감을 동반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환상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꿈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다. 또한 환상은 낯익은 것을 낯선 것으로, 안전한 것을 불안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 가능하기에 현실은 오히려 환상에 의해 가시화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여성적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백기은과 이정윤은 여러 층(layer)에서 아바타의 증식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품은 이차원적 드로잉(drawing)이 삼차원적 입체물로 증식된 것이다. 백기은과 이정윤은 반복적인 드로잉 과정을 통해 생각과 이미지를 진화시키고 그것을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 공간에 꺼내놓는다. 이들의 작품은 언제나 드로잉과 함께 전시되는데 이것은 작가의 영감이 떠오르는 첫 순간의 인상과 느낌을 관람자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자 입체물의 근원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드로잉이 지닌 직접성은 작가의 살아있는 감정과 내면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작가는 모두 삶과 내면을 담아내는 -존재를 알 수 없는 생명체나 코끼리와 같은-상징물을 자신의 분신으로서 제시한다. 이를 통해 백기은은 자신의 내면 세계에 깊이 침잠(沈潛)된 자아를 늘려나가고 이정윤은 현실 세계에서 외부적으로 노출되는 자아를 늘려나간다. ● 자아 탐색을 위해 백기은은 유기체적인 형상들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증식시킨다. 백기은에게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에는 작가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범위를 명확히 경계 지을 수 없는 기억,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기억은 역사 속에서 정의내리기 모호한 대상으로 존재해온 여성을 은유하기에 적절하다. 한편 이정윤은 코끼리를 의인화시켜 현재를 살아가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투영한다. 작가의 분신인 코끼리는 처음에는 무리 속에 섞여 앞만 보고 나아간다. 이후 코끼리는 무리를 이탈하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신체 크기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작되는데, 이는 작품이 작가에게서 나온 아바타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들의 아바타는 자아 찾기의 종착지인 여성적 공간-판타지의 세계-을 이끌어낸다.
"누구 한 사람 똑같은 사람은 없지. 뭐라고 할까, 이른바 아이덴티티의 문제야.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과거 체험에 대한 기억의 축적에 의해 빚어지는 사고 시스템의 독자성인 것이지. 좀 더 간단하게 마음이라고 불러도 좋아. 인간 각자에겐 똑같은 마음이란 하나도 없지.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사고 시스템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지 않네. 나도 그렇고, 자네 역시 그렇지. 우리가 그런 것들에 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또는 파악하고 있다고 추측하는 부분은 전체의 15분의 1에서 2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아. 이것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할 수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 2012.『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김진욱(역). 서울: 문학사상사, pp. 80-81.) 백기은은 눈으로 감상하는 기억의 환상곡(幻想曲)을 창조한다. 그의 작품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몽상적이고 환상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환상곡과 그 특성을 같이 한다. 유기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형상들이 공간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백기은의 환상곡은 우리 몸의 세포 혹은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할 것 같은 야릇한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하늘의 별과 은하수, 그 밖의 무수한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 백기은이 드로잉 작업을 시작한 것은 운명적 우연이었다.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손이 가는대로 드로잉을 시작했고 그것이 공간으로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철사로 입체적인 드로잉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반려 동물 등을 떠올리며 기억을 드로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는 기억이 우리 안에 언제나 살아있는 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곧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스스로 바다-창조의 어머니-가 되어 무수한 생명체들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체동물을 닮았던 기억들은 점차 복잡한 형상을 갖는 것으로 진화되었고 거미줄을 치듯이 공간을 향해 확산되었다. ● 드로잉이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형상의 진화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억의 증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체의 머리 속에 남은 특정한 기억은 무한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되고 확대 혹은 축소된다. 우리는 한 가지 기억을 매번 동일하게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했던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주체가 원하는 대로 재구성되고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 기억이다. 이러한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명확하고 단일한 형태를 보여주지 않으며 기억과 공상의 접점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끌어낸다.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기묘한 조화는 백기은이 선택한 재료와 작업 방식에서도 두드러진다. 작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리적 노동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코바늘뜨기를 하듯이 철사를 하나하나 엮어가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주재료인 알루미늄 철사는 날카로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쉽게 구부러져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가 만든 입체물은 큰 덩어리 안에 작은 덩어리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안의 구조물이 밖으로 돌출되기도 한다. 철사들이 모여 덩어리를 만들지만 그 내부가 훤히 보이기에 완벽한 양감을 갖지도, 명확한 경계를 갖지도 못한다. 조명 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섬세한 그림자의 중첩은 그 경계를 더욱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기억은 마치 그림자가 그렇듯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유령 같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 랜드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에서 주인공의 그림자 상실이 기억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백기은의 작업에서 그림자는 기억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편 백기은에게 그림자는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그림자로 존재해왔다. 빛을 마주한 존재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그늘인 그림자는 그림자의 주인으로부터 절대 독립할 수 없으며 주인공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의 형태는 불분명하며 빛의 조건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그것은 실존하는 존재가 아닌 허상이다. 그리고 열거된 이 모든 속성은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부여되어온 그것과 동일하다. ● 백기은은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고 드러내는 것,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하는 자발적 침묵 상태를 유지한다. 여기에는 여성이 그동안 타의에 의해 침묵할 것을 강요받아왔다는 것에 착안하여 침묵의 역사를 역이용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에게 작가의 침묵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강요받은 것이 아닌 자발적인 침묵은 권리의 행사이며 자기의 세계를 확고히 지키기 위한 작가적 선택이다. 백기은은 작품이 작가의 분신이라는 사실이 관람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작가의 분신이기에 작품은 비밀스러운 구석을 가져야 한다는 위악(僞惡)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모든 것은 -그것이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언어적이든 간에-표현되는 순간 의미가 한정되고 축소되어 버린다. 발화(發話)되지 못하는 침묵의 언어는 그 실체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무가치한 것이라 여겨지기 쉽지만 오히려 침묵은 존재를 구성하는 풍요로움과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침묵은 인간의 기억, 기억의 축적과 증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 내면의 무한한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세계의 부정이나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확인하는 것이며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맺음을 위한 작가의 조심스러운 시도로 의미 지어져야 할 것이다.
"나는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흥겨움이라 일컫지 않는다. 흥겨움은 어떤 매력, 기분 좋은 분위기인데 모든 종류의 주제, 심지어 아주 진지한 주제에도 부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La Fontaine(Jean de). OEuvres complètes I, Fables, contes et Nouvelles. coll.『Bibliothèque de la Pléiade』, Gallimard, 1991, p. 7.) 백기은이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정윤은 유쾌하고 통쾌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정윤은 구두를 신은 코끼리를 주인공으로 풍자(satire)적인 그림 우화(fable)를 만든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코끼리들은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딸이자 며느리로서 자신의 역할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작가 개인의 아바타이자 이 시대 여성들의 초상이다. 코끼리가 신고 있는 구두는 이정윤이 따라야 하는 사회적 관례와 규범을 상징한다. 구두는 무한 증식 되어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고 코끼리는 구두에 파묻혀 있다. 구두 형태의 빌딩에 앉아 먼 허공을 바라보는 코끼리는 사회의 지배적인 규범에 동조하고 그것을 따르는 데에 지쳐버린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이다. ● 일반적으로 구두란 중류의식(中流意識)을 가진 회사원, 즉 화이트-칼라(white-collar)의 상징이며 지식을 사용하는 직업의 상징이자 그들이 갖는 권위 의식의 표상이다. 또한 구두는 그것을 신은 사람의 자존심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코끼리가 신고 있는 하이힐(high-heeled shoes)은 여성이자 작가로서 이정윤이 갖는 자존감(自尊感)을 은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숨겨진 노력을 암시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구두를 신은 코끼리는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 불편하고 불안한 모습이다. 이는 작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여성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길을 가고 사회가 좋은 것이라 말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자신의 외면에서부터 내면까지 사회적 틀에 끼워 맞추는 현실을 풍자한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 스스로를 풍자함으로써 현대인들이 가진 지적 우둔성과 사회적 허영을 노출시키고 작가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이처럼 구체적인 상징물인 코끼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입하는 이정윤의 작품은 간결하고 명쾌하며 친근하다. 이정윤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이는 그가 우화의 형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화는 의인화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을 풍자하고 인간사의 모순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삶의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화의 최종 목적이 교훈 전달이기에 그것의 향유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주제가 분명하고 내용이 공감되어야 하며 쉽게 의미가 포착되어야 한다. 또한 풍자가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상은 풍자가 나온 당대 사회의 현실, 인물, 권력, 제도, 이데올로기(ideology), 편견, 관행이기 때문에 이정윤이 만드는 우화의 세계는 현실의 아바타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문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풍자하여 돌파구를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코끼리를 이용한 알레고리(allegory)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 앞서 언급했듯이 이정윤의 모든 작업 역시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정윤의 작업에서는 우연성이나 즉흥성을 찾을 수 없다. 작가는 계획적으로 명확한 줄거리와 인과 관계를 갖는 우화-자신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에서 코끼리들은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해안으로 휴가를 떠나 자아 찾기를 시도하고 사회적 규율을 따르는 삶을 해체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품을 통해 무리를 이탈하는 코끼리를 상상함으로써 이정윤은 욕구 불만과 억압을 분출해내고 내적 갈등을 해소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작가 개인의 삶을 현대인의 삶으로 확장시키고, 관람자 자신을 투영하는 무수한 코끼리들을 상상하며 증식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상상, 공상을 통해 현실의 불행을 완화시키고 치유하기 때문이다.
작업 방법에 있어서도 이정윤은 계획적이다. 그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공기조형물을 제작하는데, 이 때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도면 작업은 필수적이다. 작가는 공기조형물을 제작하기 이전에 이미 드로잉의 분신인 코끼리가 어떻게 입체적으로 형상화되는지 완벽히 예측한다. 계획된 증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완벽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지는 코끼리 조형물의 형태는 유동적이다. 만지면 움푹 들어가거나 찌그러지며, 바람이 빠져 작아지기도 하고 다시 팽팽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공기조형물을 만드는 PVC(Poly Vinyl Chloride)가 가진 재료적 특성인 부드러움 때문이다.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는 부드러운 입체물은 우리의 촉각을 예민하게 자극한다. 루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에 의하면 여성은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는 남성적-모더니즘적- 태도와 달리 촉각적인 태도를 갖는다. 촉각은 시각 중심주의에서는 보이지 않는 여성적인 것 속에 숨어있는 기원이다. 또한 촉각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과는 다르게 피부와 장기 등 온 몸에 퍼져 있기에 다른 감각들과 상호작용하여 지각되는 종합적이고 초감각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 매개적 기능으로 인해 촉각은 모든 이분법적인 경계를 허물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이다. 따라서 PVC는 여성적 세계를 증식시키기 위한 훌륭한 매체가 된다. ● 이처럼 이정윤은 주제에서나 재료에서나 관계 지향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는 작가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간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코끼리의 의인화가 더욱 강조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제 코끼리는 마치 사람처럼 꼿꼿하게 서 있으며 하이힐을 두 발에만 신고 있다. 몸의 형상도 더욱 인간을 닮아 있다. 그런데 코끼리가 인간 세상에 더 가까워질수록 이정윤의 작업은 냉소적으로 변하며 탈출에 실패하거나 낙오되어 울고 있는 코끼리의 수도 늘어난다. 이는 인간이 현실의 규범과 사회적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작가의 허망함과 슬픔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제 코끼리는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옥스퍼드(oxford) 원단으로 제작된다. 크기도 더 작아져 봉제 인형을 연상시키는 코끼리들은 누구가의 소유물처럼 보인다. 하늘을 날던 코끼리의 얼굴에 보이던 미소도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는 이정윤의 아바타이기에 이번에도 작가의 심경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정윤은 우화가 가진 인간애(人間愛)와 재기발랄한 반전의 힘을 잊지 않는다. 이번에는 슬픔의 상징처럼 보이는 눈물이 돌파구로 작용한다. 눈물은 감정을 분출하는 생물학적인 작용이자 심리적인 작용의 결과물이다. 눈물을 흘리는 분출의 과정에서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찼던 가슴은 깨끗하게 비워진다. 모든 것을 다 비워낸 코끼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이정윤의 마지막 드로잉에는 여행용 가방에 몸을 숨기고 다시 한 번 도시 탈출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코끼리가 등장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우화의 다음 장면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백기은과 이정윤은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생래적(生來的) 한계와 사회적 금기들이 지배하는 관습적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들이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가 정말인지 아닌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하느라 머뭇거리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이 어우러지는 화성(harmony)적인 세계-우리 자신만의 판타지의 세계-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이문정
Vol.20120712d | Nouvel Avatar: 새로운 변형-백기은_이정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