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ation

사윤택_황지윤展   2012_0711 ▶ 2012_0724 / 월요일 휴관

사윤택_순간, 틈, 굿 샷!_혼합재료에 유채_90.9×72.7cm_2012

초대일시 / 2012_07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사윤택-충돌하는 시공간의 틈 사이로 유출되는 욕망 ● 사윤택의 작품에는 여러 시간과 공간대가 공존한다. 작품이라 함은 여러 근원이 있어도 작가라는 전능한 존재자에 의해 다층적 모순들이 어떤 의미를 향해 수렴, 또는 종합되기를 요구하는데, 그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기법 또한 다양해서 모노타입으로 찍은 것, 오브제 및 그림을 그려서 다시 (재구성해서) 붙인 것, 긁은 것 등이 한 화면에 혼재하곤 한다.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영상도 잠재해 있다. 그렇다고 그가 무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략 이것저것 끄적거려 놓은 것에「무제」 따위의 제목을 붙여 놓고, 그 뒤에 굉장한 초월적인 의미가 있는 듯 비의적 제스추어를 취하는 유의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분명 어떤 서사들이 잠복해 있지만, 조율과 조화보다는 충돌과 간극에서 빚어지는 의미가 더 크다. 동서고금이 총출동하는 화면에서 구별되는 시공간의 틈은 봉합되지 않고 입을 벌린 채 있으며, 함정처럼 늘어 뜨려놓은 단편적 도상들은 작가나 관객의 욕망에 부응하는 순간적 조합을 통해 의미의 단서를 던져줄 뿐이다. ● 그의 작품에 예전부터 종종 등장하는 테니스 코트의 공처럼, 작가는 의미의 방향타만 제시할 뿐, 그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게임처럼 펼쳐진 장에는 꿈같은 자유로움과 잡아야 할 것을 놓친 것 같은 불안감이 치고 되받아쳐지는 공처럼 오고간다. 작품「순간, 틈-몽유도」는 고전 명화의 틀 거리 속에 꿈에서 보면 좋다는 다수의 상징적 도상들―불로초, 학, 바위, 두꺼비, 소나무, 똥, 감, 무지개 등―이 등장한다. 후경 속 어딘가에 비행기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비행기는 '시간의 주기를 표현하는 코드'로 자주 등장하는데,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풍경에서 시간 감각 또한 혼란에 빠진다. ● 그리고 사윤택의 작품 제목에 속한 '순간, 틈'은 회화를 가장 회화답게 하는 순수한 순간에 주목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한눈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투명한 시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은 그의 작품에서 수많은 틈들로 분절화, 또는 해체된다. 이를 통해 순간은 오염되고 불순해진다. 사윤택의 작품에는 고정된 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타는 불투명한 지각의 추이나 흔적들이 강조된다.

사윤택_순간, 틈, 낯과 밤 그리고 베르그송_한지에 유채_60.6×72.7cm_2012

그는 자신의 작품이 '순간의 틈에서 건져 올린 상황'이며, '순간이라는 시간성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스치면서 망각되는 순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순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잡다함과 문득문득 튀어 오르는 단서들이 있는 그의 화면에는 작고 빠른 움직임들이 내재해 있다. 모더니즘은 순수한 순간에 집착함으로서 시간성을 억압했는데, 사윤택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의식적인 차원이든 무의식적인 차원이든, 심리적인 차원이든 물리적인 차원이든 활성화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서 완결감과 자족성이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는 그리다만 듯 말하다만 듯한 어정쩡함이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베르그송이나 칸딘스키 같은 근대 철학자와 화가들의 등장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중략) 그의 작품은 순종이 아닌 잡종, 순수가 아닌 불순함, 침묵이 아닌 수다, 완결이 아닌 과정, 욕망의 억압이 아닌 분출이라는 속성이 강하다. ● 작품「순간, 틈-굿 샷!」은 여자를 두고 한 남자가 어쩔 줄 몰라 담배를 물고 있는 '풍성한 욕망이 차오르는 풍경'이 엿보인다. 피워 오르는 담배 연기뿐 아니라, 나무나 바위 등, 위로 솟구치는 모든 도상들은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상호 조응한다. 쿠르베나 세잔 등,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화가들의 작품들을 형식주의가 아닌 성심리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새로운 미술사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사윤택의 정물 또한 순수한 조형적 실험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장이다. ● 동서양의 고전과 인물들, 그리고 기법의 패로디는 그자체가 차이를 가진 반복이다. 린다 허천은『패로디 이론』에서 보수적 반복과 급격한 차이 사이에 설정된 패로디의 양면 가치를 언급한다. 패로디 되고 배경이 된 텍스트와 새로이 병합된 텍스트 간에는 비평적 거리가 암시되어 있다. 분열적이며 불안정한 패로디는 통일과 조화를 강조하는 텍스트의 이중화이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그리고 텍스트와 현실 세계 사이의 부조화를 앞세우는 차이이다. 패로디는 동일성과 정체를 강조하는 반복이 아니며, 차이만을 강조하는 반복도 아니다. 패로디는 비판적인 거리와 변화를 허용하면서, 계속성을 부각시킨다. 사윤택의 패로디는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다루는 '미술에 대한 미술'임과 동시에, 자체의 동일성도 문제시한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자기지시성의 문제가 있다. 자기지시성은 형식의 내전을 통해 선대 미술을 비판적으로 극복해온 미술사 뿐 아니라 뿐 아니라, 주체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사윤택_순간, 틈, 새빨간 시간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72.7×60.6cm_2012

실재/허상, 실체/그림자의 관계는 분신 또는 짝패 같은 분열적 인물상을 통해 불확실해진다. 작품 속에서 그는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그리곤 한다. 패로디에 내재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타자와 또는 자기 안의 타자와 대화한다. 거기에는 독백이 아니라, 두 목소리(diphonic), 또는 다음(polyphony)이 들려온다. 대화는 종합이나 화해, 조화와 화음을 향하기보다는 경쟁적이며, 대화의 장은 종종 선술집처럼 소란스럽다. 이 잡음들 속에서 무슨 소리를 골라 듣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린다 허천에 의하면, 상호텍스트적 대화란 독자와 문제의 텍스트에 의해 환기되는 다른 텍스트에 관한 독자의 기억 사이의 대화이며, 하나의 가상적 해석학적 구조물이다. 작가와 독자들에 있어서 과거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담론 밖에 암시된 공통의 지식들과 그것에 내재된 의미의 층들을 포개 놓는데 있다. ● 사윤택의 작품은 패로디와 구분되는 패스티쉬 형식도 있다.『패로디 이론』의 분류에 의하면 그는 모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패로디지만, 동시에 단일 텍스트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텍스트를 함께 모방한다는 점에서 패스티쉬이다. 수사법 보다 상투어구(cliche)의 관계가 두드러질 때 패로디보다는 패스티쉬에 기운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보다 많은 도상이 등장할 때 패스티쉬에 가까워진다. 요즘 작업에서 인용되는 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패로디는 모방과 전용을 통해 특정 코드들을 인용하지만, 비판적 거리감을 통해 재현주의나 그것의 유사물인 모더니즘적 추상을 파기한다. 패로디는 기존의 권위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사윤택의 패로디는 모더니즘이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통해서 반미학적이고 블랙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지인들은 그의 그림이 그와 매우 닮았다고 평한다. ● 그가 작품과 현실을 문제시할 때 활용하는 패로디에는 또한 중요한 자아반영(self-reflexivity)의 형식이 있다. 모더니즘 자체가 이 자기지시, 자기참조, 자기반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작품 속에서 붓을 들고 있는 이는 대개 작가 자신이며, 몸통은 생략된 채 치열한 의식과 부지런한 붓놀림을 상징하는 머리와 손만 나타난다. 머리와 손 사이에는 생략된 몸처럼 양자 간에는 간극이 있다. 이 간극에서 또 다른 간극들이 무수히 파생된다. 이 간극 속에서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통일된 작가라는 근대적 낭만주의의 신화는 무너진다. 린다 허천은 어떤 힘을 비신격화 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힘의 임의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사윤택의 패로디는 모더니즘적 형식주의에 내포된 유사 객관성과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정전적 텍스트의 뜬금없는 끼워 넣기가 단지 유희를 넘어서 비판을 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종종 등장하는 동양화 코드는 화면에 이질성과 복합성을 증가시키며, 역사, 지속, 대중성, 혼성 같이 모더니즘에서 억압되어 왔던 것들을 복귀시키고, 그것들을 다양하게 엮어 삶과 예술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 이선영

황지윤_Landscape(2)-1,2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2_2011~2
황지윤_Landscape-1_캔버스에 유채_65×193.9cm_2011~2

황지윤-'자연 속의 자연' ●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동양화)는 매너리즘화된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감상자에게 잠재된 일반적인 욕구들을 소환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그림들은 굳이 전시장이 아니더라도 일반 가정, 관공서, 이발소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화의 공통된 기억을 환기시킨다. 물레방아가 자리 잡은 시냇가의 배치와 '이발소 그림'들의 정형화된 표현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에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전체적으로 마치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 그림으로 보이지만 세부 내용 속에 감추어진 이질적인 요소들의 배치를 통해 감상자가 스스로의 심리적 풍경을 유추하면서 그림과의 대화를 이어 나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황지윤_Tidal Flat_캔버스에 유채_112.1×193.9cm_2012
황지윤_두줄기의 강_캔버스에 유채_65×193.9cm_2012

그림의 전체적인 풍경으로는 환상 속에 자리 잡은 이상적 공간을 연상하였다. 그러한 풍경의 안정된 구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물감의 색을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로 정하여 전체적인 색채상 균일되고 통일된 느낌을 끌어내었고, 단순한 풍경과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틀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전반적인 형태의 안정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상을 숨기거나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색을 이용하였고, 어떠한 부분에서는 세밀하게 대상을 묘사하여 전체적으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림 속에서의 그 형태가 살아있도록 표현하였다. ● 자연 속의 자연 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풀어가면서 자연 속에서 되살아나는 형태들로 하여금 공포, 유희 등의 감상자를 향한 심리적 자극을 불러일으켜, 이 작업의 풍경이 단순한 자연 배경이 아닌 감상자 개인의 심리적 풍경(자연 속의 자연)으로 역추적되는 효과를 낳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주관적 기억이라는 매개로 해석하고자 하였고, 기존에 있던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다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기억에 대한 해석에 위트가 가미되도록 하였다. ■ 황지윤

Vol.20120711i | Sensation-사윤택_황지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