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기억과 생각의 흐름을 좇아가다. -예진영의 '만드는 그림' ● 6년만의 개인전 경북 청도가 고향인 예 진영 작가는 영남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포항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대구미술대전의 대상을 비롯해 경북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한 바 있고 그 후 초대작가가 되었다. 주로 한국화와 현대미술 분야의 동인그룹에서 활동해오며 대구 포항 안산 등지에서 이미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다음 달 서울 인사동에서 여섯 번째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데 2006년을 마지막으로 이번이 거의 6년만이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작가지만 그사이 기획전과 단체전의 활발한 참가에 비하면 간격이 길었다. 한동안 개인전이 뜸했던 것은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오던 기존의 회화로부터 돌아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하게 된 때문인 듯하다. 근래의 작업을 보면 이전과는 매체의 속성부터 판이하게 다른데 완전히 바뀐 현재의 작업을 가지고서는 최초로 여는 개인전인 셈이다. 전통적인 양식에서 출발해 현대적인 조형실험까지 벌여나가던 중 전혀 다른 재료와 방법으로 전환한 뒤 처음 단독전시를 가지는 것이어서 작가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는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인다. ● 그래서 아마 관객들은 그의 최근 작업만 보고서는 이 작가의 지난 작품들을 거의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 전통적인 수묵표현의 각 단계를 차례로 섭렵하다 나중에는 민화와 민속적인 목판화 기법을 응용한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한때 사실적인 형상의 추구는 물론이고 특히 민속적인 목판화 기법에서 착안한 다양한 표현효과를 응용해 보기도 했고, 한지와 물감을 이용해서 재료의 성질을 탐색하는 것에서부터 능란한 붓놀림의 기교적인 드로잉 작업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모두 기존 장르에 속한 전통적인 방법의 연장선상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해 왔던 것이었다.
그리지 않고 만드는 그림 ● 그러나 최근의 작업들은 더 이상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먹이나 안료 같은 색채는 물론 그것들을 다루기 위해 갖추어야 했던 지식이나 기술도 필요 없는 오로지 '만드는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숙달된 손의 기교를 사용하는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일종의 오브제를 가지고 작업한다. 이전의 경우 비록 조형적인 실험을 하더라도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철저히 배제한 채 손(몸)의 노동과 함께 이루어가는 작업인 셈이다. ● 이와 같은 방법적 전환은 결국 한국화의 현대적인 모색에서 시작돼 기존의 회화적 표현에 대해 회의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순수한 창작을 위해 관습과 인습적인 훈련에 의해 익숙해진 손의 기술과 동떨어진 제작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만드는 그림으로의 전환은 동시에 작가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몇 가지 개인적인 문제도 함께 깨닫게 했다. 즉 만들기를 좋아하던 어릴 적의 기억을 환기시키게 된 것과 또 무엇인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제작행위 속에서 훨씬 더 큰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 누구나 그랬겠지만 작가는 유년기에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시각적인 환영과 관련한 기술을 습득하고 세련시키는 동안 잊어버렸던 것인데 우연한 기회였는지 혹은 필연적인 것이었는지 잠재해 있던 그 감각적 본능을 깨우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은 성인이 되어도 그렇게 잠자던 본능을 실현할 수 있을 때 정신의 행복과 마음의 치유를 얻는 모양이다. 작가도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 만드는 그림의 방식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고 최근 4-5년간을 열성적으로 지속해오고 있는 것 같다.
관조적이며 명상적인 작업 ● 작업의 재료는 생활 속에서 구한 구체적인 물질들이다. 일상에서 발견한 오브제들을 직접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그 오브제는 단순한 재료의 의미를 넘어 주제를 전개시키는 모티프이자 생활을 돌아보는 관조와 사유로 이끄는 매개물도 된다. 이렇게 선택된 오브제로는 붓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그리던 회화에서보다 과거의 기억이나 주변 환경에 더욱 생생한 접촉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관념적인 대상의 묘사에 매달리는 대신 훨씬 자유롭게 생각의 흐름을 좇으면서 지금의 작품을 전개시킬 수 있다. 작가의 지난 주제들을 살펴보면 고(古), 흔적, 생성, 순환 등의 개념적인 내용을 자연의 재현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는 경향에 서 있었다. 지금은 '소리'나 '바람'같은 주제로 바로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 "이것들을 한 점 한 점 꽂아가면서 형태를 완성해 나가는 지난한 작업의 과정은 허튼 생각을 비우고 나를 찾는 수행의 여정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업과정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밑그림 없는 화면에 처음 재료를 작은 점 하나로 꽂아 빈 공간을 채워나가듯 이루어간다. 꽤 긴 시간을 버티며 오래 견뎌야 할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진행과정에 많은 변수가 있어 최종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완성된 순간에 대한 기대는 클 것이다. 순간순간 선택에 따른 변화가 창작의 전 과정을 이끌어 갈 만큼 직관과 관조의 힘이 작용하는 비중이 큰 작업이다. ● 이렇게 완성한 화면의 인상은 항상 경이롭다. 바람에 이리저리 누운 들판의 풀, 또는 일렁이는 수면 위의 파문을 보고 있을 때처럼 공기의 진동, 물의 흐름, 숲의 흔들림 같은 느낌을 준다. 실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울림 같은 자연의 에너지다.
추상적인 자연미 ● 작가는 과거에도 주로 파도, 구름, 꽃 등의 자연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즐겨 표현해 왔다. 최근 작품들에서 이런 이미지들은 설명적인 요소를 더욱 줄이고 덜어내 최소한으로만 남긴 채 암시되기도 한다. 배경과 하나가 되도록 서술적인 요소들은 모두 비워내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질서와 함께 무늬처럼 등장시킨다. 관객은 정교한 구성을 갖춘 듯 보이는 입체적인 화면에서 공들인 노고와 시간의 축적을 읽는다. 그 구성은 한 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한 점까지 모두 기본 단위로 환원될 수 있을 것 같아 때로는 수학적이고 일종의 미니멀리즘적인 미학을 느끼게도 한다. ● 최근의 한 작품에서는 의자 모양의 윤곽선을 도입해 새롭게 주목을 끌면서 사유의 단서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별도의 채색작업은 하지 않았지만 재료가 산란하는 빛과 어울려 다채로운 색을 발산했다. 구성 요소들 위로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오브제에 따라 빛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고조되는 것이 확인되기도 한다. ● 고요한 대기 중에 바람이 지나가자 소리가 들리고 유동성이나 방향성을 갖게 된 모든 것에서 생기를 느낄 때처럼, 예 진영 작가의 조각 같은 오브제 작품들에서 받은 감동은 자연의 이런 역동적인 변화를 표상하는데서 오는 것이었다. ■ 김영동
Vol.20120711e | 예진영展 / YEJINYOUNG / 芮珍榮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