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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714_토요일_05:3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눈 ALTERNATIVE SPACE NOO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galleryartnet.com
페인트가 질퍽하게 쏟아져 있다. 밀폐된 작업실 천장 형광등에 자기 대가리를 무수히 박아대던 어느 나방이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페인트에 붙들려 털 오라기 하나 망가지지 않은 채 굶주려 죽었을 것이다. 최후의 움직임조차 기록되지 않은 멍한 그 표면 위로 표면을 제외하고서 무언가 있을 법한 사건과 그 사건 이전들은 다 집어 삼켜졌다. 그야말로 그 두터운 표면 위는 무언가의 무언가無言歌이다. 그리고 페인트의 물성을 가감 없이 쏟아부어버려 퍼진 마띠에르matiere가 질척거리는 풍경으로 전환되는 순간 캔버스 일대의 울긋불긋한 침묵은 이내 늪이 되어 버리었다. 막역하게 숨 막히는 습지의 이미지 위에서 어떠한 발작이 가능할 것인가?
물이 창조의 이미지로 대우받는 이면에는 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아래에 관능과 섹슈얼리티가 자리하는 공이 크다. 물은 여자이며, 특히 사내의 몸을 끌어당기고 그 사내의 애를 낳는 여성의 의미가 상상되는 모습 사이로 흐르는 것이다. 때문에 물기 없는 가뭄의 신 '발魃'은 대머리의 추녀로 그려지고, 세상에 물이 가득 차 오른 이후에 세계는 재창조된다. 물의 음기陰氣는 음기淫氣로서 이해되고, 때문에 물은 자손 번창에 대한 목마름을 가시게 하며, 그 자체로 성적인 여성성을 부여받고 그것이 창조의 의미를 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충동적인 습기가 더할수록, 물의 이미지는 단순히 몸 섞고 애 낳는 여성의 모습을 버린다. 강력하게 대상을 끌어들이고 그 대상을 망가뜨린다. 몽연한 안개 속에서 희랍의 바다 요정 '세이렌Seiren'은 사내를 꾀어내서 바다 밑으로 처박아 죽여 버린다. 늪은 그 습윤한 자태 안에 온갖 것들을 먹여 살리지만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다. 이미 있는 삶 위로 다른 삶이 포개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다가오는 것들을 제 몸 속으로 쑤셔 박고 뭉개며 다시 원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습윤한 상상의 절정에 다다라서, 물은 이제 더 이상 더 이상 무언가를 품고 안아서 무얼 낳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멸의 현장을 놀랍도록 은폐시키는 능력이 있다.
여기 다시, 늪이 있다. 늪이 벌겋게 흐르고, 꾸덕꾸덕한 표면은 매끄럽기만 하여 일견 아무렇지 않은 덤덤한 수면으로 관자를 대한다. 하지만 페인트가 흐르며 여러 원색의 층위와 그 층 사이사이 작가가 독대해야 했던 소중한 고요들이 그 안에서 다 죽어 있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그 풍경에 매혹된 자기를 또 하나의 풍경으로 만드는 이러한 미화美化의 과정은, 이러한 장엄莊嚴은, 망각된 바를 되찾으려 하지 않고 꾸미며, 지금 이 자리에 맹렬히 집중하게 만든다. 어렴풋한 저편은 다 삼켜졌다. 밤에 묘연하게 흘러나오는 온갖 생각들은 끈적이는 페인트의 물성 아래 함몰되었다. 생각이 그 위에 있었다. 다 먹어치웠다. 다른 생각들이 포개어지지 못한다. 망각된 생각이 그 안에 있다. 고요하게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다른 존재들을 없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다시 반질거리게 윤색된 늪이 자리한다. 작업을 잉태한 당시 한밤중의 상상력은 그 마띠에르 안에서 질식하고 있다. 100호짜리 질척이는 화면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여기, 어느 한 때의 시간이, 매.몰.됐.다...' ■ 이문석(니문)
Vol.20120707g | 제이킴展 / J.kim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