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 SWAMP

제이킴展 / J.kim / painting   2012_0706 ▶ 2012_0719 / 월요일 휴관

제이킴_untitle_패널에 에나멜 페인트_130.3×162.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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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714_토요일_05:3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눈 ALTERNATIVE SPACE NOON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82-6 Tel. +82.31.244.4519 www.galleryartnet.com

페인트가 질퍽하게 쏟아져 있다. 밀폐된 작업실 천장 형광등에 자기 대가리를 무수히 박아대던 어느 나방이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페인트에 붙들려 털 오라기 하나 망가지지 않은 채 굶주려 죽었을 것이다. 최후의 움직임조차 기록되지 않은 멍한 그 표면 위로 표면을 제외하고서 무언가 있을 법한 사건과 그 사건 이전들은 다 집어 삼켜졌다. 그야말로 그 두터운 표면 위는 무언가의 무언가無言歌이다. 그리고 페인트의 물성을 가감 없이 쏟아부어버려 퍼진 마띠에르matiere가 질척거리는 풍경으로 전환되는 순간 캔버스 일대의 울긋불긋한 침묵은 이내 늪이 되어 버리었다. 막역하게 숨 막히는 습지의 이미지 위에서 어떠한 발작이 가능할 것인가?

제이킴_untitle_패널에 에나멜 페인트_97×162.2cm_2011
제이킴_untitle_패널에 래커 페인트_90.9×74.8cm_2011
제이킴_untitle_패널에 에나멜 페인트_130.3×162.2cm_2011

물이 창조의 이미지로 대우받는 이면에는 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아래에 관능과 섹슈얼리티가 자리하는 공이 크다. 물은 여자이며, 특히 사내의 몸을 끌어당기고 그 사내의 애를 낳는 여성의 의미가 상상되는 모습 사이로 흐르는 것이다. 때문에 물기 없는 가뭄의 신 '발魃'은 대머리의 추녀로 그려지고, 세상에 물이 가득 차 오른 이후에 세계는 재창조된다. 물의 음기陰氣는 음기淫氣로서 이해되고, 때문에 물은 자손 번창에 대한 목마름을 가시게 하며, 그 자체로 성적인 여성성을 부여받고 그것이 창조의 의미를 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충동적인 습기가 더할수록, 물의 이미지는 단순히 몸 섞고 애 낳는 여성의 모습을 버린다. 강력하게 대상을 끌어들이고 그 대상을 망가뜨린다. 몽연한 안개 속에서 희랍의 바다 요정 '세이렌Seiren'은 사내를 꾀어내서 바다 밑으로 처박아 죽여 버린다. 늪은 그 습윤한 자태 안에 온갖 것들을 먹여 살리지만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다. 이미 있는 삶 위로 다른 삶이 포개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다가오는 것들을 제 몸 속으로 쑤셔 박고 뭉개며 다시 원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습윤한 상상의 절정에 다다라서, 물은 이제 더 이상 더 이상 무언가를 품고 안아서 무얼 낳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멸의 현장을 놀랍도록 은폐시키는 능력이 있다.

제이킴_untitle_패널에 에나멜 페인트_130.3×162.2cm_2012

여기 다시, 늪이 있다. 늪이 벌겋게 흐르고, 꾸덕꾸덕한 표면은 매끄럽기만 하여 일견 아무렇지 않은 덤덤한 수면으로 관자를 대한다. 하지만 페인트가 흐르며 여러 원색의 층위와 그 층 사이사이 작가가 독대해야 했던 소중한 고요들이 그 안에서 다 죽어 있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그 풍경에 매혹된 자기를 또 하나의 풍경으로 만드는 이러한 미화美化의 과정은, 이러한 장엄莊嚴은, 망각된 바를 되찾으려 하지 않고 꾸미며, 지금 이 자리에 맹렬히 집중하게 만든다. 어렴풋한 저편은 다 삼켜졌다. 밤에 묘연하게 흘러나오는 온갖 생각들은 끈적이는 페인트의 물성 아래 함몰되었다. 생각이 그 위에 있었다. 다 먹어치웠다. 다른 생각들이 포개어지지 못한다. 망각된 생각이 그 안에 있다. 고요하게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다른 존재들을 없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다시 반질거리게 윤색된 늪이 자리한다. 작업을 잉태한 당시 한밤중의 상상력은 그 마띠에르 안에서 질식하고 있다. 100호짜리 질척이는 화면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여기, 어느 한 때의 시간이, 매.몰.됐.다...' ■ 이문석(니문)

Vol.20120707g | 제이킴展 / J.kim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