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OCI YOUNG CREATIVES

김채원_나광호展   2012_0706 ▶ 2012_0727 / 월요일 휴관

김채원_푸새_피그먼트 프린트_95×200cm_2012

초대일시 / 2012_0706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김채원의 작업 - 무한히 증식하는 복잡계, 카오스모스 ● 김채원의 작업은 일상의 오브제들을 무작위적으로 집적, 배치한 비선형적인 설치작업과 이를 기반으로 한 3D 애니메이션 및 디지털 사진작업으로 구성된다. 옷걸이와 거울, 못과 막대기 등 일상의 오브제들을 비선형적으로 결합, 조립하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은 일상성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다. 그것은 달 표면에 거주하는 우주 정거장으로, 먼 미래의 폐허 도시로, 지도에서 고의적으로 은폐된 숨겨진 공간으로 고도의 형태변이를 거듭한다.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망원경, 도로와 건축물 등을 직조하며 만들어내는 생성의 이미지들은 또한 거미줄의 무한한 네트나 바다생물체의 형태로 유추되기도 한다. ● 이러한 잠재적 형태변이와 복잡성의 미학은 김채원 작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바닥에 파편처럼 흩뿌려지거나 공중에서 무중력상태로 부유하면서 한 무리의 집단을 이루고, 또한 벽이나 천장으로 증식하듯 올라가는 김채원의 복합 건축물은 기계적이면서도 동시에 유기적이고, 생물체를 연상시키면서도 가상공간의 디지털 이미지와 접합하며, 일상의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우주의 공간을 내포한다.

김채원_Seed_피그먼트 프린트_95×200cm_2012

일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이동하거나 증식하는 듯이 보이는 그의 설치 작업은 단 한 번에 총체적으로 지각되지 않는, 그리고 논리적으로 구조화 될 수 없는 수많은 특이점들로 존재한다. 처음에 보였던 오브제들은 이후 처음의 지각에 도전하고 새롭게 보여 지면서 지각체험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각도와 풍경을 보여주는 멀티플하고 정신분열적인 이 설치물은 관람자 내에 구조적인 논리의 붕괴를 유도한다. 또한 공간에 안전하게 거주하려는 관람자의 안정된 기반을 흔들어 놓고 시공간의 개념이 부서진 상태에 그들을 대면시킨다. 동일성을 부정하고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들이 변형하고 섞임을 보여주는 김채원의 설치 작업은 결국 관람자의 중심적 시각과 시 공간의 위계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 김채원 설치작업의 이러한 복잡성의 맥락은 평면작업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설치작업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장면들을 디지털 프린트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디지털 평면작업이나 애니메이션 영상, 사운드 등은 오브제 설치작업의 결과로서의 기록이 아니라 전체 작업의 요소로서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고 지시하는 상호 텍스트로서의 기능에 참여한다. 오브제 설치 작업이 사이트(Site)적 의미를 지닌다면, 디지털 프린트와 애니메이션 영상은 그것에 대한 해석과 번안인 논-사이트(Non-Site)한 요소로 읽을 수도 있다. 즉 그의 작업은 여러 요소와 다양한 미디엄을 통해 작품의 의미가 계속적으로 산출되고 파생되는 순환 구조, 연쇄의 구문론을 제시한다. ● 이러한 의미에서 디지털 프린트는 입체적 설치물에서 간파된 복잡계의 평면적 버전으로도 읽혀지는데, 3D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사용되는 마야(Maya)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그려낸 정밀한 이미지들은 무한 반복되는 기계적 이미지와 유기생물체적 이미지들의 변형과 섞임을 보여주면서 그의 오브제 설치물과도 같이 비선형적이면서도 그 안에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는 '카오스모스'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김채원_Creation_피그먼트 프린트_95×95cm_2012

카오스모스는 무질서와 질서가 공존하는, 소위 '복잡한 질서' 로 이해될 수 있다. 질서 지워진 우주적 공간, 즉 코스모스에 균열을 가하고 우연성과 에네르기를 부여하는 것이 카오스모스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카오스만으로 폭발할 때 감지되는 혼란스러움이 코스모스로 제어되고, 코스모스의 단조로움이 카오스로 복잡화되는 것이 카오스모스의 속성이라 할 때, 이러한 속성은 김채원 작업의 전반을 지배한다. 가로 2미터에 달하는 최근작 「Seed」(2012)의 경우, 무한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의 나선형 계단이 가느다란 선의 형태로 화면 전체를 유영하고 곳곳에 씨앗이 폭발하는 듯한 형상이 표현되어 있다. 기계적이고 건축적인 이미지와 유기적 이미지의 결합은 화면 전체를 질서정연하게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요동치게 만드는 카오스모스의 이중성을 내포한다. 「Cosmic Architecture」(2012)를 비롯하여, 「Inside Cosmic Storage」(2012), 「생성」(2011)등의 작품에서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 단단한 것과 부드러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등 대립항들의 충돌과 연접은 작품 표면에서 변화와 파동, 에너지를 생성시킨다. 질서와 규칙 속에 내재된 카오스의 세계가 김채원 작업에서 프랙탈의 이미지, 나선형의 형태, 고대 생물을 연상시키는 유기체와 미래적 도시풍경의 복잡한 뒤얽힘 등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김채원_저장고_설치_300×400×500cm_2012_부분

사실 나선형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여기서 이탈한다는 점에서 카오스모스의 속성을 함축한다. 김채원의 입체 설치와 평면작업에서 이러한 나선형의 형상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나선형은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이 「나선형 방파제 Spiral Jetty」에서 가시화하였던 퇴보와 소멸, 비가역적인 변쇠(邊衰)이자 부정으로서의 나선형의 의미와, 타틀린(Vladmir Tatlin)이 의미화한 하늘로 뻗어나가는 진보와 역동성으로서의 나선형, 그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는 듯하다. 즉 김채원의 나선형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함몰과 퇴보로서의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고대 바벨탑처럼 일종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하지도, 그렇다고 무한한 상승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 중간지대로서 소멸을 내재한 상승, 디스토피아를 의식한 유토피아의 뉘앙스가 더 강하다. ● 이러한 파괴와 소멸을 내재한 미래적 유토피아의 이미지는 작가가 설치와 평면작업에서 궁극적으로 시각화하려던 코스모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코스모스적 공간은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인간이 고안해낸 마지막 대안공간, '스발바르 국제씨앗 저장고(Svalbard International Seed Vault)'에 비유된다. 이 공간은 전쟁과 핵폭발, 천재지변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대 재앙에 대비하여 인류에게 필요한 식물자원을 보존하고자 수백 종의 씨앗을 보관하는 장소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 다름 아닌 곳이다. 최후의 소멸을 내면화한 미래의 유토피아적 장소,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남극에 은폐된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 무한한 생성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곳, 단일함보다는 복수성을 지향하며, 파괴와 재건, 현재와 미래, 동일성과 이질성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스발바르 씨앗 저장고'이고 이것이 작가가 이해하는 카오스모스로서의 우주의 형상이다.

김채원_저장장치_설치_150×100×150cm_2012

이러한 복잡한 질서로서의 우주의 모습은 김채원의 작업에서 서로 연관 없는 대상들이 불연속적으로 접합하며 중심점으로 회귀되는 것을 거부하고 화면 내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현상에서 포착된다. 특히 「Inside Cosmic Storage」와 「Green City」, 「Seed」 등은 '스발바르 씨앗 저장고'의 시각적 메타포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들 작품 중 대부분은 씨앗으로 대변되는 식물 유기체의 형태가 기하학적이고 도식적인 이미지를 침범하고 지배한다. 씨앗은 부분 속에 전체를 담지 하는 역설적 구조를 지닌다. 마치 극소에 극대(우주)가 있고, 순간에 영원이 존재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씨앗은 모든 사물이 또 다른 사물을 내포하고 있음을 뜻하는 주름의 개념이나 내 안에 타자를 내포하는 복잡계의 개념과도 상통한다. 자신 내에 무한히 접힌 주름과 수많은 특이점들을 지는 복잡계로서의 씨앗은 김채원 작업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 ● 전체와 부분, 질서와 무질서, 카오스와 코스모스, 성과 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의미화하기 위해 김채원은 평면 작업일 지라도 비선형적인 독특한 설치 방식을 택하였다. 전체 가로 4미터 크기의 「Inside Cosmic Storage」 이나 2미터에 달하는 「Cosmic Architecture」는 여러 개의 사각형 프레임으로 파편화된 후 실제 공간에서 재결합된 대형 평면 작품이다. 이들 조각적 이미지들은 시스템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듯 보이면서도 변형과 유연성의 감성을 제기한다. '스발바르 저장고'가 소멸에 저항하고 영원 지속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듯 사각모양 프레임들은 십자가의 형상으로 의도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 김채원은 환경, 우주, 생물, 사회에 대한 오랜 관심을 오브제 설치와 디지털 프린트 작업에 반영시키면서 유기적 형태와 인공적인 형태, 질서와 무질서, 우연과 통제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모호성과 복잡성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경계와 과정 중에 위치하는 고정되지 않는 변증법의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이러한 세계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거기서 우리자신의 모습을, 즉 총체성이 결여되고 불안정성을 끊임없이 노출시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 배명지

나광호_Vincent van Gogh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2

몸의 언어로 접근하는 미술의 원형에 대하여 ● 지금까지 나광호가 선보인 작업들을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단편적 이미지들이 각각의 투명한 레이어들에 중복되어 하나의 액자 속에 존재하는 작품(Cooked and Raw 연작)들과 그 이미지를 응용하여 오브제화 시킨 후 모빌의 형식으로 매달아 놓는 설치작품, 그리고 신체의 사이즈를 압도하는 대형 드로잉 작업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어린아이들이 그린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지니는데, 그 특징은 한눈에 파악될 정도로 분명하다.

나광호_Cooked and Raw_아크릴판에 아크릴채색, 실크스크린_117×85cm×3_2012

매체의 육화 ● 필자가 처음 접했던 나광호의 작품은 서두에서 언급한 이미지들을 전통판화의 형식으로 종이에 찍어낸 것이었다. 그는 회화를 전공했으나 학부시절부터 판화작업을 즐겨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캔버스와 최소한의 질료만으로 구축되는 회화가 다소 한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한 갈증은 그로하여금 다양한 재료와 매체로 작업을 시도해보게 만들었고 그러한 차원에서 판화작업들을 시도해봤던 것이다. 그가 언급한 새로운 매체와 재료에의 모색을 '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그의 체질적 선호의 측면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그가 고백하는 '하드한 작업'의 반복은 작업의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몸을 능동적으로 개입시키는 작가적 태도의 일면일 것이다. ● 그러한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판화작업을 시도했던 것이 판화의 결과론적 특성보다 판화의 제작 과정에서 개입되는 다양한 과정과 행위의 미학이 그 이유였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의 판화에는 독성을 마다 않고 사용하는 다양한 화학 물질들과 판에 새김을 하는 작가의 높은 완력을 요하는 묵직한 작업과정들이 제작과정 안에 적극적으로 함입되어 있다. 그렇게 판화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하면서 작가가 될 준비를 해왔던 셈이다.

나광호_해바라기_캔버스에 유채_162×97cm_2012

이미지의 출현 ●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공히 학습과정이 거의 전무한 어린아이들의 그림들이다. 그가 아이들의 이미지를 쓰게 된 계기를 방과후 학교의 미술강사로 근무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중요한 계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계기는 그가 창작행위를 인식하는 태도의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는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진지한 사고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의 과정과 배경의 과정을 관통하며 체득된, 복잡하고 모호한 것이겠지만,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작업에 대한 진중함 정도가 될 것 같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일체의 인위성을 배제하고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그러한 그의 강직한 생각과 그가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방과후 학교의 미술교사 생활이 조우하면서, 그는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그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가 가장 순수하게 그림을 그렸던 시기를 회상해내는 계기이기도 했다. 적절한 이미지 구성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회 교육의 영향력이 최소한으로 존재하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그린 그림들을 그는 모으기 시작했고 자신의 작업속으로 끌어들였다. 일견 그 이미지들은 의미 없는 낙서 같기도 하고 미성숙한 장난 같기도 하겠지만, 면밀히 관찰해보면 거기에서 날카로운 관찰력과 제한 없는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아이들의 재현행위에 부담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어른들의 개입과 모종의 부과 행위로 인해 아이들이 갖는 순수성이 훼손되기 전의 그림들을 그는 골라낸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분출하듯 그려낸' 그림들이다. 어찌보면 가장 순수한 의지만이 반영된 그 이미지들을 나광호는 하나하나 수집하여 자신의 작업으로 재탄생시킨다.

나광호_해치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12

새로운 형식으로의 탄생 ● 나광호는 그가 수집하는 이미지들을 컴퓨터 작업을 통해 출력한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겹쳐서 배치하는 독특한 작업들을 완성했다. 가장 많이 시도했던 것은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각각의 이미지들을 투명한 판에 배열한 후 복수의 판들을 겹쳐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들 속에서 재현된 이미지가 구현하는 원본으로서의 속성과 이미지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해 발견되는 특별한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판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판화가 가진 본질적 속성, 즉 복제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판화로 규정할 수도 없는 작품이다. 그렇게 그는 하나의 작품 속에 복제와 원본, 재현과 구성의 개념들을 중첩시킨다. ● 그는 아예 부분적인 이미지들을 더 크게 제작하여 큰 공간의 천정에 매달아 놓는 모빌형식의 작품도 시도했다. 인천국제공항 공모전에 응모하여 선정된 이 작품은 프레임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들과 공간 사이의 흥미로운 중첩의 과정을 확장된 스케일로 재시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아이들이 그린 드로잉들이 있다. 작은 도화지에 그려진 그 그림들은 피카소의 그림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직관적이고 매력적이다. 그 아이들의 관찰 속에는 선험의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미지들을 촬영하여 컴퓨터로 확대시킨 후 출력한다. 그리고 신체를 압도하는 크기의 종이 위에 먹지와 연필을 이용해서 그 이미지들을 재현한다. 연필속 단단한 흑연덩어리가 그의 행위를 통해 종이 위에 새로운 두께로 재탄생한다. 원본이 가진 매력과 특징이 광대하게 커진 스케일의 이미지속에서 더 기묘한 분위기로 환원된다. ● 그가 탄생 혹은 변용시키는 새로운 형식들의 바탕에 (그리 복잡하지 않은) 컴퓨터 처리기술이 활용된다. 컴퓨터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판화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고 표현의 확장을 도모하는 도구이자 가장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을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을 보는 이들은 작업이 가진 매체적 특성에 함몰될 필요가 없음이 분명하다.

나광호_비너스2_종이에 9B 연필_120×80cm_2012
나광호_Cooked and Raw_스테인리스 스틸_가변크기_2012

지평과 확장 ●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동안 체득해왔던 자신의 미학적 관점과 매체의 응용기술, 그리고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활용한 작품군들을 골고루 선보인다. 그의 작업에 골고루 내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은 모두 일정한 확장의 가능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가 그동안 시도해 온 창작의 방법론들이 바로 그 단서들이다. 사실 자신만의 원본 이미지들을 포기하고 외부에서 얻어진 이미지들만으로 자신의 작품을 구성해내는 일은 젊은 작가에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스스로 견고한 확신과 각오를 갖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자신의 작업에 제기될 수 있는 독창성에 대한 의문에 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앞으로 나광호가 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것은 결국 그 이미지들의 배열의 원리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문제다. 그가 이 이미지들을 무엇에 근거하여 조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작가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견고한 논리를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 ● 이러한 대목에서 중요하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나광호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이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앞으로 자신의 작업의 영역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가 그의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사회 속에 투입시키기를 바란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될 수 있고 일종의 커뮤니티 아트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기존의 범주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답해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 열쇠 중 하나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 고원석

Vol.20120706b | 2012 OCI YOUNG CREATIVES-김채원_나광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