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프레임

OUT OF FRAME展   2012_0629 ▶ 2012_0719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민성식_송은영_신수혁_윤정선 이경_이경미_이만나_이문호 이지은_임상빈_정규리_홍성철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아웃 오브 프레임시를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Nostalgia, 1983, Andrei Tarkovsky) ● 물론, 대상에 대한 해석과 번역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겠으나, 이미 정리가 되어 있는 문장을 정답이 있는 문법에 대입하여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수많은 오류들이 발견되는 것은 허다한 일이다. 하물며 이것을 번역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거나, 나아가 거기에 자신의 주관을 덧입혀 재해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굳이 영화 노스탤지어를 통해 타르코프스키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은 위의 대목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시를 포함한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그것을 번역하거나 해석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그것들을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관객의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유독 미술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예를 들어, 문학과 음악, 무용 등의 경우 작가가 이미 지정해 놓은 정답이 명확히 존재하고, 관객이 이것을 곡해하여 오답을 내 보였을 때 창조자는 그것을 지적하며 교정해 주고자 하는 의욕을 보인다. 그에 반해 미술은 작가가 관객의 오답과 오독, 그리고 왜곡을 포용할 줄 알고 나아가 그것을 즐기는 여유까지 보인다는 부분에서 – 때로는 관객의 오답을 다음 작품에 반영 하기도 하는 –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민성식_카누타기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2
송은영_장면13-석류_리넨에 유채_112×194cm_2009

관객의 해석에 관대하다는 측면에서는 영화 또한 미술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인터뷰에서 '엔딩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라고 멘트를 날리는 것이 이제는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양 인식 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영화와 미술이 비슷한 선상에 놓여져 있다는 근거는 또 다른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두 가지 장르 모두 인간의 다른 지각 보다는 시각활동의 범주에 근접하게 속한다는 부분과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생활 속 침투도가 높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쉽고 그들의 비평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치원 아이에서부터 70세의 어르신까지도 미술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내비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그 의견이라는 것이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 내지는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식의 다소 감정의 극단적 표출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으나 무대미술이 적극 도입된 현대무용이라든지, 팝음악의 템포로 편곡된 클래식, 문학의 영화화 등은 궁극적으로는 관객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가 그들의 해석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창조자의 입장 표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수혁_Untitled1201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12
윤정선_0426 10:4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2×91cm_2012

물론, 영화와 미술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도 있다. 미술의 결과물이 비현실적으로 비추어지지만 사실 작가의 철저한 자기반영이라는 것에 비해 영화는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나 실은, 감독의 계산에 의해 연출된 비현실적 장면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술과 영화가 모두 현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미술의 경우 그러한 현실을 표현해 내는 과정에 있어서 굳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첨가 한다거나, 혹은 일부러 현실을 비현실적 장면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영화는 처한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극대화 시키거나, 혹은 반대로 비현실적으로 보이도록 거짓을 삽입시킨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보여지는 결과물을 목격하며 그 상황을 현실이며 실재라고 오인하지만 사실 그것은 감독의 철저한 계획과 의도에 근거하여 덧붙여지고, 잘려나가 편집된 허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는, 뷰파인더의 바깥쪽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감독의 비현실적 결과물에 부합하지 못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장면들이 바로 현실인 것이었을 테다.

이경_Picture_Bd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2
이경미_San Francisco on the table_oil on constructed birch panel_120×120cm_2012

이번 전시의 제목인 '아웃 오브 프레임'이란, 말 그대로 화면의 바깥 부분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로 영화용어로 사용되곤 하는데, 영사기에 필름을 잘못 끼워서 두 가지의 영상물이 한꺼번에 한 화면에 보이거나 스크린의 바깥쪽에 보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촬영감독의 카메라 액정의 시야, 다시 말해 뷰파인더에 보여지는 부분 이외의 바깥 부분을 말하기도 한다. '아웃 프레임'과 '인 프레임'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미술가들은 영화에서 말하는 '아웃 오브 프레임'을 프레임 바깥쪽에 방치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결과물을 관객이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희망하면서도 그것의 과정에 있어서는 무수한 속임수를 집어 넣는 것과는 달리, 미술은 그저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프레임 안으로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 제시한 스토리의 연장선에서 나름의 결말을 기대하는 수준이라면, 미술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그것의 결과물을 처음 작가가 의도했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 각자의 삶에 조망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앞서 언급한 영화와 미술의 극명한 차이이며 표면적으로는 영화가 좀 더 효과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술이 관객의 경험과 감정을 확대 재생산 한다는 측면에서는 영화보다 더 열려있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본 전시는 바로 이러한 미술의 태도를 영화의 상황과 비교하여 검증해 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만나_The Court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2
이문호_G_잉크젯 프린트_100×150cm_2012

근본적으로는 물론 참여 작가의 작품들이 지극히 영화적 연출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본인은 이번 전시를 만들어 가면서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했다. 화면을 과감하게 분할한다거나, 극단적으로 줌인, 줌아웃을 하거나 부감시를 이용해 마치 와이어를 달고 공중에서 촬영한 듯한 액션이 있는가 하면, 필터링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로 장면을 바라보거나 스모그를 분사한 듯한 그로테스크한 스릴러를 발견하기도 했다. 성장영화처럼 담담하게 기억을 조망하며 회고하는 드라마도 있었고, 대상을 마치 트라이포트 없이 카메라를 손으로만 들고 촬영한 핸드헬드 샷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SF도 있었다. 익숙한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작가만의 판타지를 창조하여 제시해 놓고, 그것을 주관적인 관점이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관객의 관념을 흐트러트려 놓는 작가들도 있고, 혹은, 반대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대상이나 풍경을 역시 주관적인 형태로 풀어내어 놓고, 관객 또한 그것을 바라보며 작가의 입장과는 또 다른 주관적 감정을 얻어가도록 설정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지은_excavation_EVA_95×90cm_2012
임상빈_People-Bali 1_람다 프린트, 디아섹_38.1×139.7, 99.06×139.7cm_2011

이렇듯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감성을 영화적 효과를 빌어 제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현실을 근거로 하였으나 그것의 결과물은 껍데기 보다는 이면에 간직하고 있는 감춰진 의미들이 더 중요한 맥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을 관객들에게 제시는 하되, 카메라의 뒤에 서서 개입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본다. 그렇다고 이들이 냉담하게 팔짱을 낀 채 관객의 반응을 냉소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제시한 삶에 대한 주관적 실체와 통념적 허구를 관객은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가, 그것들과 관객 각자의 삶의 편린들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어긋나는가를 목격하며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으로, 때로는 흐믓한 미소로 우리들에게 화답할 것이다.

정규리_A boy in another pl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80cm_2012
홍성철_String hands 0051_print on elastic strings, steel frame_52×80×8cm_2012

소위, 역량 있는 감독을 지칭하는 통념적인 수식어가 탄탄한 내러티브와 정교한 플롯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능력이라고 할 때, 그 감독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는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채집한 풍경이야 말로 절대적 사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미술을 막론하고 역량과 진정성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은 난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기, 뛰어난 작가적 역량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모두 갖춘 세 명의 영화 감독, 세 편의 영화, 그리고 열 두명의 예술가를 소개해 보겠다. ■ 윤상훈

Vol.20120629d | 아웃 오브 프레임 OUT OF FRAM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