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초상

육명심展 / YOOKMYONGSHIM / 陸明心 / photography   2012_0629 ▶ 2012_0903

육명심_김기창

작가와의 만남 / 2012_0705_목요일_03:00pm_롯데갤러리 대전점

2012 롯데갤러리 대전점 육명심 『예술가의 초상』展

2012_0629 ▶ 2012_0717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영업 시간과 동일

롯데갤러리 대전점 LOTTE GALLERY DAEJEON STORE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82.42.601.2827~8 www.lotteshopping.com

2012_0821 ▶ 2012_0903 관람시간 / 10:00am~8:00pm / 백화점 영업 시간과 동일

롯데갤러리 광주점 LOTTE GALLERY GWANGJU STORE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7-12번지 광주은행 본점1층 Tel. +82.62.221.1808 www.lotteshopping.com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한다. 사진도 그런 것 같다. 특히 기록성을 바탕으로 한 사진이 더욱 그렇다. 이사진들은 찍은 지 거의 대부분 40년에서 30년이 넘었고 단지 십분의 일 가량이 그 후에 보충 촬영한 것들이다. ● 예술가를 주제로 한 사진작업에서 1972년은 잊을 수 없는 해이다. 내가 만 40세가 되고 서라벌예술대학 사진과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아마추어에서 본격적인 프로 사진가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일대 전환기였다. 사진이 본업이 되어 더 이상 취미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일생을 거는 본격적인 사진작업을 해야만 했다. 제일 먼저 정한 주제가 '예술가' 시리즈였다. 마침 나가는 대학이 예술대학이라 많은 예술가들을 빈번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고 손쉽게 다가갈 수가 있었다. 사진을 통한 이들과의 만남은 다른 예술분야를 폭 넓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으며 동시에 내 작업도 하게 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었다.

육명심_박경리

그 당시 예술가들 가운데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가 서정주(徐廷柱) 시인이다. 이 시인을 찍어 한 문학잡지에 실었다. 한참 후에 문인들이 잘 모이는 다방에 나갔다가 한 원로시인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따지는 듯이 크게 나무랐다. 서정주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인데 감히 어떻게 그런 꼴로 사진을 찍었느냐는 것이었다. 꼭 시골 무지렁이가 변소간에 볼기를 까고 쭈구려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참으로 민망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서정주 시인은 그 사진을 아주 좋아했다. 그 동안 신문이나 잡지기자들이 숱하게 자기 사진을 찍었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단연코 최고라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붓글씨로 본인이 직접 시 한 편을 써 줄 테니 내 사진하고 맞바꾸자는 제의를 했고 나는 기꺼이 그러마 했다. 지금도 표구점에서 꾸며놓은 그 액자는 햇빛에 약간 변색되었지만 잘 보관되어있다.

육명심_장욱진
육명심_서정주

다음으로 생각나는 이가 서양화가 오지호(吳之湖)화백이다. 1978년 전남 광주시 지산동 자택으로 오후 4시쯤 찾아갔었다. 우리 둘은 나이차이가 아버지와 아들뻘인데도 만나자 마자 단번에 의기(意氣)가 투합했다. 그리고는 11시반 가까이 신나게 대화를 했다. 지금처럼 통행금지 없는 시대였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대화는 밤새도록 계속되었을 것이다. 대화가 이토록 깊이 있게 잘 통하다 보니 사진도 저절로 쉽고 편하게 찍혔다. 다른 때에 비해 시간과 필름 소비가 절반이 채 안되었음에도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이 경험은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예술가들을 찍으려면 먼저 그 사람의 개성과 특징 그리고 예술세계를 조사하여 그것을 카메라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나'와 '너'의 마음의 소통이었다. 서로의 가슴을 활짝 열고 둘이 하나로 만나는 일이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고스란히 다 드러내면 그대로 찍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단지 사진을 잘 찍겠다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방과의 끈기 있는 정신적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상대방에 대한 이 같은 접근방식의 변화는 훗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찍는 것도 소중한 생성과 생멸의 만남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육명심_김기영

또 생각나는 이가 중광(重光)스님이다. 그를 만난 때가 1970년대 후반인데 아직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이전이라 유명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실린 사진을 잡지에 발표한지 1주일도 안 되어 조계종 총무원 징계위원회에서 스님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를 처음 만나보니 기인(奇人) 이전에 아주 걸물이고 대자유인이었다. 그는 내가 선생이라니까 제자가 많겠다고 했다. 나는 제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이 어째서 제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제자란 선생을 잡아먹는 놈인데 아직 나를 잡아먹은 학생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더 했다. "나는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어라하고 도망가야 한다." 이 말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학생들에게 사진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히 말해 '똥 싸듯이 사진을 찍어라 였다. 그는 고개를 끄떡끄떡하며 덥석 내 손을 잡고서 이제부터 둘이 친구가 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매스컴을 타면서 갑자기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와 거리를 두었다. 그는 그 까닭을 물었다. 이제 만인에게 크게 알려져서 가까이 가면 나는 꼼짝없이 엑스트라 밖에는 안 되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이제까지의 경우와는 아주 달라서 기억나는 이가 하나 있다. 어떤 시인을 찍기로 사전에 약속을 하고 다방에 나갔다. 둘이 마주보고 대화를 하다 보니 그가 나를 깔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인물 사진은 서로가 대등하게 가슴을 열고 통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찍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는 내 직업이 뭣이냐고 물었다. 약간 속이 뒤틀린 나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나는 직업이 본업하고 부업하고 둘이다. 아마 나에게 묻는 것은 부업인 것 같다. 그는 대뜸 물었다. 도대체 부업은 뭣이냐고. 이 물음에 고즈넉이 그를 바라보며 내 부업은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훈장이라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러면 본업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때 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그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차를 마시고 그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함께 저녁을 먹고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이 경우는 처음에 불쾌하게 만났다가 마침내 좋은 사이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던 특이한 사례였다.

육명심_황병기

여기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찍힌 이가 소설가 박완서이다. 그녀를 촬영하는데 자그마치 반년 넘게 끊임없이 조르고 매달려야만 했다. 전화기 너머로 수없이 끈질기게 설득을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사양을 하며 애를 몹시 태웠다. 보통은 이런 경우 나도 자존심이 있어서 진작 단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가의 열렬한 애독자인 아내와 딸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찍어야 한다는 배후의 압박으로 결코 단념할 수 없었다. 이른 봄에 교섭을 시작해서 여름도 지나 가을에 접어들어서야 가까스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촬영하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세상을 떴다. 아, 이 얼마나 천운인가! 그렇게 안 찍으려고 자꾸만 뒤꽁무니를 빼던 그녀를 끝내는 찍었다는 사실이. 만약에 중도에 그만 포기했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내와 딸도 소설가 박완서를 결국은 찍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다행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 이렇듯 오랜 세월이 흘러간 이제야 마침내 한 권의 작품집으로 전체적인 마무리를 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리고 지난날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보게 된다. 만약에 지난날 이 사진들을 찍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찌할 뻔 했나 하는 생각을 하니 천만다행이다. ■ 육명심

육명심_중광

롯데갤러리에서 사진과 함께 일생을 보낸 작가 육명심의 『예술가의 초상』전을 개최합니다. 60년대 말 문인의 초상에서 시작된 예술가의 초상 작업은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작가는 사진가로서가 아니라 그들과 같은 예술인의 입장에서 정신적인 교류를 통하여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으며, 예술가로서의 비범함에 우선하여 인간적인 면모, 갈등과 고뇌,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롯데갤러리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는 김기창, 장욱진, 서정주, 이외수, 황병기 등 동시대 최고 예술가들의 평범한 일상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롯데갤러리

Vol.20120629a | 육명심展 / YOOKMYONGSHIM / 陸明心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