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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5:00pm
기획 / 장흥아트파크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그림보기의 관점을 달리 해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객체로서 그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주체로서의 감상…. 다시 말해 작가의 사고와 시야를 빌려 대리 체험해보는 겁니다. 'Being John Malkovich(존 말코비치 되기)'란 영화가 있습니다. 한 빌딩에서 우연히 발견한 통로를 통해 15분간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기발한 상상에서 영화는 출발하죠. 이 상상처럼, 작품을 볼 때 그 창조자인 작가로 나 스스로를 감정이입 시켜봅시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락그룹의 공연이나 동영상을 볼 때 메인 보컬이나 리드 기타리스트로 스스로를 투영시켜본 경험을 아마도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실 겁니다.
그리기를 그리기 ● 하태임은 그리기를 그리는 작가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형상과 추상 모두)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인데, 하태임의 경우 그리는 행위 자체를 그립니다. 캔버스에는 색면들이 배치됩니다. 그 위에 칼라 밴드들이 그려지는데 각각을 구분 짓는 요소는 칼라입니다. 칼라 밴드들은 다시 다른 칼라 밴드들에 의해 겹쳐지고, 중복된 부분에는 두 가지 칼라 밴드들이 만나서 생겨난 중간색이 드러납니다. 이들 칼라 밴드들은 한 번의 붓놀림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일견 일필(一筆)로 휘둘러진 것 같지만, 수회에서 많게는 수십 회의 동일한 붓놀림에 의해 생겨난 거지요. 하태임 작품이 처음에는 색 위주로 보이지만, 차츰 그리기라는 행위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 일반적으로 그림(painting)은 그리기(paint)와 연관됩니다. 그러나 그림(painting)과 지우기(erase)는 잘 연결되지 않는군요. 오히려 반대 지점에 있는 개념 같습니다. 그래서 여타 작가들에게 있어서 그리는 행위와 그려진 대상은 중요한 반면 지우는 행위와 흔적이 작품에 드러나게 하지 않습니다. 간혹 지운 자욱이 남아 있는 작품도 있지만 이는 표현의 한 형태일 뿐 본질은 아닙니다. ● 그런데 하태임에 있어서 그리기는 지우기까지 포함합니다. 위에서 말한 중첩된 칼라 밴드들, 특히 하얀색 밴드들은 '그리기' 보다는 '지우기'에 가깝습니다. 시를 쓰거나 악상이 떠올라 악보를 적을 때, '지운다'는 것은 자체를 무(無)로 되돌리는 겁니다. 그런데 하태임의 회화에서는 그 양상이 달라 집니다. 작가는 지우는 행위가 남긴 흔적을 작품에 담아 새로운 그리기로 전환시킵니다. ● 만약 내가 이 작품을 그린 작가라면, 과연 지우기가 가능했을까요? 상상해 봅시다. 쉽지 않습니다. 제가 하태임 작품을 두고 반복해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일탈의 강력한 기운이 배어납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캔버스와 아크릴을 사용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분히 동양적입니다. 지워지는 대상과 지우는 행위 모두 동일한 방식이 사용됩니다. 이는 소멸과 생성이 한 지점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통로'라는 작품명도 이러한 맥락에서 함께 생각해 볼만 합니다.
강요하지 않는 그림 ● 한번이라도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빈 화폭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강렬한 지 알고 있습니다. 사각형 프레임은 그리는 사람에게만 오롯이 주어진 우주입니다. 그것이 크건 작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말입니다. 창조자로서 작가는 이 우주를 완성하기 위해 혼신을 다합니다. 그리고 지우고 색을 선택하는 행위 만으로 충실하고 충만한 우주를 만들기 위해 작가 하태임은 스스로를 작품 속에 녹여 담습니다. ● 하지만 하태임의 작품에는 강요가 없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다른 세계(감상자 더 나아가 소속된 사회)가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럴 리도 없습니다. 하태임의 회화는 지극히 겸손하지만 또 지극히 매력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작품 속으로 들어와서 나와 시야를 공유하자고. 특히나 대작 앞에 설 때면, 감상자들은 작가가 그리고 지우는 레이어(layer) 속에 포함되어 있기를 스스로 희망하게 됩니다. ● 굳이 형상과 추상의 구분을 두자면, 추상회화는 형상회화에 비해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추상회화는 거침없는 상상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마케팅에서부터 자기개발에 이르기까지 '스토리텔링'이 배회하는 현실에서, 하태임 회화가 제공하는 암시와 은유는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단, 객체로서의 감상자에서 벗어나 주체로서 감상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눈과 마음을 열었을 때만 가능합니다.
하태임 되기 ● 영화 'Being John Malkovich'에서 머틴-플레머 빌딩의 7과 1/2층에 있는 통로로 들어가면 존 말코비치의 두뇌에서 15분간 머물 수 있습니다. 전시 'Being Ha TaeIm'이 열리는 인사아트센터 3층 전시장으로 오면 우리들은 작가 하태임의 생각과 시야 속에 잠길 수 있습니다. 15분 이상도 가능합니다. ■ 송희진
Vol.20120628c | 하태임展 / HATAEIM / 河泰任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