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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5:00pm
후원 / 문화예감
관람시간 / 10:00am~07:00pm
에이블 파인 아트 엔와이 갤러리 서울 ABLE FINE ART NY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Tel. +82.2.546.3057 www.ablefineartny.com
대지를 재생하는 작업, 낙원에의 희망을 찾아서 ● 시간과의 투쟁 혹은 추상으로 표현한 풍경 신문으로 종이죽을 만들어 건조시킨 후 그것을 다시 일정한 넓이로 잘라 화면에 조금씩 쌓고 있는 최은정의 작업은 지루하고 강박적인 특징이 있다. 이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시간과의 투쟁이자 자신을 시간이란 사슬로 묶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싸우는 것이든 마치 정해진 공정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기계처럼 반복적인 노동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든 그 결과는 화면에 주름의 형태로 켜켜이 쌓아올린 물질의 누적으로 나타난다. 단단하게 건조된 종이란 물질의 축적은 곧 누적된 시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물질과 시간의 관계는 상호교환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대단한 집중도와 지구력을 요구한다. 이처럼 편집적이리만치 동일한 작업방식에 매달리는 작가로 로만 오팔카(Roman Opalka)와 카와라 온(河原溫)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최은정이란 젊은 작가를 이미 국제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두 작가와 단순 비교한다는 것이 과도한 것이긴 하지만 작업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 비교의 필요는 있을 것이다. 화면에 숫자를 계속 적어나가면서 자신이 기록한 숫자를 읽고 그것을 녹음하는가 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여 함께 전시하는 오팔카나 자신이 일어난 시간을 기록하여 엽서로 발송하는 카와라 온의 작업은 결과보다 현재에도 지속 중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최은정에게 있어서 집요하도록 지루한 반복의 과정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팔카나 카와라과 비교할 때 최은정의 작업은 그 결과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앞의 두 작가가 형태보다 개념이 앞서는 반면 최은정에게 있어서 형태가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파문처럼 소용돌이치는가 하면 끊겼다 이어지는 표면의 결은 바람에 의해 대지에 그려진 모래사막의 주름이나 융기와 함몰을 거듭하여 형성된 산맥과 계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미시적으로는 잘 직조된 직물의 구조나 피부를 구성하는 세포조직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작품을 구성하는 단위들의 결집과 이완의 반복은 시각적 리듬을 형성하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이 그 표면에만 머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조직 사이로 난 고랑까지 더듬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 미세한 구조가 아니라 경계(edge)가 분명한 형태, 다시 말해 흡사 원생동물과도 같은 유기적 형태이다. 이것을 감싸고 있는 외부는 고른 평면으로써 짙은 갈색의 대양(大洋)이나 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형태들이 마치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한 부분, 즉 산, 강, 평야는 물론 곶(cape)이거나 만(gulf) 또는 반도(peninsula)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추상으로 표현한 풍경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재생(rebirth)하는 대지 ● 최은정의 작품에 대해 많은 이론가들은 대체로 시간의 축적에 대해 주목했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중요한 개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시간에 지나치게 주목할 경우 최은정의 작품이 지닌 형태와 방법이 지닌 특징에 대해서는 자칫 소홀해질 수 있다. 먼저 그의 작품이 사각틀을 경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화적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 부각된다. 그의 작품이 '추상으로 표현한 풍경'처럼 보이는 이유도 형태 못지않게 사각공간을 프레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넓은 모노크롬의 가장자리로 얕게 융기하여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맥」이란 작품은 두텁게 바른 커피가루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바 매우 의도적이고 섬세한 작업과정과 아울러 우연하게 나타난 결과까지 수용하여 작품의 회화성을 고양시키고 있음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신문조각을 켜켜이 이어붙인 비정형의 복잡한 형태가 가장자리의 확고한 경계에 의해 '닫힌 공간' 속에 위치한다는 점은 평면과 입체가 한 작품에 공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형태를 규정하는 기본 물질은 종이죽이 된 신문과 커피전문점에서 제공한 폐기된 분말이다. 복잡한 구조의 조직들이 으깬 신문을 쌓은 것이라면 표면의 갈색은 커피가루이다. 신문이나 커피가루는 다 같이 효용성을 상실한 '잉여물'이자 재생(recycle)을 위한 재료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에서 재생은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가 사각 프레임 위에 그려가는 혹은 구축해 가는 형태가 유기적인 생명체의 단위이거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폐기된 물질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맥락의 작품으로 제작하는 것은 곧 자연이나 대지의 재생(rebirth)이란 차원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대지의 재생'을 위한 시도라고 보는 것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최은정의 작업은 시간과의 투쟁 또는 그것에의 순응을 통해 자기존재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한편 이 지독한 집중의 과정 속으로만 함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폐기된 물질의 재활용을 통해 자연이나 대지의 재생은 물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까지 재생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지닌 갈색의 어두운 색조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죽은 자연'에 바치는 진혼곡이 아니라 잃어버린 낙원에의 기대를 지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소 논리적인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텅 빈 공허한 대지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다시금 복원할 수 있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최태만
Vol.20120627h | 최은정展 / CHOIEUNJUNG / 崔銀貞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