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진 생명의 詩論

고은주展 / GOEUNJOO / 高銀珠 / painting   2012_0622 ▶ 2012_0711 / 월요일 휴관

고은주_생명의시론 1_한지에 수간채색_91×117cm_2011

초대일시 / 2012_0622_금요일_04:00pm

* 『kb 박물관 노닐기-한국화 피카소와 만나다』 창제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됩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열려진 생명의 시론(詩論), 분열된 꽃1. 미적 관조(觀照), 상징으로서의 꽃 상징에서 신성으로, 신성에서 예술로 변화했던 주제로써 꽃만큼 사랑받아왔던 소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와 인도의 연꽃에서부터 그리스 신화에서의 장미, 동아시아의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에 이르기까지, 그 꽃의 다양한 종류만큼 의미와 상징은 넓고도 깊다 하겠다. 고은주의 꽃 그림 또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상상의 매개체이자 함축된 시를 닮은 문학으로 다가온다. 물론, 한국화 작가로서 고은주의 재료와 기법이 작가 내면의 세계와 적절하게 조합됨으로써, 상상력과 상징이 증폭된 꽃의 세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꽃-영원한 어머니의 표상」 시리즈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꽃잎의 미시적인 세계를 그려나감으로써, 여성, 어머니에 관한 상징을 조형화하였다. 사실, 이는 작가의 어머니의 삶을 모델로 시작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한국적인 정서라 할 수 있다. 즉, 헌신과 사랑, 무한 생명을 주는 존재로서의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다.

고은주_생명의 시론_한지에 수간채색_260×175cm_2012
고은주_생명의 시론_한지에 채색_162×162cm_2012
고은주_생명의 시론_한지에 채색_130.3×193.9cm_2012

섬세한 세필로 그려나가고 다시 고운 분채로 채색한 고은주의 화면은 골골이 번져나간 핏줄과 같은 잎맥들과, 숨을 쉬는 듯 그 형상에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이는 마치 작은 산맥처럼 보이기도 하고, 폭포수처럼 보이기도 하며, 아득히 번져나가는 물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고은주의 화면을 감상하는 것은 무한의 세계, 관조의 영역으로 함몰되거나 이동하는 경험과 닮았다. 즉, 이는 불가(佛家)에서의 참선이나 관상(觀想)의 과정과 유사하다. 극락의 부처를 만나기 위한 깨달음의 과정은 서쪽으로 지는 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日沒觀), 안팎에 투명하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물)로 된 땅을 생각하는 것(水想觀), 여의보주에서 부드러운 연못물이 흘러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寶池觀) 등이다. 꽃이 물, 생명, 창조, 어머니와 동일시되고 동일한 원형(archetype)의 상징들을 공유한다고 보면, 고은주의 꽃은 정신으로서 승화된 단계의 미적 관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는 매개체임은 분명하게 된다. ● 사실, 이러한 미적 관조에 관하여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장자(莊子)이다. 미적 관조에 도달하기 위하여 장자는 지식을 초월하는 심재(心齋)와 욕망을 초월하는 좌망(坐忘), 나를 잊는 무기(無己)를 제시한다. 심재와 좌망과 무기를 통하여 허(虛)의 상태가 됨에 따라 곧, 순수지각활동이 일어나게 되며 미적관조를 위한 절대 자유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 자유의 상태는 중국 미학자 쉬푸관(徐復觀)의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미적관조는 주체가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심경이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더욱더 미적 향수를 얻게 된다고 한 것과 상통한다. 따라서 고은주의 꽃은 생물학적 꽃의 경계(실재, 경험, 인식)를 뛰어넘어 절대 자유의 세계를 열어주고 미적 관조로 끌고 들어가는 매개체로서의 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이것은 작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물질적 상상력으로서의 물로써, 몽상가(작가)에게는 세계의 눈을 열어주는 물과 꽃은 동일시되고 있다 하겠다.

고은주_생명의 시론_한지에 채색_162×162cm_2012
고은주_생명의 시론 3_한지에 수간채색_60×60cm_2011

2. 운기화생(雲氣化生) 그리고 분열하는 꽃 ● 작가 고은주가 근자에 보여주는 연꽃의 만남은 결정적인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연꽃은 다른 꽃들이 지니지 못한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들을 가지고 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의 기저에는 연꽃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브라흐만, 붓다, 호루스 모두가 연꽃에서 태어난 것으로 본다면, 연꽃은 물(水)이자 세계이며 대지(大地)로 인식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실, 이것은 이노우에 다다시(井上正)가 동양의 오래된 '기(氣)'의 사고체계를 정리한 '운기화생(雲氣化生)'에서 말하는, 기가 변화하여 물이 되고, 물이 변화하여 연꽃으로 탄생한다는 이론과도 상통한다. ● 그런데, 작가는 물과 꽃이 결합한 꽃의 강인한 생명력에 주안점을 주었던 관점을 물과 꽃을 분리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마치 비가 내린 창문 너머로 꽃이 어른거리거나 쏟아지는 물로 인해 꽃의 형상조차도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다. 이것은 꽃의 분열이며 해체이고, 꽃의 일탈이며 전복이다. 꽃이라는 물질 속에 숨어들어 있던 조용한 타자로서의 생명의 핵, 물이 조형을 갖고 외부세계로 빠져나와 하나의 존재자로써 삶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꽃과 물이 하나의 동일한 자아로써 동일체로 존재하고 있었다면, 신작의 꽃들에서는 꽃과 물 또는 꽃과 생명력이 자아와 타자로써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고은주_생명의 시론 2_한지에 수간채색_91×117cm_2011

따라서 타자로서의 물은 꽃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하나의 전능한 힘이 부여되거나, 스펙트럼이 되어 꽃의 형상을 반영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꽃과 물은 주체와 타자로서 다시 타자와 주체로써 결합하게 된다. 타자이면서 주체인 것. 그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물아(物我)가 합치된 인식의 지평이며 또한 꽃의 상징을 형성하기 이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상계로서의 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꽃에 관한 확장된 인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극히 동양적인 작품의 내용에서 라깡(Lacan)이 말하는 상상계와 상징계를 넘나드는 조형이 보이는 것은 이처럼 우연은 아닌 것 같다. ● 이를 통해 꽃이 가진 오래된 상징들이 분열되고 해체되고 또는 폭로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꽃을 여성으로 규정한다면 여성의 본성을 분해한 여성의 해체론적 폭로가 될 것이며, 꽃을 문명이라면 문명의 해체와 반성이 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은주의 해체는 꽃의 고정된 상징의 틀을 부수거나, 상징의 문을 열고 유연하고 개성적인 작가의 내면과 사고들을 주입하고 드러내고자 함인 것이다. 따라서 고은주의 작품들은 단일하고 고정된 상징의 내용들이 풍부한 스토리를 가진 문학적이며 시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꽃의 분해와 해체를 통해 더욱 견고한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발견되기도 하며, 꽃과 물의 간극 사이로 스며드는 표정 있고 문학적인 삶의 언어들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는 다음 연작들이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며, 성숙한 인식의 경계에 선 작가의 잔잔하지만 섬세하고 희망적인 목소리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1.6) ■ 長江 박옥생

Vol.20120622a | 고은주展 / GOEUNJOO / 高銀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