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216c | 류정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류정민(Ryu Jung-Min)의 제 3의 공간 ● 공간에 뿌리를 내리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격리되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를 작동시킨다. 동시에 이에 맞서 공간을 창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새로운 공간을 향해 이동한다. 이 두 가지 본능은 간섭과 반작용의 원리를 반복하며 기존 공간을 허물고 수 많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이 같은 반복된 간섭 과정 속에서 공간은 다양한 기억의 파편들로 채워지게 된다. 이는 공간의 속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화, 맥락화, 정치화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는 공간(space)이 아닌 장소(place)이다. 공간을 추상적인 미학의 대상이 아닌 언제든 그 정의가 바뀔 수 있다는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과 공간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 장소(place)라는 개념을 삽입해서 이해 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과 공간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유기적인 이종교합이다. 그래서 장소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논리적이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특징을 부여받고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수 있게 된다. ● 류정민의 사진 작업은 이 장소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의 장소성에 대한 집착은 독일유학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작업 방향을 찾기 위해 찾아간 독일은 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높은 방어막과도 같았다. 언어장벽과 문화적 괴리감은 행동범위를 축소시켰고, 이질성과의 대면은 어느새 그의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그 곳의 문화 속에 거주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섞이지 못했던 류정민은 자신의 일상 속 공간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면서 신체적으로는 독일에 머물며, 정서적으로는 한국에 뿌리를 둘 수 밖에 없었던 다이어스포라의 한계이자 특권이었다. 철저하게 관찰자의 위치에서 하나의 문화 속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류정민의 객관적인 거리두기는 층층이 쌓아 올린 건축적 구조를 논리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화석층의 단면을 연상시키는 류정민의 화면구성은 현대인들의 삶을 무겁게 짖누르고 있는 억압된 현실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는 기억을 어떻게 재구성할까의 문제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공간에 대한 이해는 소외감과 괴리감의 기억이 내재된 장소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이 같은 관찰을 통해 작가는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정체성, 문화의 이종교합, 개인과 전체 사이의 갈등 등의 구조적인 딜레마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류정민은 어떻게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보편적인 메세지로 바꿀 것이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토리를 위해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반영의 기능을 과감하게 거세하고 시간과 공간 개념을 왜곡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공간을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표현매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의 도구가 아니다. 디지털 콜라주를 통해 현실 속에 없는 공간을 기억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의 파편들, 기억의 파편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이미 현실과의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판타지이고, 한국이면서 독일이며, 과거이면서 미래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 이 같은 이항대립의 배타성에 반기를 들고 있는 류정민의 공간개념은 에드워드 소자 (Edward Soja)의 「제 3의 공간 The Thirdspace 1996」을 연상시킨다. 화면구성에 있어 전경과 후경의 구별이 없어졌고, 반복을 통해 특별한 기억을 일상화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하여 주관성과 객관성, 추상적인 것과 객과적인 것, 실제와 가상, 반복과 차이, 정신과 신체, 의식과 무의식, 동양과 서양 그리고 일상과 역사 등 이원론적 개념의 경계가 해체되었다. 이렇게 구축된 도시풍경은 공간의 꼴라쥬라기보다는 파편화된 기억의 집적으로 보는 것이 옳다. 바벨탑처럼 구름 위까지 솟아 오른 「The Path of Error #4」 역시 길을 잃은 산업화, 도시화의 욕망과 동일시된다. 도시풍경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도시의 대한 느낌들을 화면에 투사하기 위한 조합이다.
기억과 공간, 즉 비물리적인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 모두를 꼴라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류정민의 첨단 디지털 꼴라쥬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양화의 문법을 계승하고 있다. 문맥과 문맥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그 충돌과 겹칩의 지점을 바라보는 시점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다중시점을 통해 바라봐야만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관객의 시점이 어느 한 지점에 뿌리를 못 내리게 하는 구조적인 장치이다. 류정민 자신이 그랬듯이 관객들 역시 화면의 구석구석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로운 시점의 이동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꼴라쥬는 오브제가 아닌 프로세스에 대한 관찰에서 힘을 얻는다. 그래서 류정민의 꼴라쥬는 하나의 미술기법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시대상, 역사와 일상을 결합시키는 하나의 철학으로 바라봐야 한다. ■ 이대형
Vol.20120621l | 류정민展 / RYUJUNGMIN / 柳姃旼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