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나무

이기완展 / LEEKIWAN / 李基完 / photography   2012_0621 ▶ 2012_0703

이기완_01041318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66×1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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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2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공간루 정동갤러리 SPACELOU JEONGDONG GALLERY 서울 중구 정동 1-23번지 Tel. +82.2.765.1883 www.spacelou.com

느린나무 ● 저수지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 있는 왕버들 나무 한 그루.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객에겐 졸음이 오도록 고즈넉하다. 그러나 그 나무가 물속에 뿌리를 내린 채 오랜 시련의 세월을 어떻게 견뎌 왔는가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오로지 나이테가 그 고통을 기억할 뿐. 물은 나무에게 어미와 같은 존재. 그러나 장성하면 새끼가 어미의 품을 떠나듯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저수지에 홀로 떠 있는 왕버들나무는 아마도 어미의 품을 떠날 수 없는 모성고착(母性固着)의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 인간에게도 고통을 기억하는 나이테가 있다. 삶의 트라우마(trauma)를 기억하고 있는 무의식의 어두운 창고가 바로 그 것. 그 곳으로부터 하나씩 상처를 꺼내 나무에게 말을 건네 온 사람. 8년 동안 예당저수지의 왕버들나무를 두고 사진 작업을 해온 이기완에게 나무는 친구이자 연인, 스승에 다름 아니다. 불안의 끝자락까지 가 본 사람만이 타인의 불안을 껴안을 수 있기에---.

이기완_11011300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106×160cm_2012
이기완_05101555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106×160cm_2012

사진가 이기완에게 수면은 나무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면은 나무의 영혼을 비춰주는 마법의 거울(magic mirror)이기 때문이다. 수면에 비친 왕버들의 그림자에서 불안과 안도, 탄생과 죽음, 욕망과 절제, 절망과 극복의 섬세한 감정 들을 포착한다. 마치 주술사가 수정거울을 통해 불가시의 현상을 바라보듯 역설적이게도 그는 나무의 실체보다 그림자들에서 나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읽어 내려 한다. 그가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광이나 나무의 전체적인 형상에 대한 관심보다 나무의 밑둥으로부터 가지, 잎, 뿌리에 이르기까지 명암의 계조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왕버들나무와 늘 이심전심의 편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아닌듯하다. 그가 "8년간의 짝사랑"이라 애증(愛憎)어린 목소리로 토로한 데서 그의 고백과 물음에 피사체가 묵언(黙言)으로 돌아 앉아버리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저간의 사정을 추측하게 한다.

이기완_01271318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106×160cm_2012
이기완_01251137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66×100cm_2012

'불안'의 불안한 동거라고 해도 좋을 이인삼각(二人三脚)의 불편한 관계. 그러나 그 균열적 거리의 확인이 작가에게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 우리들은 믿는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 시적 화자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우물을 떠나가고 되돌아왔던가! 설령 그가 새로운 소재로 관심을 돌릴지라도 오랜 친구 왕버들나무에게로 다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나이테가 고백하는 은밀한 얘기를 보다 성숙해진 마음으로 듣고 빛으로 우리 앞에 풀어 놓을 것이다. ● 이번 '느린나무'의 전시를 기점으로 사진가 이기완은 8년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왕버들나무와의 이별을 고하려한다. 얼마가 될 지는 작가도 예정할 수 없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 만나지 않더라도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 때문이다. 8년간 함께 해 온 왕버들나무와의 대화록을 조심스레 공개하면서, 새로운 작업에 임하는 그의 도정(道程)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기대하며 전시회에 부쳐 건승을 기원하고 싶다. ■ 박재섭

이기완_07191505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66×100cm_2012
이기완_08211905_디지털 파인아트 프린트_106×160cm_2012

이번 전시를 통해 '바람이 스쳐간 자리'를 찾아 보려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찾았는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8년 동안 변함없이 빛과 바람과 비와 눈 그리고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막아내며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던 나무 한 그루만 있었을 뿐이다. 이제 여기 사진들이 누군가에게 어떤 빛, 어떤 바람, 어떤 무엇으로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 이기완

Vol.20120621i | 이기완展 / LEEKIWAN / 李基完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