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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신정옥의 회화-꽃, 우주를 흡수하고 우주로 환원되는 존재 ● 아마도 꽃은 최초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그린 소재이며, 가장 오랜 소재들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그려서 고갈될 법도 한데, 이런 염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꽃은 지금도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꽃에서 새롭게 캐낼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 여지는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 꽃은 사물이되 특이한 사물이다. 그 속에 생기를 품은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고, 이처럼 매순간 변화하는 존재의 형태며 질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주의 깊게 보고, 사물과 존재의 이치에 공감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 사물과 존재는 얼핏 똑같은 것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처럼 매순간이 다르고 틀린데, 그럼에도 그렇게 인식되는 것은 지식의 오류와 한계와 자기 합리화 탓에 똑같은 것의 반복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내재화되어졌기 때문이다. 개념을 통하지 않고 보는 것, 바로 보는 것, 그럴 때에야 비로소 사물 자체가 보이고, 존재 자체가 보인다. 그렇게 매번 다른 꽃을 보고, 다른 꽃을 그리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꽃은 아름답다. 화가들이 꽃을 그리는 이유는 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을 그리는 이유가 다만 그 뿐이라면, 이처럼 지속적으로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려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꽃은 그 자체보다는 온갖 비유법 속에 살아있고, 비유법과 더불어 그 의미가 갱신되고 재생된다. ● 신정옥은 꽃을 그린다. 그러나 꽤나 감각적이고 잘 그림에도 불구하고 꽃 자체의 감각적 닮은꼴을 재현하는 것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꽃은 무엇의 메타포일 수가 있는가, 꽃은 어떻게 주체를 대리하는 매개가 될 수가 있는가, 어떻게 꽃에 자신의 인격이며 아이덴티티를 투사할 수가 있는가와 같은 문제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 만큼 그림에서 오는 감각적 쾌감은 덤이며 부수 정도로 봐도 되겠다. 그 만큼 꽃을 매개로 꽤나 의미심장하면서도 다른 지점을 짚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흔들리는 꽃, 사진과 회화 사이. 작가는 꽃을 그린다. 파스텔 톤의 색조가 꽃 자체의 물성보다는 부드럽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감지케 한다. 그런데 그 꽃은 뭔가 다르다. 꽃을 닮아 있으면서도 꽃에 대한 선입견을 재확인시켜주지는 않는다. 꽃이되 뭔가 애매하고 모호하다. 희뿌연 색상의 이미지가 중첩돼 보이는데, 아마도 미풍에 꽃이 하늘거리는 것을, 미세하게 흔들거리는 것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가장자리의 모호한 경계가 이런 분위기를 더하면서 마치 배경화면과의 차이를 지워 그 일부로 흡수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는 어디에 연유한 것일까. 바로 사진이다. 작가의 꽃 그림은 초점이 나가 피사체가 온통 희뿌연 실패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실패한 사진? 실패한 사진은 현대사진미학의 분명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현실에 대한 감각적 닮은꼴을 재현하는 것에 실패한 것인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사진의 경계를 넘어 회화의 아우라를 겨냥한 의도적인 실패일 것이다. 그리고 회화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실패한 사진을 모델 삼아 재현의 다른 지점을 짚어낸다. 아마도 재현을 매개로 한 사진과 회화의 관계는 서로의 표현영역과 범주를 확장시켜주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상호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며, 작가의 꽃 그림 역시 그 맥락에서 읽힌다.
피사체가 흐릿해지면 소재의 물성이 약화되고 분위기가 강조된다. 피사체가 분위기의 일부로 흡수된다. 배경화면과 모티브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서로 흡수되는데, 흡수가 지속되면 마침내 소재의 물성은 사라지고 유기적인 덩어리로만 남겨질 것이다(바로 이 현상이 연이은 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작가의 꽃그림은 소재의 물성과 유기적인 덩어리 사이에 펼쳐진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소재의 존재를 암시하면서 분위기가 강조되는, 어쩌면 회화의 아우라가 고조되는 한 지점 위에 멈춰 서 있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 중 상대적으로 더 완성도가 있어 보인다. 분위기는 회화 고유의 감각적 쾌감을 불러오는 계기이며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를 일종의 생기로, 꽃이 발하는 생명력의 표현 내지 표출로 볼 수도 있다. 소재의 물성이 약화되면서 오히려 그 생기는 더 강조돼 보인다. 작가는 바로 그 생기에, 존재가 발하는 생명력의 분출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생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연이은 작업에서 보다 적극적인 계기를 얻고 뚜렷한 형상을 얻는다.
S_Flower, 진동에서 리듬으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흔들린다. 파동을 그리며 확산하고 환원되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시간을 사는 존재라면 유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그럴 것이다. 다만 둔감한 감각에 어필되지가 않을 뿐, 세계며 우주며 존재며 사물은 밑도 끝도 없는 변화의 매트릭스 속에 던져져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고정된 한 순간을 사는 존재란 없다. 존재는 고정된 순간이 아닌, 그럴듯한 말로 순간들의 연속이 아닌, 분절되지 않는 진행과 과정 속을 사는 것인데, 그 진행과 과정을 운동성의 계기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고, 그 계기가 나타나지는 태가 파동이고 파장이다. 자기를 자기 너머로 확산시키는 운동성의 계기가 원심력이며, 재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지는 운동성의 계기가 구심력이다. 모든 존재는 이처럼 원심력과 구심력을 반복하면서 파동을 그리고 파장을 그린다. 그렇게 변화를 산다. 그 변화, 그 운동성, 그 힘의 계기가 에너지며 엔트로피며 기다. 그 계기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고,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패턴을 가지고 있고 결을 가지고 있다.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결인데, 물결과 바람결, 진동과 리듬, 그리고 춤사위와 여운은 모든 존재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결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천한 감각으로 볼 때 존재의 결은 그저 무분별하고 우연하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이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고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주기는 대개 영문자 S자 형태의 패턴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계적으로 S자를 그린다기보다는 크고 작은, 길고 짧은 정형과 비정형의 유기적인 곡선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작가는 바로 그 S자 형태의 패턴을 그린다. 기왕의 흔들리는 꽃에서 시작된 존재의 변화 내지 파동에 대한 인식을 일정한 주기와 패턴으로까지 진척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척된 작가의 꽃그림은 현저하게 해체돼 보이고 파편화돼 보이고 유기적으로 보인다. 파편화되다가 종래에는 그렇게 파편화된 부분과 부분이 어우러져 꽃의 모양새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유기적인 덩어리로 스미고 녹아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주는 단순한 물질 덩어리라기보다는 운동성의 계기로 볼 수가 있고, 감각으로 어필되는 우주의 질료는 그 운동성의 계기가 형상을 얻은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그린 꽃은 운동과 더불어 변화하면서 점차 자신이 유래한 우주의 일부로 흡수되고 환원되는 과정을 그린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우주의 일부로 완전하게 흡수되기 전,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변화와 운동의 과정 속에 놓인 꽃의 태를 그린 것이다. 그런 만큼 그림은 생기로 충만한 느낌이다. 기와 기가 서로 밀어내고, 덩달아 꽃의 모양새 역시 그 밀어내는 결을 따라 휘어진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존재의 경지가 느껴지고, 자연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읽혀진다. ● 이처럼 작가의 그림 속에서 꽃은 미세한 파동으로 흔들리다가, 기의 흐름을 따라 휘어지고 흩어지고 모인다. 어떤 그림에선 그저 존재의 최소한의 흔적과 궤적만을 남긴 채 꽃의 모양새가 지워지고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우주와 존재가 교감하는 과정이며 운동성의 계기를 그린 그림으로 정리해 볼 수가 있겠다. 미디어꽃(사회학적 지점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약간 다른), 흔들리는 꽃, 해체되는 꽃, 그 다음에 꽃을 어떤 차원과 경지로까지 끌고 갈지, 다음 그림이 자못 궁금해진다. ■ 고충환
Vol.20120620f | 신정옥展 / SHINJEONGOK / 申貞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