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어딘가...

김지혜展 / KIMJIHYE / 金智惠 / painting   2012_0620 ▶ 2012_0725

김지혜_마음의 풍경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75cm_2012 김지혜_마음의 풍경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2 김지혜_마음의 풍경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75cm_2012

초대일시 / 2012_0620_수요일_06:00pm_갤러리 이즈

2012_0620 ▶ 2012_0626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인사동길 52-1)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2012_0701 ▶ 2012_0725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성안미술관 SEONGAHN ART MUSEUM 제주도 제주시 아라1동 2349-1번지 Tel. +82.64.729.9176 cafe.daum.net/seongahnart

여기와 다른 거기 ● 김지혜의 풍경에는 시공간적 간격이 있다. 세 개로 나뉘어 진 작품은 물론이고, 한 작품 내에도 불연속적인 시공간이 침입한다. 그것은 바이러스처럼 동질적 몸체를 변화시키고, 스스로도 재 맥락화 된다. 삽입된 공간은 투명하여 기존의 공간과 함께 보여지지만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선은 분명하다. 그것은 유기적 총체성이라는 가상에 의존하지 않고, 단절을 통한 연결을 강조한다. 불연속적 시공간은 차이를 통해 연결되는 것이다. 작품 속 서사 또한 간격들 속에서 다시 편집되어 읽혀진다. 간격은 쉽게 봉합될 수 없을 만큼 크기도 하고, 약간의 차이만을 두기도 한다. 간격을 통해 풍경은 단지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읽혀지고, 풍경 속 인물들 역시 그들의 상상과 생각을 새롭게 전달한다. 말없는 그림이 말을 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시공간적인 간격을 통해서이다. 간격은 단지 비어있음이나 무의미가 아니라, 보충과 의미를 향한 운동을 낳는다. ● 김지혜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과격한 도약, 또는 미세한 차이는 한 장소에만 붙박혀 살지 않는 현대인의 보편적 조건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다녔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의 오랜 자원봉사 활동을 끝내고 다시 고향 제주에 돌아가 결혼하고 정착했다. 그녀는 그것을 모천회귀로 표현했다. 연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그녀 또한 길고 긴 우회를 통해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작가는 제주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좁고 지루하다고 말한다. 섬은 보다 큰 세계를 향해 떠나야하는 잠정적인 장소였기에 그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적어도 섬을 떠났을 때의 마음은 그러했다. 그러나 간격이 고향을 다시금 제대로 보게 했다. 30대가 되어 되돌아간 제주의 풍경은 다시금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인물 중심의 작품은 풍경으로 전환된 계기가 되었다. 2007년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마음을 잃었습니다'(전시부제)에 출품된 작품들은 할머니, 어머니, 친척 등 가족의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졌다.

김지혜_해가진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53cm_2012

옥상에 널린 하얀 이불 빨래 같은 천위에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인물상들은 분명 그리움과 관련이 있다. 바람은 널린 천위에 아로 새겨진 마음을 그곳에 전달 해 줄 수 있을까? 그 전시에서 실은 찢어진 것들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사된 듯하다. 시공간적 간격은 상실감과 그리움을 낳고, 작품이란 현실속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 소원 성취의 장소가 된다. 작품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장이 되는 것이다. 고향은 '마음속 어딘가'(전시부제)에 늘 자리하고 있었지만, 억압된 요소였는데 서서히 의식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김지혜의 작품에서 도시풍경들 속에 삽입된 시골풍경들은 도시인들 마음 속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으로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는 도시와 시골이 자연스럽게 공존하지 못하고, 유리벽과도 같은 단절 속에서 서로를 욕망하고 있을 뿐이다. 중심의 주변에 대한 착취를 근간으로 하는 생산중심 사회가 종결되지 않는 한, 도시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시골의 자연적 풍요로움은 조화되기 힘든 모순된 가치로 남아있을 것이다.

김지혜_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53cm_2012

김지혜의 작품에서 모순적인 것들은 가상의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경하게 병렬된다. 그것은 양단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듯하다.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유흥가 앞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던 작가가 모천회귀를 한 계기는 캄보디아에서의 생활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익숙함으로부터의 단절이었고, 단절은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여지가 되었다. 그녀는 오지와 다를 바 없는 열악한 그곳에 봉사활동을 하러갔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 그곳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 온 곳이기도 했다. 물질적 풍요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마음 때문이다. 마음은 이번 전시에서 많은 작품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키워드이다. 마음은 방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풍경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마음은 풍경으로 펼쳐져 심경이 되기도 하고, 이질적인 공간에 접속하기 위해서 6면체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김지혜_비밀의 방-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2 김지혜_비밀의 방-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2 김지혜_비밀의 방- 깊은 곳에 담아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2

전시의 작품들에서 마음은 자연이나 휴식의 이미지와 밀접하다. 작품 「마음의 풍경」은 3면 풍경화로,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가운데의 큰 화면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이상적인 여름 휴가지로 꿈꿀법한 한산한 해변 가이며, 오른쪽 화면은 어릴 때 미역 따러 다니던 장소이다. 변치 않은 자연 풍경을 암시하듯 큰 나무로 형상화되어 있다. 나무는 몇 꺼풀만 덧입은 나이테를 숨긴 채 덧없이 지난 세월을 묵묵히 증거 하고 있다. 왼쪽은 지금 사는 동네의 벚꽃이 만발한 잘 가꾸어진 가로수길이다. 섬이든 대륙이든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비슷하게 꾸며진 익숙한 풍경이다. 가운데 풍경과 달리 양쪽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불연속적인 시공간이지만,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이 분리된 시공간이 한데 연결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두 그림은 작가 개인과 연결된 과거(또는 현재에도 변치 않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제가 확실하지만, 가운데 부분은 불확실하다. 그것은 특정한 광경이기도 하지만, 도시 대중이 가지는 자연 속 휴식에 대한 보편적인 이상에 가깝다.

김지혜_마음의 방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11

연대기와도 같은 연속적 시간은 서로 떨어진 캔버스만큼이나 단절되어 있다. 단절로부터 새로운 비전이 생성된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은 『들뢰즈의 시간기계『에서 단절은 그자체로 완결되는 원형도 아니고 숙명을 재구성하는 것도 아니라, 모든 평형 상태를 끊임없이 쪼개 나가며 그때마다 새로운 굽잇길, 새로운 단절을 인과성에 부여한다고 말한다. 기억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장면들 간의 이행은 공간 내에서 행동들의 연대기적 연속이 아닌, 시간 내에서 연상적인 도약으로 발생한다. 김지혜의 「마음의 방」 시리즈는 도시와 시골을 대조한다. 「마음의 방Ⅰ」에는 거대한 조형물이 있는 광화문 근처인데, 나들이 온 가족이 바라보는 곳은 입방체 안의 시골 풍경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도시인들이 상투화 시킨 피상적 시골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거기는 여기와 다르게 나타난다. 「마음의 방Ⅲ」에서는 흑백 대도시 풍경 안에 정육면체 구조물이 있다. 숲 속에 서있는 소녀가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은 회색 콘크리트이다. 그것은 지금 이 도시를 바쁘게 걷고 있는 익명적 대중들의 상상 속 장소와 인물인 것이다.

김지혜_마음의 방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11

「마음의 방Ⅱ」는 아무도 없는 해변위에 놓여 진 하얀 입방체를 보여준다. 실내에는 푹신한 의자가 있고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에 몰두한다. 90×90cm 크기의 3개의 정사각형 캔버스로 이루어진 「비밀의 방」은 풍경 보다는 서사가 강조되어 있다. 여기에서 서사는 명백한 기승전결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밀봉된 상자나 봉투처럼 해석되고 해독되어야 한다. 비밀은 말 그대로 비밀스럽게 누설되지만 결정적 의미는 계속 지연된다. 가운데의 「비밀의 방-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대나무 숲에서만 말 할 수밖에 없는 비밀이다. 오른쪽에 배치된 작품 「비밀의 방-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이야」에는 커피숍 안에 포장된 박스가 하나 열려 있다. 그것은 가운데 그림의 축소판이다. 꼭꼭 싸놓은 비밀은 '이건, 비밀인데...'로 시작되는 비밀 누설의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왼쪽의 작품 「비밀의 방-깊은 곳에 담아둬」는 침대 위에 한 여자가 풍경이 담긴 박스를 들고 생각에 감겨 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비밀이다. 축소모델로 다른 그림들에 등장하는 가운데 그림 자체가 바로 박스 안에 들어있는 그림처럼 수수께끼이다. 비밀은 자연은 물론 내밀한 사적 공간, 사회적 공간 등에서 크기와 차원을 달리하면서 순환 된다.

김지혜_마음의 방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0.9cm_2011

재현적 이미지에 의존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화두로 삼는 김지혜의 그림은 단지 눈에 보이는 그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기호가 된다. 김지혜의 작품에서 고전적 재현을 특징짓는 유기적 총체성의 개념은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야 하는 미지의 것이지, 확고한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 작품 속 서사는 비밀의 해독과도 같다. 총체성은 출발이나 목적이 아니라 그자체가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할 가상이다. 그러한 이상은 고전주의를 지배했으며, 유사(類似) 고전주의로 전락하기도 했던 사실주의에도 연속되었고, 오늘날 진부한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시한 일일 드라마부터 3D 첨단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현실감은 이미 사라진 실재, 또는 애초에 부재했던 실재를 가상으로 복귀시킬 뿐이다. 이음매 없는 총체성의 가상은 손쉬운 유통과 소비를 위한 장치이다. 로도윅은 같은 책에서 부분들에서 집합들로의 통합, 그리고 집합들에서 전체들로의 통합이 이미지와 세계와 관객이 진리를 재현하는 거대한 이미지 속에서 하나가 될 때 절정에 달한다고 본다. 이 이미지는 '조화로운 총체성이라는 지식의 이념이며, 바로 이것이 고전적 재현을 지탱'(들뢰즈)한다. ● 그러나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조각나 있는 김지혜의 작품에서 실재는 손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복원될 순수한 원형은 없다. 추억도 매번 만들어지고 갱신되는 것이다. 과거는 미래만큼이나 불확정적이다. 김지혜의 작품 속에 끼어 든 서사 중의 하나인 비밀은 발견이 아니라, 창조될 서사의 면모를 상징한다. 간격들은 사전에 세워진 관념들 대신에 다시 창조되어야만 하는 것들을 강조한다. 번잡한 도시 속에서 그들이 상상하거나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시공간의 균열을 봉합하지 않고, 간격을 통해 구조를 열어놓는다. 뜬금없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육면체는 이질적인 시공간의 블록을 이루며, 닫혀있는 듯 하지만 개방된 기호이다. 이 결정체들은 도시적 삶을 규정짓는 동일성 대신에 바깥을 들여온다. 바깥은 대다수가 맹목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지배적 게임 원칙을 상대화시키고, 대안의 세계를 현시한다. 그것은 도시적 삶을 이루는 수많은 소비품목의 하나로 환원될 수도 있고, 대안의 삶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그림들을 그린 작가에게는 환원이 아닌, 도약이 일어났다. ■ 이선영

Vol.20120620e | 김지혜展 / KIMJIHYE / 金智惠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