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센텀아트스페이스 Centum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505번지 센텀호텔 3층 Tel. +82.51.720.8040~1 www.centumartspace.co.kr
캔버스, 풍경을 담다. ●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로는 현재 베드로대성당 내에 위치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서명의 방을 제작한다. 그는 4면과 천장에 그 유명한「아테네 학당」(1510-1511),「파르나소스」(1510-1511)등을 완성하는데, 이 모든 작품들이 그 당시의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상징들을 내포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각각의 그림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같은 방향과 양 옆에 그려진 작품들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며, 결국 전체적으로는 당대의 패러다임을 표시한다. ●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의 설계는 현대미술에 들어서도 눈에 띈다. 색면화가인 로스코는「로스코 채플」(1971)을 계획하면서 팔각형 구조와 조명 그리고 각 벽면마다 들어갈 작품들을 꼼꼼히 디자인했다. 종교적 의미의 팔각형 구성과 엄숙한 분위기의 빛은 한층 더 그림을 돋보이게 하며 인간을 초월하는 숭고한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 이와 같은 전시 기획에 대한 관심은 미술사 곳곳에 내재 되어있으며, 이번 강희란의 전시에서 잊지 않고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총체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설치된 작품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갖으며 서로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시는 정해진 감상법이나 일정한 동선을 피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다른 모양과 두께로 표현한 작품은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조화로 승화되고, 풍경이 된다. ● 강희란의 전시『캔버스 풍경』은 자연이나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풍경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캔버스들의 표정들을 그려놓은 것이다. 작가는 보편적인 미술 재료인 붓이나 연필 등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캔버스의 가능성들을 발견한다. 작가의 노력으로 발견된 그 가능성들이 바로 이번 전시를 통해 다양한 조형언어로 재해석되어 관객에게 말을 걸고 있다.
풍경 코드 1. 열린 공간 ● 얼마 전, 개인우주업체에서 쏘아올린 민간우주선 '드래곤'이 무사히 지구에 귀국했다. 이 꿈의 우주선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미지의 우주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황금 티켓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손끝에서 아슬아슬 잡히지 않았던 우주여행이 실현된 것은 막대한 자본과 첨단 기술력을 제쳐두고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강한 의지에 의해서다. 무엇이든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근본적인 심리작용이 아닌가. 이러한 기본적 욕구가 닫혀있던 우주의 문을 활짝 열리게 한 것이다. ● 강희란의 작업은 이러한 기본적 욕구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평소처럼 마주했던 캔버스가 달라보였다. 캔버스는 물감이 채색되는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다가왔다. 그것은 이미 수단으로서가 아닌 자율적 조형 언어로서의 캔버스였다. 이 캔버스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 두께만큼 들어갈 수 있는 깊이가 궁금했던 작가는 바늘과 사포를 손에 쥐었다. ● 그녀의 공간은 언제나 화두다. 수행자와 같이 한 올씩 뜯어내는 작업은 천으로 싸여있던 캔버스를 해방시켰다. 막혀있는 통로를 시원하게 뚫은 것처럼, 강희란은 캔버스의 공간을 만들었다. 열려진 캔버스는 깊이 있는 공간을 형성한다. 할 수만 있다면 캔버스의 깊이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다는 작가는 캔버스에 여러 겹의 천을 씌움으로서 깊이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공간이 무한히 생성된다는 점이다. 원래 있는 공간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다양한 모양으로 뜯어낸 화면들이 계속해서 겹쳐져 미학적 공간을 창조한다. 특별한 무늬들이 만드는 공간에의 향연은 관객의 상상을 자극한다. 반드시 신체적으로 느껴야 만이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 공간만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교감은 작품과 관객의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지거나 움직일 수 없어도 강희란의 작품은 관객의 상상을 이끌어낸다.
풍경 코드 2. 백색과 선 줄기 ● 캔버스이기에 드러나는 것들은 아마도 그것의 바탕색과 직조된 실들이다. 원재료의 특성을 살려내는 작가의 작업은 작품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인위적으로 캔버스를 변질시키지 않는 작가의 의도가 우연적 이미지들을 순수하게 그려내고 있다. ● 작가는 캔버스 자제가 하나의 회화가 된다고 보고 풍경을 그려나갔다. 캔버스가 온전히 회화가 된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다양한 실험을 거친 결과, 가장 적합한 방법이 캔버스 천을 뜯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드러운 천의 성질을 잘 드러내는 기법이었기 때문이다. 캔버스를 뜯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직조된 실이다. 그것은 공간들 사이에 위치한다. 천을 뜯다가 남은 줄기들은 작가에 의하면 선적 표현이라고 한다. 실들은 회화적 성질을 만드는데 일조하는데, 단조로운 이미지를 벗어나게 한다. 캔버스에 난 의미 없는 구멍이 아니라 작가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 필자가 아는 한 캔버스의 색은 변함없이 백색이다. 작가는 꾸밈없는 캔버스의 색채를 가지고 작업에 몰입한다. 한번쯤은 유채색이나 옅은 단색조의 색채를 바를 법도 한데, 작가는 백색을 고집한다. 단지 캔버스를 보호하기 위한 두어 번의 젯소 질이 전부다. 이것은 백색에 상징적인 의미를 두기 보다는 캔버스의 고유색인 백색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캔버스 자체의 본질이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백색 캔버스는 한국 모노크롬과 연결된다. 1970년대 선배화가들이 한국적 모노크롬을 선취했을 당시 백색은 단색화의 대표적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작가의 의도는 다를지라도, 백색 캔버스는 같은 연장선에서 논의될 여지가 보인다. 또한 단순한 형태와 깔끔한 처리방식도 모노크롬의 계보로 넣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논의가 다소 조심스럽지만, 강희란의 작업이 이어서 한국 현대 미술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믿기지 않은 만큼 기쁘다가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잠시 뇌리를 스쳐간다. 강희란은 이 순간을 작품에 담았다. 그녀의 상상 속에만 머물렀던 에스키스가 생명을 얻었다. 작가는 사물로만 치부되던 캔버스를 예술이 되게 했다. 단순히 물성적 캔버스가 감성적 존재가 된 것이다. 마침내 다빈치가 열망했던 영혼의 힘이 강희란의 작업에 잠재되어 캔버스 풍경을 만들었다. ■ 허금선
Vol.20120616k | 강희란展 / KANGHEERAN / 姜嬉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