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조각을 말하다.

2012 Incheon, Sculpture of Incheon展   2012_0614 ▶ 2012_0622 / 6월18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614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고정수_권지영_김건주_김기민_김소미 김수부_김승환_김주호_김지선_김지원 김지원_김진석_김창곤_김창기_김창빈 김회준_류훈_박경민_박상희_박소영 박지아_박효주_백현옥_서효은_석세란 설용현_송운창_신년식_신종택_신준식 신현돈_신현욱_안병철_안병철_안선영 안형모_염시권_오상일_오세희_오정숙 오창근_오형석_이동용_이미선_이상길 이상하_이선형_이의성_이장원_이종규 이찬우_이창호_이혜원_이훈_임상섭 장익제_장형택_전성희_정국택_정수모 정현_진은수_차경진_천광희_최성철 최은미_최은자_최종하_홍승남

협찬 / 가온갤러리 기획 / 인천조형작가협회

유튜브 동영상 / youtu.be/gjNyXnf3Tls

관람시간 / 09:00am~06:00pm / 6월18일 휴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갤러리 INCHEON EDUCATIONAL AND CULTURAL CENTER FOR STUDENTS GA-WON GALLERY 인천시 중구 인현동 5번지 Tel. +82.32.777.9140 www.iecs.go.kr

인천-조각을 말하다 ● 인천조형작가협회 주관으로 기획된『인천-조각을 말하다』라는 전시는 인천조각 70년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간 단절과 분열로 비쳐지던 인천조각계가 공존과 협업이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인천조각가 협회, 인천조형작가협회, 인하대와 인천가톨릭대 등 지역대학 출신의 조각가들이 의기투합하여 현대 인천조각의 전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 조각그룹중 하나인 '현대공간회'가 가세함으로써 인천조각의 폭과 층위를 확장하고 지역조각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조각과 인천조각 ● 한국근현대조각이 김복진이라는 걸출한 조각가를 기점으로 시작된다면 인천근현대조각은 조규봉을 기점으로 출발한다. 조규봉은 1942년 동경미술학교를 조각과를 졸업하고 해방 후인 1946년 '조선조각가협회' 창립발기인으로 활약하였고, 1947년 월북 후에는 김주경 등과 평양미술학교 창설을 주도한 사람이다. 이미 조규봉은 미술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데 초 조선미전에 출품하여 특선한 이래 연3회 특선 경력의소유자로 윤효중과 더불어 당시 한국조각계의 쌍두마차인데, 월북한 이유는 단순히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은 예술가들이 발붙이고 살기에는 버거운 곳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1946년의 조선조각가협회 회원의 면면을 보면 조규봉을 위시로 하여 김두일, 윤효중, 문석오, 이국전, 김정수, 윤승욱, 김종영, 이암표, 이성화, 이성, 백문기 등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김복진이 타계한 후였기 때문에 이들이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해방 후 한국현대조각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이들을 본다면 국전중심의 아카데미즘으로 조각계를 몰아갔는가 하면, 작품보다는 학맥과 인맥을 중시하는 풍토를 조장하였고, 기념물이나 동상조각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사행심을 부추기거나 수많은 타작(惰作)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오늘날 한국조각이 가진 다양한 가치와 동력의 원천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보여주는 조각적 기치들, 이를테면 다양한 재료의 적극적인 수용과 형태의 변용, 매체를 통하여 매체를 극복하는 기지, 사실성과 추상성의 절묘한 조화, 선과 매스를 통한 형태와 공간의 실험,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자각과 이에 대한 예술적 실천 등은 적든 많든 간에 이들로부터 빚을 진 결과이다. ● 또 인천은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산재해 있어 이와 조각과의 연계성이 강조되는 도시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은 다른 목적에 의해 회석되거나 평가절하 됨으로써 인천조각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인천현대조각의 결속과 저변확대를 모토로 한 인천조각회의 기점을 1984년 12월『인천조각 15인전』의 출범으로 삼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당시 설치된 「개항 100주년 기념탑」의 건립과정에서 인천의 전문조각가가 배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편 그 무렵 인천교대에 재직하던 "원형회" 창립멤버 오종욱이 대구로 떠났고 백현옥과 류훈이 인천조각계에 등장하기도 한다.

인천조각회 ● 제1회 인천조각회전 출품자의 면면을 보면 김창희, 백현옥, 장도수, 류훈, 이창림, 오상일, 김창곤, 정현, 김신옥, 김길남, 노용래, 이찬우, 오정숙, 양경희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인천을 떠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현재 새로운 실험과 모색으로 꾸준히 작업하면서 인천의 후배 조각가들을 이끌어 가는 중견으로 발돋움했다. 이어 1987년 7월 인천시 제1공보관에서 제2회 인천조각회전(인천조각12인전)이 열린다. 이 전시의 태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이철명선생은 작가선정 방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늘의 인천미술에 있어서 조각인은 없는 곳일까 하는 물음에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내일의 인천조각을 투시해 볼 필요가 있기에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는 제1회시와 마찬가지로 인천출신을 우선하였으며 인천에서 학교 졸업한 것을 두 번째로 그리고 인천에서 재직 중이거나 재직경험을 가진 작가로 모여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 다시 말하면 인천에도 훌륭한 조각가가 많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인천의 조각가라 함은 인천출생이거나, 인천에서 각급학교를 졸업한 작가, 그리고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그러한 경험이 있는 조각가로 비교적 범위를 넓게 정하고 있다. 이점은 아마도 인천이 갖는 개방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 후 1988년 인천시공보관의『인천조각15인전』에 이어 1989년에는『인천조각21인전』으로 80년대 인천조각전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작품의 양과 질 면에서 매우 다양하고 실험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주지하다시피 당시 한국미술계는 추상미술로 대표되는 모더니즘미술운동이 생기를 잃고 표류하고 있었고, 민중미술이 새로운 좌표와 이념으로 투쟁할 상대방을 찾아 숨고르기를 할 때였다.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무차별 유입으로 미술가들은 이를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 반영할 것인가 고민하는 한편, 소모적인 논쟁으로 리얼리즘을 포함한 모더니즘이 완전히 정착하기도 전에 탈모더니즘을 선언하는 모순적 위치에 빠져있을 때였다. 제4회 인천조각회전은 이러한 미술계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재료의 수용으로 조각의 형식적 가능성을 모색하고 설치미술의 도입이나 오브제의 사용, 그리고 기법의 다양성을 통한 조각언어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정상기, 이강재, 신종택, 최은미는 원목이나 모래, 철, 합판 등을 사용하여 설치형태로 작업함으로써 전통적 조각개념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양상을 보여주며 김신옥, 석세란, 김창곤, 송필용, 최상순 등은 인체의 과감한 생략과 변주로 형태의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한편 당진 김창희나 백현옥, 이창림, 오정숙, 고정수, 노용래, 오상일, 이찬우 등은 자신들 특유의 인체감각을 바탕으로 개성 넘치는 인체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전술한 4번의 전시회를 통하여 인천조각회는 80년대 인천조각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90년대의 좌표를 설정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 2000년대에 이르러 인천조각회는『2000년-조각가가 그리는 그림전』,『2002년- 꽃과 조형전』등을 기획하여 조각의 다양성과 회화적 가능성 실험에 천착하는 한편, 젊고 발랄한 신진들을 영입하여 활기를 더해간다. 유재용, 박정선, 신정화, 천지현, 홍민석 등의 가세는 자칫 타성화 될 수 있는 협회활동에 패기와 관성을 불어넣어 인천조각회전의 밝은 미래를 가늠케 해주었다. 이에 2003년 신세계갤러리에서 있었던『인천조각가협회20주년 기념전』은 여러 면에서 뜻 깊은 전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백화점 갤러리의 이점을 살린 테라코타 소품전 판매수익금으로 불우이웃돕기를 실현하는 한편 '흙과 불'이라는 본질로 돌아가 회원들의 순수창작의지를 실현하고 사회참여의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시 김길남 회장은 "이번 테라코타소품전은 일반 대중도 미술품을 부담 없이 소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조성된 기금이 어려운 여건에서 학업하며, 가장의 역할까지 수행해야하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피력하고 있다. 이어 2006년『色이 있는 조각전』은 한동안 물질로 정의되어 오던 조각재료를 색으로 은폐시킴으로써 비물질의 빛과 형태를 드러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물성의 존재에 관한 되물음을 통하여 물질을 강조하는 역설적 표현을 시도했다. 특히 인천조각회는 최성철, 김낙준, 이상하, 오정숙 등 조각에 색채를 부여함으로써 물질과 비물질 간의 관계를 재정의 하고, 조각표면에 회화성을 드러냄으로써 조각을 풍부한 표현가능성의 영역으로 이끈 조각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획은 설득력을 구가한다. 2007년의『인천도시환경을 위한 조형물 제안전』은 인천의 도시발전 프로젝트에 부합한 다양한 조형물 제안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특정한 내용이나 형식을 주제로 채택함으로서 타성화된 전시형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지역에서 장르별 그룹전은 맹목적으로 해당 장르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버림으로써 작가들의 게으름을 방조하고 긴장감을 감소시켜 전시의 하향평준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전시타이틀로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볼 때 오히려 충분한 다양성과 표현가능성을 담보하는 양식(糧食)이 될 것이다. 그 전시에서 내건 '이용할 수 있는 재료'라는 주제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인천조형작가협회 ● 2007년 결성되어 2009년 첫 전시를 개최한『인천조형작가협회전』은 "새로운 의식과 감성으로 무장한 조각가, 평론가, 기획자로 구성된 발기인들이 모여" 준비 했고 창립식을 개최하였다. 당시 인천조각가협회와 성격과 방향을 달리하는 조각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지역미술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전문미술인들의 양적 확대(신종택)"를 지향하며 출발하였다. 김승환, 김진석, 신종택, 안선영, 장형택, 정국택, 정수모, 차경진, 최성철, 최은자, 허백 등 11인의 조각가가 참여한 창립전에서 재료와 형식, 기법과 양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컬러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동년 12월 열린 두 번째 전시회에서 회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문화가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는 시대이므로 예술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이고 개척적인 의식은 필수요소라고 말하며 환경과 생태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이후 인천조형작가협회는 조각이라는 완결된 작품개념에서 자유로운 입장을 견지하며 시공간적 서사과정으로서의 입체, 설치, 영상, 평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을 종횡하며 협회전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늘 주제전을 개최함으로서 논의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 인천조형작가협회가 이러한 조각적 현실을 파악하고 '조형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하여' 주제를 정하고 기획전을 이끌어 간 것은 중요한 이정표다. 인천조형작가협회가 주제를 고수하는 것은 중진 작가들의 모임인 인천조형작가협회의 출발이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율배반적 태생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너무 주제를 한정시키면 작가들의 표현적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형식적인 것이든 내용적인 것이든 간에 주제를 세우고 그것에 접근해가고자 함은 오늘날 전시를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접근태도 일 것이다. 시대적 문제의식에 촉수를 드리우고 진중하게 논의하고 이의제기하고자 하는 태도는 작가로서의 기본적 소임이자 존재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 특히 오늘날의 미술에서 주제는 작가가 주입하여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객에 의해 해석되어지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는 여전히 '무엇'을 만들고 표현하고자 하는 주체적 지위에 있기는 하나 관객역시 작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작품을 인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적극적인 존재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게 주제로 표출되고 있는가 보는 것은 여전히 현대미술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지만 그것은 미술 또는 미술환경이라는 거대담론에서 극히 일부로 작동되는 요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통하여 소통을 추구한 이번 작품전을 통하여 사회적 현실과 인간, 그리고 시대정신과 미술형식을 담은 기지넘치는 조형세계를 꾸준히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향후 인천조각의 향방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현대공간회 ● 1963년의 「낙우회」와 더불어 「현대공간회」 역시 서울미대조소과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발족되었다. 최종태의 회고에 따르면 「현대공간회」를 발기했던 청년조각가들은 4.19세대이며 기성세대에 대한 강한 불만과 저항의식을 지닌 반항아들로써 '국제사회에 동시 공존하며 민족적 자주, 자존적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참신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이 단체를 출범시켰다고 한다. (최종태「현대공간회에 바란다」『현대공간』1992, pp52-54.) ● 주지하다시피 「현대공간회」는 1968년 12월 11일 서울 삼보갤러리에서 창립전을 갖는다. 이때는 이른바 '선언'이 보편화 된 시기로써 이들 역시도 자신의 창작원리와 실천이념을 선언의 형태로 천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우리는 한국인으로써 이 국제사회 속에서 동시 공존하며, 민족적 자주, 독존적 긍지를 가지고 진부한 작가적 양심과 방황하는 정신적 풍토를 개선하며, 신시대를 증언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조형언어로써 참신한 공간을 창조한다." (1968년 12월『현대공간회』展 도록 중 「선언」에서) ● 이렇듯 이들은 전통적 조각형식을 진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공간을 창조하는 것을 모토로 하여 추상주의에 입각한 조형이념을 개진하고 있다. 이들 역시도 서울대학교 조소과 출신들로써 「낙우회」와 마찬가지의 학연의 성격이 강하나, 보다 구체적으로 창작원리를 개진하고 실천적으로 추상조각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 할만하다. 이 중 남철, 오종욱, 이정갑, 최병상은 철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음을 미루어 볼 때, 당시 철은 추상조각에서 이미 보편화된 재료로 선호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공간회」를 뒤이어 1969년에는 「청동회」(동인은 김복순, 김창희, 김시환, 임송자, 조승환, 황하진 등)와 「제3조각회」(1969년 7월에 창립, 동인은 김세경, 장정남, 심문섭, 오세원, 장도수, 전준 등), 「한국현대조각회」(1969년 9월 창립, 당시 동인은 박석원, 최기원, 박종배, 이승택, 김찬식)가 발족되었는데, 1970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한국현대조각연립전』을 통해 당시 조각의 위상을 집단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 한편 현대공간회는 2008년 창립 40주년기념전을 거제도에서 개최한 바 있다. "조각의 바다"라고 명명한 타이틀전에서 회원들은 한국현대조각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보여주었다. 공간과 시간의 예술인 조각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예술세계로의 근접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확인코자 했다는 이 전시에는 최종태, 이운식, 최병상, 송근배 등 한국을 대표하는 42명의 작가가 작품을 선보였다. ● 현대공간회가 2000년 이후 동문전의 한계를 불식하고 타 대학 출신 작가들을 회원으로 영입하여 서로간의 공통 관심사를 주제로 연 1~2회의 기획전과 학술행사 등 변모된 그룹으로서 조형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한국 조각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바람직한 일로 비쳐진다. 그동안 정기회원전과 더불어 지역탐방 워크숍 세미나『고성- 산불 치유 프로젝트, 2003』,『광양제철소 -철조각 심포지움, 2001』,『포스코미술관 초대전시 및 세미나-건축과 조각의 만남, 1998년』,『대우조선 -폐자재 이용 조각 심포지움,1995』등과 같은 프로젝트는 현대공간회가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다.

나가며 ● 조각 개념의 확장과 물질의 범람은 현대조각의 다양한 표현적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조각가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과 미적욕망을 성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형태로 재료의 실험이 조각이라는 범주에서 행해지고 있고, 오히려 조각이라는 협소한 개념보다는 '조형'이라든가 입체라는 명칭을 선호하고, 여기에 환경의 요소를 접목하여 디지털영상이나 설치분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조각가의 위상과 개념도 많이 달라졌다. 미켈란젤로가 말한대로 "대리석 속에 갇혀있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람"이라는 전지전능함에서 일탈하여 "동시대 환경의 일부로써 시대와 삶을 고민하고 이를 조형화하는 범부"로 환원되었다. 이에 따라 조각의 형태나 위상도 달라졌다. 과거 공공적인 건축물을 치장하거나 삼차원적 공간에 좌대와 입체로 존재하던 형식은 입체, 영상, 설치, 콜라주 등으로 다양화 되고 재료도 고체는 물론 액체, 기체, 광선 등으로 확장되었다. 과거 시지각에만 호소하던 존재방식도 촉각, 후각, 청각 등 오감을 자극하거나 보다 적극적인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조각공원이나 놀이터 등에서 시민의 친구가 되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 시민들은 여기에 걸터앉거나 기대고, 오르내리며 또 이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전시가치에서 사용가치"로 변한 미술품의 첫 번째 실현케이스가 된 것이다. ● 오늘날 인천 조각계는 새로운 도약과 분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신진조각가들의 유입으로 조각계의 폭과 층위가 다양해지고 기성의 조각가들도 안주하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이다. 또 조각가들의 뜻과 이념이 다양해져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는 조각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는 점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현상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예술의 역사도 통합과 분화를 통하여 저변을 확충하고 발전을 모색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인천-조각을 말하다』라는 연립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늘 새로움의 지평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치시키고 실험과 모색이라는 씨줄과 날줄을 총총히 꿰어가며 부단히 작업하는 작가적 근면성과 자신감이 담보 될 때 인천조각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이점이 또한 인천조각을 이끌어 온 조각가들의 사명이자 존립근거일 것이다. ■ 이경모

Vol.20120614b | 인천-조각을 말하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