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OCI YOUNG CREATIVES

신정필_박미례展   2012_0607 ▶ 2012_0627 / 월요일 휴관

신정필_제 3의 눈_철, 레진, 형광등_140×140×118cm_2012

초대일시 / 2012_0607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신정필_박미례

후원/협찬/주최/기획 / OCI 미술관

관람시간 / 10:00p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일상성에서 의외성으로, 지각된 사물에서 표현된 사물로 - 신정필의 "시야 밖의 시야"전 ● 르네상스 시대 『회화론』의 저자 알베르티의 초상조각(부조)에는 주인공의 얼굴 이외에 눈 하나가 따로 부조배경에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얼굴의 생김새보다도 이 특이한 표현에 더 시선이 가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의 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도 눈은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중요한 통로라고 할 수 있으며, "보는 것이 믿는 것" 혹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눈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고 있다. 조각가 신정필은 바로 이러한 믿음, 즉 특권화된 시각과 본다는 것의 절대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신정필_시야 밖의 시야_나무, LED_24.2×170×37cm_2012

신정필의 작업은 주변의 사물에서 시작된다. 우선, 자신의 일상이나 여행에서 문득 시선을 끄는 사물을 선택한다.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을 동원한다.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이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인 눈을 사용하여 사물을 관찰한 다음,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 방식으로 그 세부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것이다. 가능한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 그는 과학자처럼 사물을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할한다. 핵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부분까지도 면밀히 조사하고 관찰한다. 흔히 부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그 사물의 본래 기능과 관련해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작가는 이 분할된 조각들을 자신만의 새로운 재료로 환원하여, 사물의 외형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술자처럼 아주 꼼꼼하게 재조합한다. ● 그의 시선을 끈 사물 중 하나가 비행기였다. 작가는 비행기의 구성요소인 엔진, 프로펠러, 날개, 꼬리날개 등을 면밀히 관찰한 후 각각의 부분들을 만들고, 이를 꼼꼼하게 조합하여 비행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비행기는 비행기의 형상을 띠고 있을 뿐 비행기 자체는 아니다. 부분들을 재조합한 결과,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아 알고 있는 비행기와는 다른 "뜻밖의 사물"이 탄생했다. 이로써 작가는, 우리가 사물을 인간의 눈으로 "정확하게"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지각하고 인식할 뿐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는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제기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사물을 파악하고 분류하면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물에 대한 인식은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 즉 특정한 지식체계(구조)를 기반으로 정립된 것이라는 점에서 인식의 한계를 노정한다. 때문에 지금 내가 지각하고 인식한 것은 객관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한낱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개인의 경우에도, 주체가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의 지식과 지각체계를 바탕으로 대상을 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신정필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만든 비행기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비행기가 아니라 작가 신정필이 지각한 비행기다. 이처럼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순간 요청되는 것은 바로 사물을 다르게 구성할 수 있는 상상력이다.

신정필_Design for the third eye_RP 프린트_55×30×25cm_2012

이번에 신정필이 선보이는 "뜻밖의 사물"은 눈동자와 망원경으로, 이는 인간의 시각과 직접 관련된 사물들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코나 귀보다는 주로 눈에 의존하여 환경을 파악하고 인식한다. 특히 눈동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데 절대적인 기능을 하지만 실제로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제한적이다.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시각의 범위도 상하 약 130도, 좌우 190도 정도에 그친다. 이는 눈동자가 한쪽으로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신정필은 생각한다. 그래서 눈을 고정시키는 장치를 제거하고 그 장치를 내부에 집어넣는다면 완벽하게 360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눈동자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제거한다. 그 결과 커다란 눈동자는 공중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눈동자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 망원경은 어떠한가? 실재하지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을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현미경과 망원경이다. 천체망원경은 가시적인 시야 밖으로 시각을 확장시켜주는 도구로, 신정필은 이 천체망원경을 잘게 분할해서 면밀하게 재조립해도 결과는 역시 망원경이 될 것이라는 가설 하에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과학자와 기술자처럼 치밀한 공정을 거쳐 제작한 망원경은 형태상으로는 망원경과 닮았지만 달이나 별자리를 볼 수는 없는 사물이 되고 말았다. 대신 우리는 망원경을 감싸고 있는 현란한 빛에 빠져든다. 이와 같이 작가는 사물의 기능을 교란시고 전복시켰지만, 우리는 그가 만들어 놓은 망원경을 탓하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사물"은 더 이상 일상의 사물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사물이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시야 밖의 시야"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미술가들은 자신만의 시각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는 동시에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지각방식에 대해 고민해왔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 사물의 표피가 아닌 구조에 집착했고, 피카소는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바라본 사물의 형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신정필 역시 사물의 본질에 대해 얘기하지만, 이 본질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드러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물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인간의 시각을 이용하고 과학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사물의 본질은 인간의 눈으로 인지 가능한 범위 너머에 있음을 환기시킨다. ● 인간의 인지 능력이나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는 자칫 작품을 지루하거나 난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작업 방식 역시 과학과 기술이 도입되면 딱딱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정필의 작품에서는 사물의 바라보는 작가의 상상이 결합됨으로써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뜻밖의 사물"로 재탄생하게 되고, 이는 관람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관객은 마치 환타지 영화에 빠져들 듯이, 일상적이지만 결코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의 "새로운 사물"에 매료된다.

신정필_시야의 확장_청사진, 클래식 씰_가변크기_2012

신정필의 작업과정은 흥미롭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방법과 재료와 기법이 동원된다. 우선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한 후, 이를 컴퓨터 3D 작업으로 정교하게 구체화시킨다. 그런 다음 실제 손으로 제작에 들어간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나무와 철 같은 전통적인 재료에서부터 광섬유, LED 등 각종 신소재까지 다양한데, 작가가 제작 과정 전체를 직접 진행한다. 용접 기술자처럼 형태의 기본 틀을 깔끔하게 용접하여 만들고, 그 안에 전기 기술자처럼 복잡한 전선을 설치해서 LED 형광등을 설치하는 일, 그리고 합성수지로 외피를 캐스팅하여 전체를 조립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작가가 직접 해내는 것을 보면 그가 예술가인지 기술자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 미술가들은 기술자와 차별화되기를 원한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이 인문학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기술은 미술과 분리되고 미술가는 스스로를 기술 중심적인 전통적 장인과 차별적으로 인식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뒤샹의 등장으로 미술가들은 아이디어만으로도 작품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개념미술에서는 급기야 미술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미지마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에 개념적인 미술이 유행하면서 작가의 공들인 수작업에 별반 가치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 작가들은 수작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근래 젊은 조각가들 중에는 작업방식에서 기존의 조각가보다는 과학자 혹은 기술자와 더 흡사한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이 있는데, 신정필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사물을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는 기술자에 가까운데, 신정필은 스스로 이러한 작업과정을 즐기는 듯하다. ● 조각가이면서도 과학자나 기술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신정필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자녀의 창의성과 과학적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 사준 "과학상자"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세대다. 다양한 형태의 기계부품을 조립하고, 너트와 볼트를 조여서 갖가지 모형을 만들면서 성장한 세대임을 감안한다면, 신정필의 작업방식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찰흙을 붙이거나 돌이나 나무를 깎는 작업, 혹은 용접이나 주조 등의 기법으로 형상을 만들어가는 기존의 작업보다는 다양한 부품을 조립하여 형상을 완성해 가는 데 익숙한 세대가 우리나라 조각계의 새로운 세대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이들이 사용하는 재료 역시 기성세대의 조각재료와는 다르다. 신정필 역시 자신의 가설을 구체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선택한다. 나무와 철과 같은 전통적인 조각재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합성수지, 파리핀, 광섬유, LED 형광등 등 다양한 재료를 넘나들면서 조각의 폭을 확장시키고 있다. ● 신정필은 2010년에는 고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2011년에는 난지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예술과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융합시켜 새로운 작품세계를 펼쳐나갈지 자못 기대되는 작가다. ■ 김이순

박미례_길러진 식물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2

멀리서는 인간도 파리처럼 보인다.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a)황제의 재산인 동물 (b)방부 처리된 동물 (c)사육동물 (d)돼지 (e)인어 (f)상상 속의 동물 (g)길거리 개 (h)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미친 것처럼 날뛰는 동물 (j)셀 수 없는 동물 (k)낙타 털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진 동물 (l)기타 (m)막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 (n)멀리서는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 ● 근래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개발에 열을 올린 미술관들의 노력 덕에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특수를 누렸다. 그 대부분의 동물을 소재로 한 작업들은 팝적이며 유머러스하고 친근하였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동물은 가금류거나 펫이나 반려동물이 된다. 물론 죽음을 주제로 한 최근의 작업들을 보면 동물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동물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표현하는 대체물이다.

박미례_표본_캔버스에 유채_21×49cm_2012

자연사박물관은 단지 지식과 과학의 전당만은 아니다. 이성이 맹목과 광기와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자연사박물관은 사실 박제된 사체들의 전시장이다. 동물의 공동묘지이자 이성의 정신병동인 것이다. 어떻게 이성은 광기와 화해하는가?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의 관계를 통해서 성스런 동거가 가능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박제하는 세계에서 동물의 박제는 문제거리가 아니다. 보르헤스가 상상으로 작성한 '(b)방부 처리된 동물'만이 존속하는 세계에서는 인간을 구성해온 온갖 이야기, 관념, 상상도 모두 박제된 자연사박물관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 사실 '자연사(자연의 역사)'란 이상한 말이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지 인간이 부여한 의미의 역사를 갖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자연사는 목적을 포함한 인위적 조어이며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 자연은 역사를 갖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인식하고 명명하며 사용하는 동물은 문화에 포함되며 사회-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러니 근대 이후 과학의 이름으로 획득한 성과를 진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독단적일 수밖에 없다.

2012 OCI YOUNG CREATIVES-신정필_박미례展_OCI 미술관_2012

자연을 독과점하면서, 동물을 대상과 의미에 가둬놓음으로써 인간은 세상을 정복한다. 인류의 영원한 전보를 위해 동물은 대상이 되고 지식이 된다. 사물은 의미가 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인식한다는 행위는 일종의 관계행위이다. 동물과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관계방식을 바꿔왔다. 인간은 동물과 분리됨으로써 동물을 대상화하였다. 대상은 내가 눈을 감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 이해하려면 우선 동물에 얹힌 신비와 공포의 성질을 분리시켜야 한다. 동물을 신격으로 대했던 인간의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동물은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동물은 인간이 정복한 식민지 목록에 포함되었다. 명명되어 분류 가능한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비와 공포를 정복하고 마침내 인간 스스로의 존재성을 정복하고 마음껏 해부할 수 있게 된다. 신과 동물과 사물과 세계의 모독은 곧 인간 자신의 모독인 것이다. ● 전근대인들은 식량으로 사냥한 동물을 위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제의적 문화를 만들어왔다. 복합한 신성을 구성함으로써 세상의 평화를 영속시키는 것이다. 그 시설 영적 평화를 위협하는 어떠한 것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영혼은 어디에서도 안식할 수 없다. 그것이 인류문명이 자초한 영혼의 막다른 골목이다. 방부 처리된 영혼 없는 존재들만이 지상을 배회한다. 죽었으나 살아있는 동물들은 마네킹처럼 더 이상 신성하지 않다. 진짜 동물이 사라진 세계의 인간은 고독하다. 마치 세계의 끝에 이른 기분이다.

2012 OCI YOUNG CREATIVES-신정필_박미례展_OCI 미술관_2012

박미례의 그림들은 근래 동물화들 가운데 매우 드물게 광기어려 보인다. 칼라와 터치는 날카롭고 신경증적이며 해체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후 마지막 인간이 방문한 자연사박물관처럼 이상한 공포와 예측불허의 불안이 있다. 누군가 동물원의 동물은 슬프다고 했으나 단지 슬프다는 수식만으로는 그녀의 작업을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 그녀의 그림은 어쩌면 의미와 결합된 동물을 그 의미로부터 분리해내는 것으로서 그녀의 작업은 의미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선 의미를 벗어나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새로운 관계와 태도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죽죽 그어대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의 전시장을 부정한다. 인간이 정복한 의미의 세계를 부인하고 마침내 인간 자신을 거부한다. ● 자연사박물관 속 동물에게서, 자연사박물관의 세계를 사는 인간에게서 다시 신비가 솟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멀리서는 인간도 파리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 또한 상상 속의 동물일지 모른다. ■ 김노암

Vol.20120607c | 2012 OCI YOUNG CREATIVES-신정필_박미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