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색깔보기

최근석展 / CHOIGEUNSEOK / 崔根碩 / painting   2012_0604 ▶ 2012_0629 / 주말 휴관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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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2 이랜드문화재단 기획展

주최,기획 / (재)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주말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단지를 보는 마음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다른 취향이 있으므로 무엇에 대해 좋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마주한 대상과 통하는 어떠한 것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상호교감에 의한 감정의 표출이다. 최근석의 정서는 진해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보고 누렸던 소소한 일상이 축적되어 형성되었다. 그가 감동받는 대상은 의외로 보통은 스쳐 지나갈 만한 것들이다. 그는 이끼 낀 돌조각이나 오랜 세월을 보냈음직한 기물에서 사람들의 흔적과 온정, 정성을 유추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단히 이어졌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연이 느껴질 때 감동을 받는 것이다. 비록 유년시절의 환경과 현재 환경이 다를지라도 마음속에 내재된 정서의 순수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최근석이 작품 소재로 삼는 것도 사람들의 숨결이 깃들여진 것이다. 기물이 갖는 특성에 의해 소재로 선택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작품에서 한지로 입구가 덮혀 있는 단지를 볼 수 있다. 단지에 담았을 그 무엇, 소박하게 종이로 감싸는 주둥이, 끈으로 한지를 동여맸을 손길은 결국 누군가를 향한 정성인데 이러한 광경을 생각하면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된다. 작가는 소재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형상과 색채를 이용하여 새로운 대상으로 재탄생 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53×73cm_2012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70×40cm_2012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70×40cm_2012

최근석은 극사실적 표현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작품에서 극사실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화면 가득히 나열된 단지는 처음에는 사실적으로 그려지는데 차츰 붓질이 회를 거듭할 수록 처음의 극사실적 묘사는 속으로 묻히게 된다. 그림의 초기부터 현재 시점은 사물의 단순화를 향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는 형태에서 이미지만 남기는 것이 단지의 본질을 전달하는 이상적인 수단이 되는 셈이다. 또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자기화를 이루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에는 "완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소재가 갖는 특징 조차 단순화의 과정으로 소실되므로 이미지를 무한정 단순화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53×73cm_2012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40×70cm_2012

회화에 있어서 색채가 갖는 위력은 대단하다. 어쩌면 형태적 이미지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색채에서 말하는 단색의 특징에 따라 전달되는 감성은 이론적으로 보편적인 것이지만 순수회화 작품에서 사용되는 색채는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분리해서 설명할 수 없다. 화가 역시 완벽하게 일치하는 동일한 색을 한 화면에 만들어낼 수 없다. 같은 그림을 두 장 그리더라도 꼭 같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작업의 환경과 작가의 심리상태가 그림에 그대로 전달되는 데 있다. 작가는 사실 색을 혼합할 때 비율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감이 느껴지는 대로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작품이 같지 않은 것이다. 다만 작가만의 정서에 의해 통일성을 갖는 색채가 구현될 뿐이다. 화면 안에서 색은 서로 돕기도 하지만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은 색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이다. 최근석의 작품에서 보듯이 정렬된 듯 배치된 단지의 독립성이 화폭 안에서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색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해결의 가장 수월한 방법은 단색조를 사용하면 되겠지만 작가는 모든 색조를 활용하고자 한다. 화폭에 수없이 중첩되는 물감은 본래 색감을 넘어 서로가 호응하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며 단지의 본질은 수 만 가지의 색감으로 생명력을 부여 받고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만약 최근석의 작품에서 단지를 보려 한다면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가 줄어들 것 만 같다.

최근석_단지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2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다루어 오고 있는 소재에 대해 지루해하지 않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처음 느꼈던 대상의 감동적인 실체가 외적 형상에서 왔더라면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작품에서 단지의 이미지는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감동의 형태를 빌어 작가 자신의 마음의 색채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보고 싶어하는 그림은 잘 훈련된 그림이 아닌 작가의 감정이 오롯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술작품의 생명은 미인처럼 빼어난 데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잘 그리는 능력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형태감, 색채감, 묘사력이 뛰어난 점을 너무 간단히 폄하할 수는 없다. 미술에서 이것들은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가 기계적인 습관으로 작품에 임했는지 온전히 작품에만 마음을 주었는지, 작품은 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이 하는 말은 결국 작가가 하는 말이다. 혹여 어떠한 여건의 변화가 있더라도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변치 않아야 예술가 아닐까? 시류에 흔들리면 그림도 흔들린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최근석은 자신의 의지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작가이다. ■ 천석필

Vol.20120604c | 최근석展 / CHOIGEUNSEOK / 崔根碩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