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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10:00pm
카페 드 유중, 유중아트센터 1층 서울 서초구 방배동 851-4번지 Tel. +82.2.599.7709 www.ujungartcenter.com
달과 별마저 저버린 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밤은 새벽으로 향한다. 시간의 흐름만큼 자연스런 것이 없을 진데, 그 자연스러움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두려움의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수만큼이나 말이다. 그 두려움의 그늘에는 어둠을 위시하는 부정적 개념들을 비롯하여 생애주기를 통해 체감하게 되는 인간의 유한성과 삶의 불확정성 그리고 타자화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좌절감들이 있을 것이다. 새벽은 밤과 낮, 양 극단으로 이어지며 어둠과 밝음을 교차시키고 한데 섞는다. 이러한 혼재성은 카오스(Chaos)적인 한편, 코스모스(Cosmos)적인 질서정연함으로 상호보완성을 갖으며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공포와 불안을 잦아들게 한다.
한지민의 '새벽을 듣는 밤'은 어두움 가운데서 삶의 새벽을 희구하는 자아의 이야기이다. '새벽을 듣는 밤'이라는 제목은 한편으로 하루키의 소설「어둠의 저편」을 떠올리게도 한다. 소설 속에는 서로 다른 암흑의 시간을 보내며 극단적인 수면과 불면을 겪는 자매가 등장한다. 상반된 의식의 상태는 곧 결핍된 정신의 소망과 몸의 소망을 의미하는데, 자매의 오랜 대립과 갈등은 결국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잠이 드는 화해의 제스처를 통해 해소된다. 이는 마치 칠흑 같은 밤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타인과 한 몸이 되어 잠들던 인류의 원시적인 경험과도 같다. 어쩌면 현대인의 무의식에 자리한 공포와 불안도 이러한 일체감의 단절로부터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상징화된 표상의 추상적인 힘에 기대어 숭배와 제의를 통해 이를 재현하려 하는 것일 것이다. 예배하는 대상의 형상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 이상의 존재와 비범한 능력을 나누었다는 믿음에 경도되며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한지민의 작품에 등장하는 반인반조(半人半鳥)의 이미지도 이러한 원시종교의 논리를 관통하고 있다. 작가가 개인적인 토템(Totem)으로 사용하고 있는 새는 작가의 어린 기억 속에 각인된 날개와 부리가 갖는 자유로움 그리고 강함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비롯한다. 새와 인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기이한 모습은 얼핏 악몽 혹은 판타지 영화 속에서 본 듯하며 이집트 신화 속, 매의 머리를 가진 태양신 호루스(Horus)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분명 반인반조는 작가의 기억에 예술가적 독창성이 더해져 창조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로부터 떠오르는 잔상들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측면으로 본다면, 개인적인 경험에 앞서 존재하는 초인격적 본질로서 개인에 내재해있는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기억, 즉 집단무의식의 원형(Artchetype)이 드러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에 있었던 종교, 예술, 신화 속의 신과 상징물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 등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한지민의 반인반조의 이미지가 내포한 복잡한 상징과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 신화는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새는 우리의 민간 신앙 속에서도 '솟대' 등을 통해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지상과 천상을 오가며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동물로서 묘사된다. 이러한 특징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헤르메스 그리고 이집트 신화 속에서는 따오기의 머리를 한 지혜의 신 토트(Thot)와 같다. 특히, 토트는 언어, 글, 과학, 예술, 의학, 마법, 수학 천문학, 점성술의 창시자이자 신들의 대변자, 기록보관자로 숭배 되는데, 심장의 무게를 다는 의식 중에 죽은 자와 전수자에 대한 최종 판결을 기록하는 서기관으로서 팔레트와 갈대로 만든 펜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가의 모습과도 형태적 유사성을 갖으며 자연스럽게 반인반조의 이미지를 예술 그리고 예술가와 연결시킨다. 실제로 한지민의 작품 속에는 스스로의 신체로부터 또 다른 신체를 잉태하고 분열해 내며 산고를 겪듯 끊임없이 도약하고 추락하는 신체의 이미지가 빈번히 등장한다. 이는 창작에 대한 은유로서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표현이 된다. 허나 작품에는 전반적으로 뒤러의 '멜랑콜리아(Melengolia I)'와 같이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짙게 갈려 있다. 파노프스키가 「어둠의 철학」을 근거로 밝힌 예술가의 음울한 숙명을 암시하는 듯 말이다.
결국, 한지민의 작품은 오늘날과 같이 아우라가 붕괴된 탈신화적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그리고 예술가로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사유의 과정을 바탕으로 재조된 개인의 신화라고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전래되어왔던 많은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한지민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는 감각과 사고를 깨워 현실의 삶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세계를 다시금 만나는 초월적인 경험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 강안나
Vol.20120603i | 한지민展 / HANJIMIN / 韓志旻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