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계: 알레고리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   2012_0601 ▶ 2012_0622 / 월요일, 6월6일 휴관

송민규_Study for Revenge 13_종이에 수채_30×21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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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규 홈페이지_http://www.mingyusong.com

초대일시 / 2012_060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6월6일 휴관

아트라운지 디방 ART+LOUNGE DIBANG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길 4 Tel. +82.2.379.3085~6 www.dibang.org

갑옷을 벗어 던진 후의 고해성사 ● 대뜸 그는 힘을 빼고 드로잉을 그리고 있다 했다. 첫 개인전에서는 내러티브가 있는 드로잉을,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사회의 각종 표피적인 구호들을 담은 회화를 보여주었던 그이다. 다시 그간 갈고 닦은 그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 차례가 되었는데, 힘을 빼고 그리고 있다니 예상 밖의 답변에 그만 허를 찔리고 말았다. "미술은 내공의 문제"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정확히 말하면 부제)의 전시를 보여주었던 그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는 덧붙인다. 그간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자신이 그려왔고, 그리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니 자신의 작업이 무언가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했다. 여기에서 이번 전시 작품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복수심에 기원을 둔, 힘을 빼고 그린 드로잉. 그런데 힘을 빼고 하는 복수라니 복수치고는 좀 이상한 복수이다. ● 성공적인 복수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옛말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고 했던가. 복수의 칼날을 겨누어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생채기를 남긴 특정 개인, 단체 또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이 복수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알았으니 이제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복수를 꾀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가능한 한 자신을 상대보다 더 강하게 단련시키고 무장해야 마땅하다. '좋은' 작품이 미술가인 그에게 힘을 실어줄 갑옷이 될 터이다. 그런데 그는 도리어 그 갑옷마저도 벗어 던지겠다고 한다. 그 갑옷이 자신이 입고 싶어 입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 이유이다. 대체 그 갑옷이 어떠하길래.

송민규_89°-1993-02_종이에 펜, 수채_31×24cm_2012
송민규_89°-1993-03_종이에 펜, 수채_45×35cm_2012

그는 내러티브, 촌철살인, 이면을 '콕' 찔러주는 은유나 비유 같은 장치들을 갖춘 작업이 '좋은' 작업이라고 학습 받아왔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그는 그 가르침을 꽤나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영 불편했다. 매일매일 일기 쓰듯 그려나간 자신의 드로잉에 반드시 그렇게 거창한 무언가를 주입해야만 하는 것일까. 촌철살인적인 그 무엇이 없다 하더라도, 이면을 집어 주는 그 무엇이 없다 하더라도 '좋은' 작품일 수는 없는 것인가. 이 의심과 회의에서 그는 자신을 보호해주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누르던 그 갑옷을 벗어 던지고 어깨에 잔뜩 든 힘을 툭 내려놓기로 한다. ● 갑옷을 벗고 힘을 빼고 나니 남은 것은 혈혈단신 그 자신뿐이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본다. 남겨진 것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이고,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그리기에 대한 고뇌 그뿐이다. 지난날 경험했던 부당함, 억울함 등 미해결 상태의 해묵은 상처들이 비어져 나와 비정형의 흘러내리는 붓질과 풀어헤쳐진 뇌와 같은 주름진 덩어리들에 스며들고(Study for Revenge), 트라우마의 경험이 발생했던 장소가 간결한 선과 면에 단속적으로 배어 나온다(89°-1993-01~04, 세 가지 선택). 거기에는 내러티브도 없고, 이면을 들추어내는 날카로운 면모도 없다. 다만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그저 좋을 뿐이다. 그는 이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펜과 붓을 놀리게 하는 원동력임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송민규_Operation tool 12_종이에 수채_30×21cm_2012
송민규_Study for Revenge 18_종이에 수채_26×36cm_2012
송민규_Study for Revenge 19_종이에 수채_26×36cm_2012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안 그는 이제 출발선 앞에 새롭게 서있다. 어쩌면 그는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나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꾸밈없이 적어나간 일기처럼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느낌과 심상을 마음 가는 대로 그려나간 드로잉들로 감행하는 그의 복수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그리고 그 드로잉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될지는 꽤나 긴 레이스를 펼친 후에나 판가름 날 것이다. 기억해두시라. 그 지난한 레이스를 펼칠 그가 바로 작가 송민규라는 것을. ■ 주은정

Vol.20120602k |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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